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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Dec 10. 2020

모닝 루틴

2020년 가을과 겨울, 나의 아침들


6:00AM


어제와 오늘이 교차하는 시간, 밤의 농도가 짙게 드리운 방. 어둔 겨울 새벽 새근거리는 열기로 부풀어 오른 이불 속에서 침대에 납작 붙은 채 간간이 꿈틀거리는 한 사람이 있다. 꿈의 복판에서, 커튼이 쳐지고 존재들이 엿보고 거미줄 같이 진득거리다가, 아침을 알리는 소리에 서서히 희석되어 간다. 의식은 베갯잇에 얼굴을 문대다 곧 선명해져서, 몸은 알람을 끄고 두어 번 뒤척이고 고양이처럼 기지개를 켠다. 일어난다.



6:20 AM


얇은 커튼 틈으로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온다. 사물의 명암 속에 서서 이불을 정리한다. 베개를 바로 놓고 다시금 울리는 알람을 완전히 끈다.

자그맣고 동그란 알약을 물과 함께 넘긴다. BP, 0.05mg. 몇 분 후에 오늘의 약을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해서 약통을 들고, 물병을 들고, 눈썹을 찡그릴 것이다. 그리고 하나를 더 먹거나 먹지 않을 것이다.

물을 몇 모금 더 마신다.



6:23 AM


화장실 불을 켠다. 백열등이 눈을 찔러 반사적으로 스위치를 다시 내린다. 조금 망설이다가 몇 초 뒤 불은 다시 켜진다. 눈을 희미하게 뜬 채 세수를 하고(뉴트로지나) 양치를 하고(페리오) 소변을 본다.


하룻밤 뱉어낸 호흡으로 공기는 갑갑하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어제 밤 해두지 않은 설거지가 보인다. 창문을 열고 설거지를 한다. 그릇은 씻기고 트레이에 쌓인다.



6:33 AM


천장등을 켠다. 천장 가장자리가 주황빛으로 은은해진다. 가벼운 레깅스로 갈아입는다. 바닥에 요가매트를 펴고(쿠팡) 유튜브에 들어간다. 첫 번째 추천 영상은 아침 요가 영상이다. 찾던 채널, 찾던 길이. 광고가 나올 동안 매트에 앉는다. “Good morning. Welcome back to my channel-"


눈을 감고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린다. 몸은 목소리를 따라 아기 자세 테이블 자세 캣 앤 카우 다운 독 전갈 자세 산 자세 스핑크스 자세.

몸의 상태를 가늠해본다. 오늘은 맑다, 오늘은 피곤하다, 덜 잔 것 같다, 목이 뻐근하다. 오늘은 의욕이 많고, 오늘은 별로 기대되는 게 없다. 사자처럼 숨을 뱉으라고 한다. 혓바닥까지 마지막 호흡까지 뱉고 나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았다가, 요가매트를 말아 제자리에 놓는다.



6:45 AM


다시 부엌으로 간다. 병째 물을 마시고(아이시스), 컵에 물을 따른다. 때론 핸드드립 커피, 때론 냉장고에서 사과나 감을 꺼내 깎는다. 접시에 담는다.



6:52 AM


책상에 컵과 접시, 포크를 내려놓는다. 자리에 앉는다. 공책을 펴거나 노트북을 켠다. 써야 할 글이 있다 혹은 쓰고 싶은 글이 있다. 앞서 써둔 문장을 몇 줄 읽는다. 단어를 몇 자 적는다. 금새 빨려 들어간다. 커피를 마시거나 감을 포크로 찍어 먹으면서 글을 쓰고 고친다. 어느 순간,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몇 걸음 갔다가 돌아온다. 글자 몇 자를 더 적고, 여기까지, 아니, 여기까지? 아니? 그래, 여기까지, 한다. 글은 잘 써졌거나, 써지지 않았다.



7:35 AM / 7:50 AM / 8:05 AM


여기서부터는 제각각이다. 침대에 몸을 던진다. 글도 안 써졌고 피곤하기만 하다, 잠이나 더 잘걸, 하며 몇 분이라도 시간의 틈을 최대한 비집어 눈을 붙인다. 혹은 샤워기의 물을 켠다. 혹은 냉장고에서 간단한 아침을 꺼내 먹는다.



8:15 AM


화장대 앞에 앉는다. 습관적으로 스킨, 로션, 바디로션, 썬크림은 다 발리었다. 그 날의 기분에 따라 식물 이야기나 책 영화 이야기를 하는 라디오를 듣거나, 의지를 일깨워주는 목소리들이나 아침 느낌의 음악 혹은 클래식을 튼다. 아니면 침묵 속에서, 눈두덩에 음영을 넣고, 피부에 혈색을 입힌다.

편안하고 따뜻한 옷들을 머릿속으로 구상한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꺼내 입는다.



8:55 AM


가방에 핸드폰과 지갑을 넣고 현관에서 마스크를 낀다. 바깥 공기는 차다. 걸음을 크고 곧게 내딛는다. 지하철역에서 보도로 나아간다. 하루의 시작이다. 사람과 차가 가로지르는 고요하고 분주한 아침의 거리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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