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기억의 단편집 #01
어렸을 적 우리 집 앞에는 넓은 들판이 있었다. 공기가 무척이나 좋아서 야생동물도 많았다. 여름에는 종종 너구리 가족이 보였고, 겨울이면 기러기 떼가 다녀갔다. 가끔 사슴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가을이면 집 앞에 있는 밤나무에서 아빠가 기다란 막대기로 밤을 따셨다. 멀리 피해 있다가 아빠가 밤을 떨어뜨리면, 내 작은 두 발 사이로 뾰족뾰족한 밤을 두고, 양쪽으로 있는 힘껏 발을 벌려 밤을 깠다. 그렇게 깐 밤을 바로 한입 베어 먹었다가 애벌레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었다.
우리 집 앞에는 반딧불이도 아주 많았다. 어두운 밤, 촉촉해진 잔디밭으로 나가면 주위가 온통 반짝였다. 이 신비로운 벌레 한 마리를 잡아 내 방으로 데려와 불을 꺼놓고 소원을 빈 적도 있다. 그때는 반딧불이가 보기 힘들어질 거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깨끗한 곳에만 사는 곤충인 줄도 전혀 몰랐다. 3년 후 그 들판을 다시 방문했을 때, 예전만큼 반딧불이가 많이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0년 후 다시 방문했을 땐,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많았는데, 원래부터 없었다는 듯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공기 좋은 미국의 동네에서 살다가 열 살이 될 무렵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당시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할머니 집 앞에는 크진 않지만 기다란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당에는 라일락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우리 가족은 2층에서 살았는데, 봄이면 2층 창문 틈으로 라일락 향기가 불어왔다. 그 라일락 나무는 아무리 맡아도 질리지 않고, 필 때도 질 때도 참 예뻤다. 라일락 꽃잎이 지면 바닥에 작은 별들이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당도 바뀌고 집 모양은 조금씩 바뀌어도 그 나무는 항상 우리 집 마당 앞에 있었다. 그 집에 살 때는 몰랐는데 - 그냥 집에 가면 있는 나무였으니까 - 내가 그 나무를 꽤 좋아했다는 사실을 이사를 가고 나서 알았다.
2-3년 전 할머니 댁이 공사를 하면서 내가 좋아하던 라일락 나무는 가지가 모두 잘려버렸다. 나무를 아예 뽑아내진 않았지만 여기저기 잘려버린 채 서있는 나무를 보니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꼭 잘라내야만 했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할머니가 힘들게 낡은 집을 보수하던 과정에서 이미 잘려버린 나무를 두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얼마 전 죽은 줄만 알았던 라일락 나무에서 조금씩 다시 새싹이 자라나는 걸 봤을 땐, 반갑기도 하고, 당장은 예전처럼 꽃 피우지 못하는 모습이 짠하기도 했다.
밤 따기와 반딧불이, 그리고 라일락.
당시의 내가 당연하게 즐겼던 것들을 이제는 예전만큼 쉽고 자연스럽게 즐길 수는 없게 되었다. 언제 또 내가 직접 그렇게 가족들과 밤을 따러 가게 될까 싶고. 영화 속에서 CG로 등장하는 반딧불이들을 보면, 실제로 내가 진짜 반딧불이들과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그 많은 반딧불이들을 어디서 그렇게 쉽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이란 가사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란걸 알았다.
예전의 그 나무 덕분에 나는 아직도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 그 시절의 나와 그 시절의 우리 집이 생각난다. 창문 밖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던 라일락 향기가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줬다는 걸, 이게 누구나 가진 기억은 아니라는 걸 후에야 깨달았다. 밤 따기와 반딧불이, 그리고 라일락은 그 시절의 나에게 주어졌던 작지만 아주 근사한 사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