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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Jun 22. 2019

다시 회사를 다니자는 결심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렇게 다시 회사원이 된다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한 이후..

사직서를 내고 일 년 동안 가난하고 느긋하게 하루하루 잘 살았다. 프리랜서라기에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함께 일했던 분들이 연락을 준 덕분에 가끔 외주 일을 하면서 굶지는 않고 지낼 수 있었다.

작업실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으므로 뭐라도 작업을 하긴 했다. 제작비용이 적게 드는 엽서나 포스터 같은 종이류 제품을 만들어 판매 수수료가 없는 소소시장에 나갔다. 하루 매출이 5만 원 정도였지만 마켓에 참여한 작가님들로부터 입점 제안도 받고, 누군가 내 그림을 좋아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신나던지.


뭐라도 했던 작업 중 하나 <fly with us>


당시 살던 곳은 산동네 꼭대기의 분리형 원룸이었는데, 서향집이라 해가 질 무렵이면 방안이 온통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붉게 물든 방에 앉아서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크게 틀어놓고 (뭐라도) 작업하던 그 시간을 나는 정말 사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시간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로 외식을 거의 안 했지만 혹시나 일이 있어 밖에 나가더라도 6시 전에는 의식적으로 집에 돌아오려고 했다. 흐리거나 비가 와서 노을이 없는 날이 야속할 정도로 나는 정말 그 시간을 사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다시 취직을 하게 됐다.

우연한 취직이라니. 매우 어울리지 않는 수식이지만 정말 그랬다.

동네 슈퍼에서 계란을 5개를 사고 슬렁슬렁 집으로 올라오는 언덕길에 이전 회사 동료로부터 연락이 왔다.

"윤! 다시 회사 다닐 생각 없어?"

이직한 회사에서 신규사업을 위해 팀을 꾸리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팀은 아니지만) 그 포지션이 나에게 너무 딱일 것 같다는 것이었다.

에.. 글쎄.. 아직..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내가 다시 회사를 다닐 수 있으려나..

“어차피 떨어질 수도 있고, 합격해도 무조건 입사해야 되는 거 아니니까.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고 일단 지원해봐. 진짜 딱이라니까!”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그러네. 듣고 보니 그렇네.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주변에 너무 호언장담을 해놓은지라 좀 멋쩍은 감이 있었지만, 내 성향을 잘 아는 전 동료의 적극적인 태도에 설득당하고 말았다. 주말 내내 포트폴리오를 정리한 나는 채용이 마감되기 하루 전, 결국 지원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동안 1차, 2차 면접을 거쳐 최종 오퍼를 받았다.  


그 포지션이 나에게 정말 딱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운이 짱 좋았던 것인가. 사람 마음이 그런가 보다. 막상 합격하니 신나기도 하고, 새로운 일과 사람들이 기대되고 또 재미있겠다 싶은 거다.


그래! 다시 재밌게 해보자!


그렇게 다시 회사원이 됐다. 전 직원 100명이 모두 디자이너인 회사에서 일하다가 사업전략, 라이선스, 리테일, 마케팅 등등 다른 전공과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 것이다. 좀 더 비즈니스 친화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동안 내 시야가 얼마나 좁았는지 점차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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