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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Oct 04. 2020

나는 어쩌다가 브랜드 디자이너가 됐을까

내 커리어를 바꾼 한 명의 동료

1년간의 백수 생활을 마감하고 카카오에 입사한 지 한 달째의 일이다. 디자이너는 둘 뿐이고, 스토어는 계속 오픈이고, 사업팀의 라이선스 담당자들까지 오픈하는 스토어에 쫒아가 재고를 나르던 시절이었다.

내가 입사하고 한 달 뒤, 로지라는 친구가 VMD로 팀에 합류했다. 만나자마자 우리는 굉장히 빠르게 가까워졌다.

비슷한 시기에 합류한 라이선스 팀장님이 단체 톡방에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이모티콘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게 너무 웃겨 참지 못한 내가 '이모티콘 되게 못쓰신다'고 반응한 것이 시작이었다.


로지의 웃긴 사진 폴더에서 찾아낸 유물


아직 모두와 친해지기 전이었는데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생각하는 사이, 옆자리의 로지가 웃으면서 쓰러졌다.(이모티콘 못쓰는 라이선스 팀장님과도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엉뚱한 포인트에 반응하고, 둘이서만 미친 듯이 웃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면서 우리는 죽이 잘 맞는다고 느꼈다. 로지가 합류한 이후 출근이 기대될 정도로 회사가 재미있어졌다. 같이 일하면 같이 노는 기분이었다.


뒤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에 웃다가 주저앉는 중. 둘만 웃겨 죽음


그래픽 디자이너로 합류한 내가 제품의 그래픽과 패키지, 라이선스 관련된 일을 맡아 일했다면 VMD로 합류한 로지는 공간과 관련된 모든 일을 했다. 당시 백화점 내에 스토어를 오픈하는 스케줄이 주 단위로 있었는데, 파트너로 함께 일하는 시공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부터 VMD까지 로지 혼자서 다 해내기엔 벅찬 상황이었다.


"또 뭐 해야 돼? 내가 해볼게, 일단 줘 봐."


상대적으로 덜 바쁜 내가 스토어 가림막이라던가 POP 같은 공간에 필요한 그래픽 작업들을 해주곤 했다. 빨리 일을 끝내고 같이 퇴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간단한 작업이라도 아이디어를 내고 시안을 만들어 공유하고 의견을 주고받고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단순히 '리뉴얼 준비 중'이 아니라 '프렌즈가 여름휴가를 떠났다'는 컨셉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여러분도 휴가 잘 보내고 다시 만나요'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던가. 로지는 작은 아이디어도 너무 좋아해 주고, 왜 좋은지 이유를 말해줬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매번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왔다. 그러니 작업하는 게 신날 수밖에.


로지 혼자 가는 부산 출장에 따라가 해운대 버스킹도 봤다 ^^


디자이너가 3명뿐이던 작은 조직은 분사 이후 새로운 동료들이 합류하면서 빠르게 규모가 커졌다. 경계 없이 하던 일들도 조금씩 구분되기 시작되면서 디자인 조직도 목적에 따라 제품 파트와 공간 파트로 나뉘었다. 1년 동안 프리랜서(백수)로 지내면서 비즈니스라고는 몰랐던 내가 회사생활에 위화감 없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로지와도 다른 팀이 되었다. 제품 파트와 공간 파트에도 새로운 디자이너 동료들이 합류했고 사업 확장을 위해 팀을 구축해나가는 중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각자의 팀에 좀 더 몰입해야 했다.



그런데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로지랑 일할 때 재밌었는데', '로지랑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계속해서 공간 파트에 기웃거리고 관심을 가졌다.


요즘 모하니? 뭐 도와줄 건 없니?


공간 디자인을 책임질 리더가 합류하면서 공간 파트는 이제 막 두 명이 된 상황이었다.(제품 파트는 세 명..)

격주로 백화점 내에 스토어를 오픈하던 중, 판교 현대백화점에 카카오프렌즈가 입점했을 때였다. 오픈한 스토어를 보기 위해 모든 팀원들이 판교 현대백화점을 찾았다. 이번에는 라이벌은 아니라고 하지만 서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L프렌즈가 같은 백화점 바로 위층에 입점했기 때문에 좀 긴장이 됐다.

우리 스토어의 위치는 4층 에스컬레이터 정중앙. 에스컬리에터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반드시 볼 수밖에 없는, 고객 동선상으로는 끝내주는 위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활용할 수 있는 벽면이 없다는 것이 단점으로 느껴졌고 우리는 아직 제품 수도 많지 않고, 컨셉을 보여줄 수 있는 벽도 없고.. 우리만 벽 없어.. L프렌즈와 비교가 되어 더 그랬는지 아무튼 아쉬운 것 투성이었다. 이렇게 부족함이 많은데 방문해 주고 좋아해 주는 분들이 고마울 지경이었다. 스토어에서 조금 떨어져 에스컬레이터 근처를 서성이며 방문하는 손님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사님이 다가왔다.


