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운동이 지독히 싫어서 운동 안 하고 살 빼는 다이어트만 기웃거리던 내가, 운동하는 사람들을 맘 속으로 조롱만 하던 내가.
‘저기요, 답답한 사람들아. 다이어트는 90프로 이상이 식단이라구욧! 그렇게 먹으면서 운동만 하니까 근육 돼지가 되는 거라니까욧! 시간낭비, 의지낭비하면서 왜 저러나 몰라.’ (정말 진심, 죄송했습니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 왜 어쩌다가 갑자기 운동에 매료되어 운동 중독자 혹은 운동 전도사 비스므리하게 행동하고 다니는 걸까. 나도 궁금해졌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그냥 어느 날 ‘갑자기’였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렇게 시작된 운동이었다.
2020년 여름, 집에서 사부작 시작된 운동이 햇수로 4년이 되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그다지 맹렬하게 하는 운동은 아니지만 주 6~7회 쉼 없이 4년간 지속해 온 것이 스스로 대견하다. 언제부턴가 운동을 하지 않은 날은 기분이 몹시 다운되어 아주 몹쓸 하루로 취급해 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운동을 제끼는 날은 운동만 제끼는 것이 아니라 내 삶 자체를 제끼는 마냥 아주 못마땅한 하루가 되어 버린다. 그런 날은 최대한 누워서 움직이기 싫고, 먹는 것도 대충 보이는 대로 먹게 되고, 저녁이 되면 맥주 한 잔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럴 걸 알기 때문에 ‘운동할 결심’ 보다 ‘운동 안 할 결심’을 하는 것이 더 힘든 사람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어느 하루’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하루키의 머릿속에 돌연 무엇인가가 반짝하고 아주 작고 눈부시게 빛났고, ‘그래, 이제부터 소설을 쓰자.’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과 내 운동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그 '어느 하루'만큼은 나도 느껴보았다는 것이다.
운동 좀 하라고 다그친 사람도, 한심하다는 듯한 눈빛을 발사한 사람도 없었지만 그냥 어느 날 부스스 일어나 집에 있는 TV를 켜고 영상을 보며 운동을 시작했다. 타고나기를 운동신경 없는 사람이라 큰 기술이 필요한 운동은 안될 것 같았지만 아령 두 개 양손에 하나씩 들고일어나는 것쯤은 문제없었다. 주부 생활 10년 동안 꽉 채운 마트 가방 두 주먹 불끈하며 스쾃 자세로 들고 일어서는 것쯤은 일상다반사였다. 운동을 해서 몇 Kg을 빼겠다 혹은 언제까지 운동을 지속하겠다는 계획이나 목표도 없이 그냥 시작되었다. 하루키처럼 무언가가 반짝했고 그렇게 어느 날 시작된 운동을 별일 없이 4년 동안 계속해왔다.
생각해 보면 2020년 당시 우리를 숨 막히게 했던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이 한없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2019년 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마스크 없이 숨조차 쉴 수 없는 비참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코로나로 제한되고 좁아져 얽힌 삶의 실타래는 아무리 아우성치며 피하고 부정하고 싶어도 고스란히 우리 앞에 놓여있었다. 그 삶을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맘처럼 풀리지 않는 인생이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삶이라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코로나는 추가로 사이드브레이크까지 단단하게 채워주었다.
2020년 여름, 후끈한 바깥공기에 갑옷처럼 단단한 마스크의 공격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집에서만 무력하게 시간을 떼우고 있던 어느 날, 코로나의 공격으로 온몸의 근육섬유가 푸실푸실 풀려버려 지방인지 근육인지 정체성을 잃어가던 어느 날. 그때 ‘아주 작은 눈부심’을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잠깐만. 딴 건 몰라도, 내 몸뚱아리는 내 집에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렇게 ‘그냥’ 시작된 운동이 나에게 선물한 것은 ‘백 퍼센트 내 의지로 컨트롤하는 나의 시간’이다. 그 선물은 ‘인생도 내 의지대로 움직여질 것 같은’ 기대감을 조금씩 키워주었다. 체력은 확실히 좋아졌지만 몸무게는 조금 떨어지다가 제자리걸음에서 왔다 갔다 한다. 표정은 확실히 밝아졌지만 평범한 중년 여성의 몸매는 좋아져 봤자 거기서 거기다. 확실하게 변한 건 내 마음이다. 많은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이 길을 오롯이 내 의지만으로 불만 없이 꾸준히 가고 있음은, 내가 해내고 있다는 그 사실은 ‘지금의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진실이다.
“오늘 운동 30분 어떠세요.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반짝하면서 일어나서 시작하세요. 대단한 마음가짐 이런 것 필요 없습니다. 룰루레몬 레깅스 필요 없습니다. 닭가슴살도 단백질 셰이크도 필요 없습니다. 운동이 좋아질 때까지 날 위해 쓸 수 있는 30분만 챙기세요. 뒷일 생각 말고 일단 한번 그렇게 시작해 보시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