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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Jul 23. 2017

당신은 원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 데이빗 보위

V&A의 <David Bowie Is> 전시를 보고

바르셀로나에서 18일을 머무르며 좋은 전시를 정말 많이 보게 되었다. 이 도시는 유난히 많은 거장 아티스트들을 배출한 도시다 - 달리, 피카소, 가우디, 미로까지. 이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마침 또 나와 사과가 볼 수밖에 없는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바로 비욕과 데이빗 보위의 전시. VR을 사용한 비욕 전시는 신세계였다. 신기해서 깜짝깜짝 놀라고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처음 '경험'해보는 전시였다 - (VR을 쓰고 3D 애니메이션 형태의 새로운 세계에 접속한 나는 비욕 노래를 들으며 나방이 된 비욕의 상처를 꼬매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욕의 가슴에 난 자궁 모양의 상처를). 달리에 가우디에 비욕에 보위라니. 하루가 멀다 하고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정신이 다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한꺼번에 좋은걸 너무 많이 봐서 뇌가 얼얼해진 느낌이랄까.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니 내 것으로 흡수할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좋았던 전시가 많지만 특히 좋아하는 인물인 데이빗 보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전시를 본 이후 전시회에서 산 데이빗 보위의 책도 읽고 노래도 계속 들었다. 데이빗 보위 전시를 보고 느꼈던 것들을 그렇게 천천히 내 것으로 소화시켰다. 은연중에 계속 데이빗 보위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잠에서 일어나면서도 보위 노래가 생각날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위의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David Bowie Is는 데이빗 보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그의 음악과 노래 가사, 영상, 입었던 옷, 살아생전의 인터뷰,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의 인터뷰 등 300개가 넘는 전시품을 통해 데이빗 보위의 50년간의 창작활동을 조명하고 있었다. 전 세계 150만 명이 넘게 감상한 이 전시는 런던, 시카고, 베를린, 파리, 도쿄 등을 거쳐 바르셀로나에 와 있었다.


전시에 들어가기 전에 스태프들이 헤드폰을 나눠주었다. 머리에 헤드폰을 끼고 보는 전시였는데,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보위의 노래나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의 소리가 나왔다. 컨텐츠 하나하나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느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 나도 사과도, 전시를 보는 내내 서로 별다른 말도 없이 초 집중했던 것 같다. 전시가 끝날 때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두 시간 가까이 시간이 흘러있었다.



내가 보위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이유

누군가 나에게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본다면 '그냥 좋아'라고 답하겠지만, 그래도 굳이 좋아하는 이유를 꼽는다면 내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여러 가지 기억들 때문이다.


랜덤한 기억들 몇 가지

* 07년인가 08년도에 보위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못했다. 취미로 공연 사진을 찍는 친구가 보위의 공연에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가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갔어야 하는 공연이었다. 여전히 조금은 아쉽다.
* 베를린에서 그래피티 투어를 할 때 투어 가이드가 보위의 광팬이었다. 그래피티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사이사이 보위의 베를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투어 이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대 위에서 보위와 믹 재거가 키스를 했다는 소문이 도는 라이브 클럽 SO36에 찾아가 공연을 봤었다. 그리고 또 잘 몰랐던 사실 하나. 보위는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데 작은 기여를 했다. 서독에서 보위가 야외공연을 했는데 장벽 넘어 동독 사람들도 몰려들어 함께 Heroes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ㅠㅠ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음악을 함께 즐긴 거다. 정말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감동이다.
* 작년 글래스톤베리의 피라미드 스테이지는 데이빗 보위의 트리뷰트로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글래스톤베리는 보위의 죽음을 애도하며 공식적으로 보위의 노래인 Starman 플래시몹을 준비했었다. 유튜브에 올라온 스타맨 플래시몹 춤도 여러 번 보고 갔는데, 내가 가장 기대했던 순간인데! 시간을 헷갈려서 플래시몹을 10분 차이로 놓쳐버렸다. 그때 나는 거의 울뻔했다. 그리고 피라미드로 오기 전에 머리를 감은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사과에게 '머리 괜히 감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ㅋㅋ


스페이스 오디티

데이빗 보위 하면 이 노래를 빼놓을 수 없지. 우연히 아폴로 11의 달 탐사와 맞물려 더욱 사랑받았던 노래이자 보위의 시그니쳐라고도 할 수 있는 노래. 내가 엘피바에 가면 가장 자주 신청하는 곡 중 하나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던 기억들도 떠오르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는 이 노래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더 좋아한다.


