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너를 해. 나는 나를 할 테니까.
지난주에 8인조 혼성 다국적 밴드 슈퍼오가니즘의 공연을 보고 왔다. 공연을 보기 전에 라이브 영상 몇 개를 보는데 재밌는 말이 나왔다. 2017년에 결성된 밴드 슈퍼오가니즘은 태생부터가 변화한 시대를 보여준다.
재밌게 본 Paste Studio NYC의 슈퍼오가니즘 라이브 영상
보컬인 오로노는 무심한 듯 무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다른 멤버들은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부르는 대비도 재밌고, 라이브 중간중간 음향 효과를 위해 사과를 먹는 것도 재밌지만. 내가 낄낄댄 부분은 진행자가 "서로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란 질문을 던지면서부터다. 열심히 설명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오로노는 시크하게 딱 한 마디를 한다.
The algorithm worked.
이게 무슨 말이냐면, 유튜브 알고리즘이 효과가 있었다는 말이다. 슈퍼오가니즘 멤버 중 4명은 뉴질랜드에서 데뷔한 밴드 The Eversons였는데, 오로노는 유튜브 추천으로 이 밴드를 알게 됐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오로노의 취향을 저격한 덕분에 슈퍼오가니즘이 탄생할 수 있었다.
밴드가 결성되기까지 순서대로 정리하면 이렇다.
- 오로노가 유튜브 추천으로 The Eversons를 발견하고 좋아하게 된다.
- 오로노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는데, 여름에 일본에 들어갔을 때, The Eversons가 근처에서 공연한다는 걸 알게 된다. 오로노는 공연을 보러 가고, 그때부터 밴드 멤버들과 친구가 된다.
- 밴드 멤버들이 오로노가 노래를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로노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노래를 올려왔다.)
- 밴드 멤버들은 오로노에게 2017년 초에 작업하던 음악에 가사와 노래를 더해보라는 제안을 한다.
- 이 노래가 바로 FIFA 18에 나오고 빵 뜬 Something For Your M.I.N.D.다.
슈퍼오가니즘 멤버들은 인터넷에서 처음 만났다. 태생이 이렇다 보니 '8인조 혼성 다국적 그룹'이 된 것이다. 영국, 미국, 호주에 살던 멤버들은 처음에는 원격으로 음악을 만들었다. 각자 녹음해서 인터넷으로 주고받고 하면 되니까 꼭 한 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지구 곳곳에 살던 그들은 2017년부터 아예 다 같이 런던으로 거주지를 옮겨 8명 중 7명이 함께 살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원격으로 일하는 게 어려웠다. 일을 하기 위해 서류가 있는 곳에 가야 했고, 결재를 받으러 부장님 자리로 이동해야 했던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하고, 다양한 플랫폼과 서비스가 등장하며 오프라인으로 하던 수많은 일이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내 몸이 어디로 이동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어제 연말정산을 위한 주민등록등본과 가족관계 증명서도 동사무소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해결했다.)
원격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도 많아졌다. 예를 들면, 내가 프리랜서 플랫폼 업워크(Upwork)에서 진행했던 모든 번역 업무는 미국에 있는 파트너와 원격으로 진행됐다. 앱리프트에서 일할 때 베를린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료들과 매주 원격으로 협업했다. 스카이프로 화상채팅을 하거나, 슬랙이나 이메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구글 드라이브로 자료를 주고받았다.
꼭 해외와 엮이지 않더라도 외부 파트너와 일을 할 때, 심지어 내부에 있는 누군가와 일을 할 때도. 미팅이 있지 않은 한 대부분의 일이 메신저, 이메일, 또는 다른 온라인 툴로 이루어진다. 메신저로 업무 얘기를 하는 것도, 이메일도 결국은 다 원격으로 일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원격으로 일하는 것에 익숙하고, 이미 조금씩 하고 있다.
농사, 요리, 공간 운영, 강연, 클래스 등 원격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이건 사람과 사람이 직접 면대면으로 만나는 의미, 오프라인의 의미에서 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 일하는 게 가능한 경우, 원격으로 일하는 경우는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다양한 일이 점점 더 글로벌하게 엮이고 있다. 어떤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빵 터지는 게 비일비재해졌다. (전 세계가 사랑하는 BTS) 서비스나 상품이 다른 나라로 진출하고 잘 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인터넷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비행기표는 점점 더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급화로 교육의 간극, 문화의 차이는 좁아지고 있고, 어떤 일의 진입장벽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다양한 도시에 친구를 사귀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는 때론 일과 엮이기도 한다. (2017년에 디지털 노마드이자 커뮤니티 덕후인 예지님의 팀에 들어가 디지털 노마드 일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예지님이 세계를 돌아다닐 때 만났던 스페인 커플을 통해 연결된 일이었다.)
2017년 초부터 자발적 백수로 지내는 동안 수많은 여행자를 만났다. 디지털 노마드들도 많이 만났는데, 런던 회사를 다니던 한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런 삶을 살려고 했던 건 아니고, 3년 전부터 회사가 매해 직원의 30%, 50%, 70% 퍼센트를 늘려가며 원격근무를 시키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원격으로 업무를 해도 일이 문제없이 굴러간다면, 회사 입장에서도 이득일 것이다. 기본으로 나가는 비용(월세, 인테리어 등)을 대폭 줄일 수 있을 테니까.
