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ra윤희 Jun 18. 2024

바보가 되어도 괜찮다

에필로그

 <안녕? 나 또 왔어> 연재북을 꽤 오랫동안 써 온 느낌이다. 내 기분으로는 30편 정도는 쓴 것 같은데 확인해 보니 오늘이 15화라고 한다. 내 예상의 딱 반 정도 되는 글의 양인데, 왜 그렇게 긴 여정처럼 느껴졌을까? 아마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이 연재북을 통해 과거로 끊임없이 넘어가는 과정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지금과 과거 이 두 시간이 더해지면서 두 배의 과정으로 느껴졌으려나?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다시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이들은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을 다시 들여다보고 그 모습을 면밀하게 음미한다. 삶을 이루고 있는 재질과 세부 사항을 들여다본다. 
-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p95 -     


 브런치 작가 신청 전에 글쓰기 수업 수강을 신청할까 말까 고민하던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 학원비가 지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평범한 주부에게 10만 원이 넘는 돈을 쓴다는 것에는 큰 결심과 다짐이 필요했다. 1주일 이상을 고민했다. 18만 원이면 큰아이 좋은 농구화도 살 수 있고, 작은 아이 사고 싶었던 그래비트랙스(장난감)도 사 줄 수 있는 돈이었다. 

 누군가 당장 다가와 “글쓰기 수업 들어서 뭐 할 건데? 그거 들으면 돈 벌 수 있어? 글 쓰는 게 돈이 되나?”라고 물어봤더라면 나의 마음은 스르륵 무너져버려 신청을 포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런 질문은 내게 오지 않았고 혼자만의 고민으로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고민이 한창이었던 어느 날 둘째 아이를 따라 수영장 참관수업에 갔다.      


 수영장 물은 하늘색 얼음처럼 풀장을 가득 매운 채 미동 없이 담겨있었고 준비운동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이 하나 둘 수영장 안으로 들어왔다. 두 명의 친구가 조금은 경직된 채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고 세 번째 친구가 들어왔다. 그 친구는 갑자기 수영장 기둥에 숨어 두 명 중 한 친구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잠시 후 커다란 소리와 액션으로 친구에게 존재를 알린 세 번째 친구는 깜짝 놀란 친구 얼굴을 보고 깔깔 웃었고 그 웃음은 수영장의 모든 침묵을 삼켰다. 하늘색 얼음도 살살 녹아버려 곳곳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들어오는 다른 아이들도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웃음의 진원을 궁금해했다.      


한 어린이의 악의 없는 작전이 큰 수영장을 이토록 반짝이는 밝음으로 가득 매우다니. 

‘그 작은 작전이 나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내 인생에도 어딘가에 숨어 나에게 다가오는 기쁨이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에 홀로 눈물이 차올랐다. 딱딱하게 굳어 흔들림 없이 유지되던 내 삶에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생각에 눈물을 닦고 핸드폰을 열었다. 18만 원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8만 원은 방금 그 아이의 서프라이즈처럼 내 인생을 흔들어 줄지도 몰라. 한발 내디뎠으니 두 발, 세 발도 자신 있을 거야. 살살 녹았던 수영장의 하늘색 얼음처럼 딱딱한 나의 인생도 그렇게 조금씩 녹아버릴 거야.'     

     



 그날 그 세 번째 친구의 발걸음, 그리고 조금씩 흔들리던 풀장의 물이, 나에게는 천천히 플레이되는 슬로비디오 같았다. 지금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보니 그때의 단상이 적혀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글쓰기가 시작되면서 모든 순간이 소중해졌다. 휙 지나가버릴 순간의 감정을 다시 붙들고 늘어지려 한다. 전에는 절대 하지 못했을 도전도 시작된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홀로 자동차에 앉아 한참을 노래 들으며 오늘의 일상을 넘겨보기도 하고,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멀리까지 걸어갔다 오기도 한다. 괜히 새벽 4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말도 안 되는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두 배의 인생을 사는 작가가 되어가고 있다. 시간이 필요한 내 안의 느림보를 위해 발걸음을 늦추게 되는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은 흔들리고 있음이다. 


결국 당신은 돈을 버는 일보다 글을 쓰기 위해 바보가 되는 것도 무릅쓰는 글쟁이의 인생에 더 많이 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들은 결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다. 글을 쓸 시간이 많을 때 나는 아주 부자가 된 기분이 든다. 
-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P96 -         

      



그동안 부족한 제 연재글을 읽어 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읽고 쓰는 평범한, 저란 사람의 모습과 생각을 조금이나마 소개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다음엔 조금 발랄한 연재북으로 등장하고 싶어 졌어요. 계속 지켜봐 주세요.^^


이전 14화 산에 다 버리고 오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