(좌) 전시에 '스페이스 오디티'의 노래 설명과 함께 걸려있던 사진. 아폴로 11이 달에서 찍은 지구의 모습.

(우) 보이저 호가 마지막으로 보내온 사진. 저 주황색 빔 사이 작고 푸른 점 하나가 지구다.


칼 세이건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 중 하나다. 칼 세이건은 천문학자이지만 철학적으로도 마케팅적으로도 배울게 많은 사람이다. 그는 내가 아는 최고의 스토리텔러다. 칼 세이건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창백한 푸른 점의 이야기는 보이저호가 태양계를 벗어나기 직전에 해왕성을 지나며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사진 한 장으로 칼 세이건은 시간을 초월하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던지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발췌해보면 이렇다.


우리가 우주 속의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에 대해 저 창백하게 빛나는 점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 행성은 사방을 뒤덮은 어두운 우주 속의 외로운 하나의 알갱이입니다.

이 거대함 속에 묻힌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 줄 이들이 다른 곳에서 찾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세계를 방문할 순 있지만 정착은···아직 불가능하죠. 좋든 싫든, 현재로선 우리가 머물 곳은  지구뿐입니다.

천문학을 공부하면 사람이 겸손해지고 인격이 함양된다는 말이 있죠. 멀리서 찍힌 이 이미지만큼 인간의 자만이 어리석다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겁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서로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하고 우리가 아는 유일한 보금자리인 창백한 푸른 점을 소중히 보존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죠.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 곳에! 전체 구절이 더욱 감동적이니 관심 있는 분들은 봐주세요 :) )


스페이스 오디티의 노래 가사에서 우주비행사인 메이저 톰은 비행기 밖으로 나가 우주에 둥둥 떠있는 채로 지구를 보며 이렇게 얘기한다.


지구는 푸르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이 가사 때문인지 내 머릿속에서는 칼 세이건과 데이빗 보위가 함께 연결된다. '지구는 푸르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무기력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오히려 나에게는 이게 '창백한 푸른 점'을 연상시키며 미묘한 희망과 의무감 같은걸 느끼게 만든다. '먼지만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살아서 즐기고 있는 모든 것이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 삶은 내가 어떻게 만들어나가느냐에 따라 선택하기 나름이란 생각도 든다. 물론 노래 Ashes to Ashes에서 메이저 톰이 마약에 쩌든 Junkie로 나오는 것도 알고 있지만 뭐 예술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데이빗 보위와 칼 세이건은 어떤 분야 하나를 개척하고 대중화시켰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아래에는 휴매니티에 대해 느끼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BBC가 인간이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장면을 내보내며 '스페이스 오디티'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서 월터가 본인이 가지고 있던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헬리콥터로 뛰어가 날아오르는 순간에 이 노래가 깔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당신은 원하는 누구든지 될 수 있다

You can be whoever you want


데이빗 보위는 수많은 캐릭터로 분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이스 오디티 이후 오렌지색 머리와 외계인 같은 모습의 지기 스타더스트로 시작해 얼굴에 번개 모양을 그렸던 알라딘 세인, 한 눈을 가린 할로윈 잭과 멀끔한 정장 차림의 The Thin White Duke 까지.



보위는 하나의 페르소나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남자 같은데 여자 같기도 하고, 사람인데 외계인 같기도 하고. 그의 아이덴티티는 사회가 한 마디로 규정짓는 걸 비웃기라도 하듯이 경계선을 넘나 든다. 어떻게 눈도 오드 아이고... (어렸을 때 친구랑 싸우다가 눈을 맞았는데 그 뒤로 한 쪽 눈의 색깔도 바뀌고 동공도 커져 회복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끔 보면 진짜 우주에서 온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든다. 다프트 펑크의 인터스텔라 5555에 나오는 밴드처럼 '사실은 어디 다른 행성에서 왔는데 지구로 납치되어 온 거 아닌가' 하는 상상이 들 정도이지만 어쨌거나 보위도 사람이다. (!)