"윤, 어떤 거 같아?"

"L프렌즈 진짜 잘하네요. 너무 멋진 것 같아요."


우리는 이제 막 분사했고 새로운 시작이니 앞으로 더 멋져질 거라고 말해야 했으나, 마음의 소리가 나와버렸다. '우리가 지금은 안 멋진 것 같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사님이 다시 물었다.

"우리도 멋져지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제가 공간팀에 합류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것도 어딘가 숨어있던 마음의 소리였을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이어서 L프렌즈가 잘하는 것과 우리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털어놓았고, 나 같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왜 공간 파트에 필요한 것 같은지, 내가 공간 파트에 합류한다면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은지를 줄줄 이야기했다. 안 물어봤는데..?


그래. 이 모든 것은 '로지랑 다시 같이 일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에서 비롯된 게 맞다. 그건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확실히 틀림없다. 백화점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이사님은 내가 막 던지는 말들을 곰곰이 들어주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이사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윤, 앞으로 공간에서 잘해봐. Z(팀장)하고도 다 이야기됐으니까."

"ㄴㅓㅣ...?" (저 실은 도면 볼 줄도 모르고, 그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간팀이 정확히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는데요..!?)


모죠 이 급전개는..?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하고 의욕만 넘치는 애를 이렇게 흔쾌히 믿어보기로 하다니. 내가 너무 공간팀에 가고 싶어 보였나, 내가 로지 좋아하는 거 아실 텐데.. 모든 팀이 빌드업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 잠깐의 대화가 이런 결과를 가지고 올 줄이야.

그리하여 나는 공간의 모든 그래픽 요소들을 책임지는 공간 파트의 디자이너가 되었고, 그때부터 공간 초심자의 개고생이 시작된다.


공간의 적재적소에 콘텐츠를 녹여내려면, 동선을 계획하고 그에 따른 고객의 감정을 고려해서 어떤 경험을 전달할지 상상하고 그걸 현실로 만들어야 하는데, 평면 작업에만 익숙했던 나에게는 그게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면도를 보고 공간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데 거기다 경험 설계까지 해야 하다니. 아니, 공간은 둘째치고 초반에는 POP 하나 오케이 받는 것조차 말도 안 되게 힘들어서(왜 때문인지 카피도 내가 썼다) 내가 왜 공간팀에 간다고 했을까.. 그냥 하던 거나 잘할걸.. 후회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내 존재가 팀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나를 가장 괴롭게 했다. 3명뿐인 팀에서 도움은 못 될 망정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서 피해를 주지는 말아야 할 텐데.


긴 터널 같은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나를 포기하지 않고 멘탈을 지지해 준 동료가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가 있었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는 어떻게든 한 번에 끝내려고 같은 내용을 가지고 POP를 5개씩 만들었고, 그 뒤에는 내가 살려고 가이드를 만들었다. 공간에 콘텐츠 계획을 해보겠다고 같은 도면을 몇 개씩 복사해서 가지고 다녔다. 잘 만들어진 공간에 가서 입구부터 의식적으로 경험해보고, 참고가 될만한 것들은 닥치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내 고민을 다른 관점을 가진 두 동료와 나누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거의 새사람이 된 것 같다. 저 같은 사람한테는 동료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


초기 공간 파트. 둘 다 유난히 솔직한 편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최근에 여러 디자인 분야 중 왜 '브랜드'를 선택하게 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게.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아무 계획 없이 퇴사할 정도로 커리어에 대한 생각도 방향도 없던 내가 언제 브랜드 디자이너가 된 거지?'


돌이켜보면, 나는 브랜드 디자인을 선택한 게 아니라 로지와 일하기를 선택한 거였다. 그때는 도전인 줄 몰랐지만 '함께 일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공간'에 뛰어들었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힘든 시간을 버텼다. 마음을 다잡고 괴로운 상황을 견뎌 내다 보면 그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POP로 시작했지만 이후 새롭게 런칭하는 공간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게 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브랜드 전체를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공간을 만드는 동료들과 함께 공간에서의 경험을 고민하는 브랜드 디자이너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로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날 이사님과의 대화가 없었다면, 지금 내가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었을까. 일하는 방식이나 팀과 동료에 대한 생각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아무 계획 없이 산 것치고 난 참 운이 좋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워낙 계획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다'보다는 '하고 싶다'로 살아온 모양이다. 막상 상황이 닥치면 무척 괴롭긴 했지만, 결국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수습만큼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그러다보면 계획에 없던, 상상도 못 했던 다른 길이 열리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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