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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Mar 26. 2016

거만한 입과 말하다.

<진리를 알고 싶은가. 진리를 들려주겠다.>

 식물을 가꾸었다. 물을 주었다. 때론 눈물을 주고 때론 내 똥을 거름으로 주었다. 노래도 들려주고 함께 춤도 추었다. 아뿔사. 그런데 한동안 식물은 병이 든 듯 했다. 말라 버리고 피로해 버리고 이제 그만 존재를 그치려고 마음을 먹은 듯 했다.

 어느날 밤 나는 검은색을 생각했다. 그리고 거기서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을 동경하는 눈빛을 보았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식물의 아스라질 듯한 꽃봉우리가 활짝 개화한 것이다. 

 거기서 거만한 입이 피어났다.


 거만한 입이 말했다.

<진리를 알고 싶은가.

진리를 들려주겠다.>


<삶은 산다. 

삶은 살고 삶은 산다.

이 순환 고리 속에 너와 나와 자연이 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무력한 진리로다!> 

나는 탄식했다. 

나는 이 꽃이 거만한 입임을 안다.


<그렇지만, 웃었던 자가 있다.

빛 색의 웃음이었다.

그 중 몇은 웃음의 비밀을 적었다. 

하지만 스스로 웃기 전에 그 비밀을 알 수는 없다.> 


<지도는 어디에 있지?>

나는 물었다. 

<지도는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없을 뿐.> 

<귀를 기울이면.>

내가 말했다.

<그래, 귀를 기울이면.

다민 지도에서 길을 잃지 않아야 한다.> 


<검은 웃음을 웃는 자들을 조심해라.> 

거만한 입이 말했다.

나는 환각과 환영을 떠올렸다. 

<그 자들은 나약하다.>


나는 거만한 입의 말을 이해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한참이 지나고 거만한 입이 입술을 달싹였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단단히 힘이 들어간 내 손이 거만한 입을 향해 다가갔다.

거만한 입은 눈치를 챘다. 마지막 순간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 > 

나는 거만한 입을 꺾어 버렸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산책을 하러 나갔다. 이따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 것이다. 

거만한 입은 가장 높은 순간에 박제되었고 나에게 문신처럼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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