자기표현의 대가

전시장 안에는 보위가 입었던 무대의상이 여러 개가 전시되어 있었다. 옷이라기 보단 예술에 가까웠다. 야마모토와 콜라보했던 의상도 그렇고. 특히 79년도 SNL에 나왔을 때 입은 의상이 인상적이었는데 실제로 보면 알겠지만 옷이 말이 안 된다. 옷이 아니라 무슨 거대한 도자기? 같은 느낌이었다. 크기도 엄청 크고 완전 무거워 보였다. SNL 공연 영상도 나오고 있었는데, 이 옷을 입으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코러스를 하는 사람들이 데이빗 보위를 말 그대로 '들고' 나온다. (ㅋㅋㅋ) 실용적인 면을 포기해버릴 정도로 그는 입고 싶은 옷을 입었다.


(좌) 보위x야마모토 (우) 1979 SNL 공연 영상 중 데이빗 보위를 들고 나오는 중ㅋㅋㅋ


전시에는 이런 구절이 반복적으로 적혀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은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입고 표현할 자유가 있다

We are free to be whoever and whatever we want to be
dress and express however we want


곧 있으면 가게 될 예정이라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라 그런지 나는 전시를 보는 내내 버닝맨이 떠올랐다. 버닝맨의 핵심 원칙 중에는 "radical self-expression"이란게 있다. 자기표현을 극대화할 것.


'자기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왜 그렇게 힘든 건지. 버닝맨에는 아예 벗고 다니는 사람도 많고 코스튬을 입은 사람도 많다. 오히려 평범하게 입으면 튀는 곳이다. 그 누구도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든 실험해볼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고 (물론 도덕적인 범주 내에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더 솔직하게 자기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된다. 버닝맨은 '자기표현을 극대화하는 것'에는 치유적인 힘이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원하는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기만 해도 뭔가 스스로에게 힘을 부여해주는 게 있다.


보위는 이 분야의 대가였다. 한계가 없는 듯이 자기 자신을 지우고 재창조하는 일을 반복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남들이 원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고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변화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우연에게 자리 내주기

Verbasizer


전시 중 또 인상적이었던 건 보위가 만든 작사 프로그램인 Verbasizer. 신문이나 종이에 적힌 여러 가지 단어를 잘라 놓고 섞은 뒤 랜덤하게 하나씩 뽑아서 문장으로 만들던 보위는 같은 원리로 여러 단어를 조합해주는 프로그램 Verbasizer를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사용해 나온 랜덤한 문장들로 보위는 노래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업물들은 보위의 최고작이라고도 평가받는 '베를린 3부작'에 실려있다. 랜덤한 문장들은 보위에게는 새로운 영감이 되어주었고, 듣는 사람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만든다.


작업방식만 봐도 알겠지만 보위는 꼭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겉모습에 너무 신경 쓰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어떤 의미를 담고 있고 진정성이 있어야지만 예술은 아니다. 겉모습에 신경 쓴다고 해서 진정성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고. 보위는 자신이 만든 곡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미 없음 meaningless'을 좋아했다. 내가 읽은 책에서도 계속 이런 얘기가 나왔다.


"보위의 노래는 그 무엇에 대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다."

- ‪The Beautiful Meaninglessness of David Bowie, The New Yorker



전시장이 닫을 때쯤 스태프들이 공연을 보러 오라고 우리를 부추겼다. 마지막 공간에서는 공간을 둘러싼 4면 전체에 보위의 공연 영상들을 틀어주었다. 전시를 관람하던 관객들은 바닥에 앉거나 소파에 앉거나 일어선 채로 보위의 공연을 관람했다. 그 모습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국적도 나이도. 보위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없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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