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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마음으로 회사를 떠났다

5년 전, 강남역에 카카오프렌즈 오픈하던 날

by 윤만세

그렇게 동료들과 밤낮없이 준비한 카카오프렌즈의 첫 플래그십 스토어가 2016년 7월, 강남에 오픈했다. 오픈 당일, 스토어 앞에서부터 골목길을 구비구비 돌아 강남역까지 1km가 넘는 긴 줄이 이어졌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준비된 스태프 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전 직원이 출동했다. 우리뿐 아니라 관할 경찰서에서도 출동했다. 이른 아침부터 주변 상권에서 민원이 빗발쳤다고 한다.


벌써 5년 전..


우리 중 일부는 주변 상점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한 지점에서 줄을 끊고, 이동시켜 다시 줄을 세우고, 입장 예상 시간을 안내하는 등의 가이드를 맡았고, 일부는 빠르게 소진되는 재고를 채워 넣기 위해 창고에서 박스를 끊임없이 날랐다. 나는 비상구 계단에서 이벤트로 나눠줄 라이언 풍선에 바람을 넣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하면서도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쉴 새 없이 바람을 넣다가 잠시 뒷문으로 빠져나가 먹었던 김밥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그 풍선


정식 오픈 하루 전, 모두가 모인 가오픈 행사에서였다.

이 프로젝트를 리드한 공간 파트의 파트장 힘이 대표로 소감을 말하던 도중 눈물을 보였다. 오픈을 준비하며 수도 없는 위기 상황에서도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 적 없던 힘의 모습에 로지와 나도 울고 말았다. 공간 파트 모두가 울고 있었다. 무사히 오픈을 하게 된 것에 대한 감격의 마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의 개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고 해야 할까. 그때만큼 과정을 함께한 동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사무치게 느낀 적은 없었다.


두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홍대


같은 해 겨울, 카카오프렌즈는 홍대에도 플래그십을 오픈했다. 그 사이 나는 공간 파트에서 독립해 브랜드 파트라는 작은 조직을 새로 꾸리게 됐고, 카카오프렌즈에서 확장된 새로운 공간, 제품의 브랜딩을 맡았다. 층별로 공간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아이덴티티를 개발하고 콘텐츠를 채워나가는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공간 파트에서 배우고 경험한 모든 것을 여기에 써먹었다.


새로운 것도 많이 만들었다


플래그십 오픈 전후로 새로운 멤버들이 빠르게 합류했고 회사의 규모는 점점 커졌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성공에 고무되어 분위기도 좋았다. 당시의 평가나 인센티브를 생각해 보면(인센티브라는 것을 처음 받아봤지만) 회사로부터 꽤나 인정받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당시에는 뭔가 하기만 하면 반응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점차 이 커다란 성공에 대한 나의 기여도가 몹시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와중에도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매우 몰입해서 일했지만, 정말로 내가 이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맞나? 사실 이 모든 성공은 카카오프렌즈라는 IP의 힘 덕분 아닐까? 메신저 안에서 내 감정을 대변하던 친구들이 실제로 손에 잡히는 형태로 나타난 것에 대한 열광이라면 누가 했어도 이 정도의 성공은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계속 돈만 잘 벌면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뒤따랐다. 프렌즈 초기에 내가 디자인한 제품들이 아직도 악성 재고로 창고에 쌓여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을까 봐 무섭다..) 즐거움을 주겠다고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일까. 잘 됐으니 앞으로는 이 성공을 유지하기 위한 일을 계속 해나가면 되는 것일까.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카카오프렌즈로 분사한 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달리는 기차에서 바퀴도 갈아 끼우고 엔진도 교체하면서 어떻게든 달려왔다. 무지랭이로 시작해서 악성 재고의 아이콘이 되면서 사용자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공간 초심자로 브랜드 경험이 무엇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배우면서 디자인을 해왔다. 스펀지가 된 것처럼 배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빨아들였고,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짜냈다. 그야말로 목표만을 쫓아 달려온 시간이었다. 플래그십 오픈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니 이제 더 짜낼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했다는 기분, 더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없는 일까지 다 한 기분이었다.



좀 더 내가 공감하는 가치를 위해
시간을 쓰고 싶다



고민 끝에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일, 스스로 더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고 싶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 몰입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살고 싶었다. (편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그때는 더 컸던 것 같기도...)


그리하여 마침내 두 번째 퇴사를 선언했다.

프렌즈를 떠나겠다고 했을 때, "왜 고생만 하고 가려고 해? 앞으로는 좀 편해질 텐데" "조금만 있으면 안식휴가 갈 수 있는데 왜?"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뭔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첫 회사를 그만둘 때와는 다르게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니었기에, 프렌즈에서의 경험이 나를 정말 많이 바꿔놓았구나..하고 크게 실감했다.


안녕 카카오프렌즈..


2017년 여름, 나는 프렌즈를 떠났다.


지나고 보니 그렇다. 브랜드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좋아해 주는 브랜드에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본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경험이었는지. 마음 맞는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내면서 일의 보람과 즐거움, 절망과 괴로움, 기쁨을 모두 폭풍처럼 경험했으니.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최고로 사랑했던 튜브, 그리고 카카오프렌즈,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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