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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등어 봉초밥

초겨울을 기대하는 이유

by 지도그림

고등어 봉초밥을 먹었다. 친구에게 추천 받은 망원동 이자카야에서였다. 여름부터 봉초밥을 찾아다녔는데 아직 철이 아니어서 메뉴에 올라오지 않은 식당부터 한정 수량 판매로 솔드아웃이었던 집까지 빈번히 시도가 엇나갔었다. 그러다 마침내 11월 중엽 제철 식재료 표에 등푸른 고등어 이미지가 등장하는 이 시기에 봉초밥 주문에 성공한 것이다.


바 테이블에 앉은 우리 앞에서 요리사가 재료를 조합하고 있었다. 면보에 감싸인 숙성 고등어 한 덩어리가 조리대에 올라오고, 요리사는 칼로 생선의 갈비뼈를 발라낸 뒤 요리용 족집게로 가시를 뽑는다. 길고 날카로운 횟칼로 단번에 선을 그으니 생선은 직사각 모양을 잡아간다. 머리와 꼬리의 남은 부분이 잘리고 생선의 가운데 선을 중심으로 칼집을 내자 살이 양쪽으로 펴져 폭이 비슷해진다. 그는 나란히 놓인 작은 사각 상자를 열어 와사비, 생강, 쪽파를 차례로 얹은 뒤, 밥솥에 보관해둔 실리콘 파우치에서 옅은 간장 빛이 도는 찐득한 샤리를 꺼내 고루 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김밥처럼 눌러 만다.


기대에 들뜬 우리 앞에서 그는 능숙하고 단정한 몸짓으로 이 말이를 여덟 개의 균등한 단면으로 자른다. 토치로 고등어의 겉면을 그을리니 껍질이 훈연되는 향이 나고 생선 기름이 윤기있게 올라온다. 라임 한 조각과 함께 마침내 음식은 우리의 자리로 왔다.



한 점을 집는다. 모양을 살피고 향을 맡고 입에 넣는다. 천천히 씹자 숙성된 생선 살이 부드럽게 녹아내려 입 안에서 밥과 함께 하나가 된다. 생강 향이 옅게 번지고 쪽파와 와사비는 미각의 배경을 채운다.


고등어 봉초밥은 숙성된 고등어회와 초밥용 밥, 와사비, 생강 등의 기본적인 틀을 공유하는 요리이지만 식당마다 미묘하게 맛이 다르다. 아무래도 숙성의 방식과 정도, 밥을 짓고 양념하는 방식, 생선과 밥의 어우러짐 혹은 이들 간의 작지만 기분 좋은 어긋남이 차이를 낳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들어가는 나머지 재료랄지 아부리의 여부랄지 그리고 그 식당의 분위기와 곁들이는 술에 따라서도 맛은 달라지는 듯하다.


생선 살의 질감과 향이 더 살아 있는지, 모든 것이 하나로 뭉게지는지, 변별적이고 지성적인 맛인지, 보다 부드럽고 찐득한 맛인지... 그리하여 어떤 음식은 기억에 남고 어떤 것은 잊혀진다. 몇몇 봉초밥은 섬세하게 탁월하여 봉초밥에 대한 내 관념의 근간이 되었고, 몇몇은 그저 레시피를 따라 충실히 만든 모양일 뿐 깊이 있는 즐거움과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일본어로는 시메사바 보우즈시라고 하는데, 초절임해 숙성한 고등어회를 말아서 만든 스시라는 뜻이다. 고등어는 특유의 비린내가 강하고 살이 물러 상하기 쉬운데 소금과 식초에 절이면 맛도 좋아지고 살도 단단해지며 보존성도 높아진다. 이렇게 숙성한 고등어는 시메사바 사시미로도 먹으며 김발로 둥글게 만 봉초밥으로도 먹는다. 그저 초밥처럼 서빙하기도 한다.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 추운 계절이 다가오지만 초겨울은 신선한 고등어를 맛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봉초밥 맛집을 향한 여정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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