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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Apr 20. 2019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

결심하고 서른 번째 생일날 사직서를 냈다

얼마 전 회사 동료 한 분이 생일을 맞이하셨다. 30번째 생일이라는 것을 듣고 "와! 정말 좋은 나이네요"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나도 서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30번째 생일날이 떠올라 갑자기 굉장히 멀게 느껴진 거다.


서른 번째 생일날 나는 사직서를 냈다.

회사를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뒤돌아 보았던 장면이 사진처럼 찍혀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의 실장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프로펠러 모자를 쓰고 앞으로는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내 시간을 쓰자 다짐했었다. 말 못 할 빚도 많고 학자금 대출도 남아있었는데 '어떻게든 되겠지', '죽진 않겠지'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러니까 그게 아주 오래된 일만 같다. 내가 그만큼 달라졌기 때문일까. 진짜 옛날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그때는 그곳이 처음이자 마지막 회사일 줄 알았다.




나의 첫 회사는 (야근으로 악명 높은) 디자인 에이전시였다. 내부적으로 출판물을 기획하고 만들기도 했고, 대기업의 외주 파트너로도 일했다. 나는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걸 만들어내겠다는 의욕과 열정에 불타 입사했다. '이런 책, 이런 그래픽을 만들고 싶어!' 하며 선택한 회사였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디자이너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그 열정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서 삽질도 많이 했고, 당장 필요한 일에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괴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 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대체적으로 재미있었고 (이를테면 체육대회라던가 송년회 같은 행사들..?) 할 수 있는 일부터 할 수 없는 일까지 하다 보니 느끼는 것도 배우는 것도 많았다. "디자인 빼고 다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들었다.


외부의 일은 내부의 일보다 항상 급했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중에는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도 있었다. 새벽까지 일과 씨름하다가 불쑥 선배를 찾아가 "제가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아세요?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고요!!!"소리치고 오열한 날도 있다. 이런 일 따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게 차라리 세상을 위한 거라며 당장 그만두겠다고 생떼를 썼다.. 일이 많고 몸이 힘든 것보다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더 괴로웠다.


처음 몇 달간은 내가 월급을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1년쯤 지나자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는지 궁금해졌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일인가? 다들 괜찮나?


너무 옛날 사람같습니다만..(feat. 뚱뚱이모니터)


3개월 수습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 겪는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다 그런 줄로만 알았다. 비교의 대상도 없었으므로 기준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회사는 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 나에 대해 좀 더 탐구해보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고민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너무나 '재밌겠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일시적일지도 모르는 마음 하나로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왔던 것이다.(아직도 그러고 있다..)


그러다 이 영상을 보게 됐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졸업 연설


스티브 잡스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거울 속의 자신에게 질문을 했다고 하는데,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그래도 지금 하려는 일을 하겠는가" 이 질문에 "No"라는 대답이 며칠 동안 계속되면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나는 대표님 방에 무작정 찾아가서 이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저에게 일주일이 남아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출근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것이 나의 퇴사 사유였다.

"니가 스티브 잡스냐"며 말문이 막혀버린 대표님은 나를 붙잡아둘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중간중간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5년을 일해왔는데 결심은 그렇게 한순간에 찾아왔다. 사직서에 나의 행복에 좀 더 집중하며 살고 싶다는 둥 구구절절 적었는데, ‘개인 사유’라고 적으면 된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경험에 대한 욕심도, 커리어라는 개념도 없었고 기획이 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회사는 싫으니 언젠가 내 작업실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친구들이 그랬다. "작업실 있다 치면 뭐 작업하려고..?"




그래서 어떻게 됐냐 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작업실을 차려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준비된 사람이 아니었다. 작업실을 차리지도 못했고, 내가 생각했던 멋진 디자이너가 되지도 못했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같은 해피엔딩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1년 뒤에 나는 가난하고 행복한 아티스트(백수) 생활을 마치고 다시 취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그다음 회사에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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