회사 밖으로 나와 여행을 하면서 보니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지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모이는 동남아와 유럽의 호스텔과 코워킹 장소. 미팅 때는 직접 모이지만 그 외 업무를 하는 시간과 장소는 할 일만 한다면 꽤 유연하고 자유로워 보였던 실리콘밸리의 구글 본사, 페북 본사, 유튜브 본사, 에어비앤비 본사, 아마존 A9. 자기 일을 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던 버닝맨 등. 다양한 곳을 직접 방문해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자유를 엿보았고, 꿈꾸며 행동하는 사람들에 의한 흐름을 느끼고 돌아왔다.
개인의 파워가 강해지고, 온라인을 통한 연대가 가능해지면서 슈퍼오가니즘이 처음 음악을 만들었을 때처럼 글로벌하게 협업하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끼리는 원격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뉴욕 광고회사를 다닐 때 선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세대가 아날로그 시절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거라고. 자기는 아날로그 시절에 훨씬 익숙한 사람이라 디지털에 조금은 거부감이 있지만, 양쪽에 발을 걸치고 있는 우리 세대가 엄청난 행운을 가진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인터넷과 함께 자란 세대다. 인터넷이 없던 초등학생 때부터 첫 아이폰이 출시됐던 대학생 때까지. 내가 자라는 동안 인터넷도 함께 성장했다. 그 과도기를 몸소 체험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에 모두 거부감이 없다. 조금은 느리고 불편한 게 좋고, 오래된 것들이 최대한 천천히 변했으면 하는 마음과 기술의 발전과 함께 더 큰 자유와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이런 나와 같은 세대가 사회에 나오기 시작했을 때도 여러 가지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 시대였던 포스트 인터넷 세대가 사회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더 큰 Disruption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90년생이 온다'와 같은 책이 나오는 것 같다.)
음악으로만 예를 들면 이렇다. 오디티 스테이션에도 소개한 적 있지만, 자기 방에서 음악을 만들고 녹음해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린 걸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 팬들이 생기고, 음반을 내고 투어를 하는 뮤지션들은 최근 1-2년 사이에 엄청나게 많아졌다. 방에서 음악을 만든다고 해서 '베드룸 팝'이라는 용어도 생겼다.(그러나 Clairo 등의 아티스트는 이 용어를 그리 달가워하진 않는다.) 이런 뮤지션들의 예로는 Tom Misch, Clairo, Cuco, Rex Orange County 등이 있다.
슈퍼오가니즘의 오로노도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포스트 인터넷 세대다. 슈퍼오가니즘의 노래 가사와 뮤직비디오만 봐도 '요즘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사 중 하나는 Prawn Song에 나오는 이 부분이다.
You do you. I'll do me.
너는 너를 해. 나는 나를 할 테니까.
기술을 쉽게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고, 하고 싶은 건 그냥 해보고, 너무 고민하지 않고 이것저것 만들고 세상에 공유하는 게 자연스러운 세대가 점점 더 많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이건 밀레니얼 세대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꼭 이 세대가 아니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회사도 직원을 선택하는 거지만, 직원들도 회사를 선택하는 시대다.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원격 근무를 도입하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한, 일의 방식도 조금 더 유연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광고회사 TBWA가 말하는 Disruption처럼. 사회와 시장에 짜인 관습을 '붕괴'시킴으로써 창의적인 발상과 더 긍정적이고 놀라운 일을 벌인다는 의미에서, 일하는 방식에도 Disruption이 일어나고 계속 변해갈 것이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변화가 조금은 두렵기도 하지만 반갑고 기대되는 마음이 더 크다.
위 이야기는 내가 2017년에 자발적 백수로 돌아다녔던 경험과, 작년 한 해동안 일하면서 관찰하고 느낀 점을 토대로 쓴 글이다. 포스트 인터넷 세대가 사회로 나오면서 변화가 촉진되고 있는 건 맞지만, 꼭 어떤 세대는 이렇다고 구분하고 단정 지어 설명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느꼈던 흐름을 나름의 이유를 들어 설명한 거고, 개개인으로 보면 사람마다 너무 케바케라서 일반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새롭고 빠른 것이 꼭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든 게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듯이 빠르게 올리고, 소비되는 콘텐츠가 화제였다가도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든 콘텐츠가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모두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좋은 것들이 있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성비로 보나 효율로 보나 기술의 발전 덕분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다.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어 고맙고 또 기대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선배가 했던 말처럼 아날로그 시절을 경험했다는 게 다행스럽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인과 아날로그가 주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세상이 빨라지더라도, 느리고 불편하고 비효율적이더라도 나에겐 놓치고 싶지 않은 가치다. 그래서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에 대한 추억이 있는 게 아니어도, 그 자체로 그냥 좋아서 필카로 사진을 찍고 엘피를 모으고, 때로는 디지털에서 해방되는 경험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 거 아닐까. 유행 타지 않고 오랫동안 같은 모습으로 쓰인 '완성된 디자인'을 가진 물건들을 전하는 디앤디파트먼트의 롱 라이프 디자인이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원격으로 일하는 건 반짝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큰 흐름이 될 거라고 예상한다. 개개인이 다양한 방식으로 엮이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 세상이라면, 정답은 없더라도 이 말이 결국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너는 너를 해. 나는 나를 할 테니까!
퇴사하고 1년간 여행 다니며 느꼈던 경험과 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저의 독립출판물에 수록될 예정입니다.
궁금하신 분은 한번 들여다봐주세요 :)
https://tumblbug.com/dearwanderer
목차 참고:
* 슈퍼오가니즘 이미지 출처: diymag.com, readdo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