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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bra윤희 Jun 11. 2024

산에 다 버리고 오자

 초등학교 때는 신림동 관악산이 나의 뒷산이었다. 초등이 되기 전부터 내가 아는 산은 관악산 뿐이라, 한국의 모든 산은 다 그 정도 규모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험하고 높은 ‘악산(岳山)’을 ‘뒷산’이라고 이름 짓고 엄마와 나는 주말마다 오르고 내렸다.


 관악산에는 ‘연주암’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내 기억에 엄청 높은 곳에 있는 절이었다. 그 절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연주대’라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 오르면 관악산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연주암까지 오르면 점심때가 되어 스님들이 밥도 주고 주스도 주셨다. 꼬맹이가 높은 절까지 올라왔다며 칭찬도 받고 알록달록 사탕도 받아왔다. 우리는 종종 ‘연주대’까지 올라 마음에 있는 숨을 다 쏟아내고 내려오곤 했었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근육이 잘 생기지 않는 물렁살 체질의 내가 어릴 때 엄마의 손을 잡고 매주 산에 오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주말에 더 누워있고 싶은 마음을 털어내고 엄마를 깨우러 방으로 갔던 어린 나였다.


“엄마, 나랑 산에 갈래? 산에 가서 수다 떨고 오자.”     


 엄마를 늘 슬프게 만들었던 외할머니는 큰 도로만 건너면 만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셨다. 엄마와 나, 그리고 어린 동생이 손을 잡고 걸어서 할머니 댁으로 향하던 무수한 날들이 지금도 기억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종종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큰 딸이었던 나는 엄마의 손짓 하나 눈빛 한 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가 왜 저렇게 슬픈 얼굴을 하고 있을까? 할머니랑 무슨 얘길 나눴길래 우리랑은 한마디도 안 할까? 그렇게 갈 때 보다 두 배는 더 길어진 듯한 귀가 길을 재촉했다.      


 할머니와 늘 사이가 틀어져있어 외갓집만 다녀오면 며칠 힘들어하는 엄마를 달래줄 사람은 우리 집에 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자존심 때문에 엄마가 아빠에게 털어놓지는 못할 것 같고, 동생은 그냥 철부지 어린이였으니까.


“부모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는데.”     


 엄마가 종종 하던 그 말을 온몸으로 부정하고 싶었다. ‘엄마, 내가 그 말 틀렸다는 걸 증명해 줄게. 엄마는 자식 복 있어. 내가 있잖아.’ 나는 늘 마음으로 그렇게 외쳤다. 나의 위로가 엄마에게 닿기를 늘 빌고 빌었다.   


   



 산에 가는 길의 초반, 종종 다리가 무겁고 분위기는 맑지 못했다. 엄마가 밤새 속상해서 울었던 것인지, 눈이 부어있는 날도 있었고, 한마디도 쉽게 뱉어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걷고 오르며 엄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우리 둘은 어느새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산에는 엄마의 관심을 돌릴만한 것들이 가득했다. 여름엔 가는 곳마다 개울이 흘러 시원한 소리가 가득했고 봄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꽃들이 소복소복 피어나서 귀엽고 행복한 이야깃거리가 흘러나왔다. 가을에는 도토리와 밤이 많아서 꼭 봉지를 하나 챙겨서 올라갔다. 고랑 사이사이 떨어진 토실한 도토리들이 많은 관악산이 좋았다. 도토리를 주워 담다 보면 엄마의 슬픈 마음도 그대로 검은 봉지 속으로 쏙쏙 들어가 버리겠지. 겨울에는 추워서 자주 오를 수는 없지만 따끈한 코코아를 보온병에 넣고 올라갔던 여러 날들을 잊을 수 없다.   

   

 산에 오르면 엄마의 웃는 모습이 있었고 산에서 내려올 때 엄마는 다시 '슬프기 전의 우리 엄마'로 돌아와 있었다. 엄마는 속상한 마음을, 나는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을, 우린 관악산에 다 버리고 내려왔다. 다리가 아프고 힘들어도 엄마의 맑은 얼굴이 있었기에 행복한 귀갓길이었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일까. 나는 지금도 걷는 것이 좋다. 걷기 시작하면 마음속에, 머릿속에 가득했던 상념들이 나의 한 걸음 한 걸음과 함께 쏟아져 나온다. 이유 없이 우울했던 마음도,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걱정도 일단은 좀 더 명확해진다. 특별한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니다. 걷기 전이나 후나 변한 상황이란 없다. 하지만 내 마음과 대화하다 보면 조그맣게 튀어나온 실마리가 보이고 생각이 개운해진다. 적어도 내 마음이 왜 이런지는 확연해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결책도 나온다.


 너무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아무리 걸어도 눈물만 흐를 때가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울며 걸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눈물만 흘리다 끝나는 걷기도 좋다. 집에 있었으면 속상한 마음을 표현도 못한 채 곪아버려 괜히 가족들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고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슬플 때는 가족과 대화하는 것보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편이 훨씬 낫다. 결국 내 마음정리는 내가 해야 하니까.      




 지금 사는 동네에도 ‘뒷산’이 있다. 동네 사람들은 ‘산’이라고 부르고 멀쩡한 이름도 있지만, 내 눈에는 그냥 언덕으로 보인다. 산 같지 않은 산이지만 매 해 봄에 귀여운 ‘개나리축제’가 열린다.  ‘개나리 축제’가 열리면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언덕 같은 산을 올라본다. 나에게 굳이 눈치 보며 말을 거는 아들이 없어서 좋다. 내게 주어진 질문 없는 그 시간이 문득 너무 감사하다. 개나리처럼 발랄하고 방정 떠는 발걸음으로 충분한 우리의 산행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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