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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Jun 04. 2024

내가 너의 헬륨이 되어줄게

 어릴 때 동물원에 가면 커다란 헬륨풍선이 너무 갖고 싶은데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사주지 않으셨다. 그 당시에는 헬륨 풍선이 흔하지 않았고, 엄마 아빠가 외부에서 무언가는 사주시는 일도 흔하지 않았다. 동그랗고 커다란 은색 포일 위에 알록달록한 그림이 들어있는 풍선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을 동물원에서 만나면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안 사줄 거 뻔히 알기에 사달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엄마는 “저런 포일 풍선은 전기가 통하기 때문에 들고 다니다 어디 닿으면 감전이 되어서 큰일이 날 거야”라는, 꽤나 설득력 있는 말로 나를 달랬다. 정말 그 말을 믿어버린 나였다. 눈앞에 포일 풍선을 들고 다니는 애들이 걔네 엄마가 그 말을 안 해줘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나도 위험을 무릅쓰고 한 번 손에 들어보고 싶었다. 


 놀이동산에서 파는 기념품 인형도 갖고 싶었다. 물론 입 밖으로 갖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내 마음이 부모님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루는 아빠와 동업을 하시던 친구분의 가족들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게 되었다. 그 친구분은 풍선이나 기념품에 너그러운 분이셨다. 기념품 인형 사달라는 아이의 말에 선뜻 지갑을 여셨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내 얼굴에 얼마나 많은 부러움이 묻어있었던 건지, 친구분은 나를 보고 와보라고 하신다. 


“윤희도 가지고 싶은 거 하나 골라봐. 아저씨가 사줄게.”

“저.. 풍선으로 골라도 돼요?”


 다시는 내게 오지 못할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실까 봐 서둘러 풍선 하나를 골랐다. 아저씨의 지갑이 다시 열렸고, 난 질끈 눈 감아버렸다. 정말 계산이 되는 거였다. 정말 나의 풍선이 되는 거였다.       


 엄마는 서둘러 달려오셔서, 애한테 뭐 하러 이런 걸 사주냐며 미안한 표정이 가득이었다. 

“윤희는 이런 거 필요 없잖아. 그지?”

난 대답도 하지 못하고 풍선 끈만 더 꽉 손으로 잡았다. 세게 붙들지 않으면 정말 하늘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가벼운 풍선이었다. 내 거, 내 풍선으로 정해진 아이였다. 이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 아빠 표정이 좋지 않았다. 화를 잘 안 내시는 아빠까지 얼굴이 빨개져서 무서웠다. 결국 개별면담 시작. 

 아저씨에게 뭐 하러 사달라고 했냐는 다그침에 분명 내가 사달라고 한 것을 아니라고 말했다. 

 너무 갖고 싶은 얼굴을 하니까 사주신 것 아니냐는 물음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주신다고 했을 때 "저는 괜찮아요"라는 말을 왜 못 했냐는 질문에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동업하던 그 아저씨와 아빠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철없이 풍선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엄마 아빠의 심기는 많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가지고 싶은 풍선을 가졌지만,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미안하고, 죄송하고, 민망하고, 속상하고, 자책하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실려 둥둥 떠 있던 풍선도 점점 무겁게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 결국은 이렇게 떠오르지 못하고 내 곁에서 무거워질 것을. 결국 쓰레기가 되어서 내 곁을 떠날 것을. 왜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

‘사고 싶은 것을 산다고 해도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혹은 오히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또 나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느껴버린 나는 투정 없이 착한 아이로 커왔다.




 내가 엄마가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이 간절하게 사고 싶어 하는 물건이 있다면 웬만하면 사주려 한다. 부담되는 가격의 물건은 단호하게 못 사준다고 말하지만, 사고 싶은 마음은 마음껏 표현하도록 해준다. 마음을 표현해 주면 함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다. 정말 너무나 사고 싶으면 같이 돈을 모아서 사자고 제안한다. 돈을 모으다 보면 마음이 바뀌는 경우도 있으니 그 또한 좋다. 


 사고 싶은 그 마음 자체는 나쁜 마음이 아니고, 충분히 표현되어도 되는 마음이란 것을 알게 해주고 싶어서 아이들 표정을 읽고 "엄마한테 말해봐"라고 먼저 다가가 준다. 사고 싶다고 엄마가 다 사주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 싶다고 일단 말해보는 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쇼핑은 늘 웃음이 넘친다.      

어린이날 자기 선물 고르는 둘째 아들 (비싸서 사지 못했던 장난감, 아쉬움..)

 놀이동산을 가면 정말 다양하고 귀여운 기념품들이 넘치는 요즘이다. 놀이동산, 아쿠아리움, 동물원, 박물관, 공연장. 어디를 가든 마지막에는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공간을 통과하게 만든다. 대단한 상술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이들이 보면 사고 싶긴 하겠다’라는 공감도 함께한다. 아이들 손을 잡고 눈 질끈 감게 하고 후다닥 속도를 내면서 그 공간을 통과하고 싶기도 하지만 결국 아이들 발걸음에 속도를 맞춰준다. 고맙게도 두 아이 모두 무언가를 당장 사달라며 때를 쓴 적은 없다. 꼭 사고 싶은 물건이면 엄마가 사줄 것이란 걸 알아준 것일까. 아님 , 사고 싶은 물건이 많지 않은 사내놈들이라 그런 것일까. 어쨌거나 그 마음도 고맙다. 


뭐가 되었든 엄마는 너희들 마음속의 헬륨이 되고 싶으니까,
 붕 뜨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봐. 일단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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