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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듀 (Tendu)

미래소년 코난의 발가락



큰 맘먹고 발레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난생처음 바를 잡고, 기본 동작인 플리에(Plié)를 통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당신은 새로운 세상의 문턱을 넘은 셈이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무엇을 할까? 발레는 그저 우아하게 가만히 서 있는 포즈에 그치지 않는다. 끊임없는 움직임(movement)을 만들어 내는 작업인 발레… 제자리에서 기본자세에 대해서  준비를 마치고 플리에를 통해 살짝 움직임을 경험했다면 다음 단계는 다리를 제대로 뻗는 연습에 들어가야 한다. 가장 발레답게 우아하게 발을 뻗는 첫걸음 턴듀(Tendu)에 대해서 고민해보자.

**턴듀(Tendu)는 보통 탄듀, 땅뒤 등으로 표기된다. 외래어이므로 본문에서는 턴듀로 통일해서 호칭하겠다.





회상 1_

출처 : 미래소년 코난 이미지 (다음검색)

필자가 어릴 적 상당히 재밌게 봤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미래소년 코난(未來少年コナン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作)이다. 중년 기성세대인 윤여사의 어린 시절에 나온 애니메이션이지만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작(秀作)이다. 주인공 코난은 작품의 암울한 배경과는 대조적으로 상당히 유쾌한 성격에 괴력을 지닌 어린 소년이다. 달리기도 잘하고, 창던지기의 실력도 뛰어나지만, 코난 하면 역시 가장 인상 깊게 떠오르는 것은 엄청난 발가락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비행선 날개, 난간 등에 한쪽 발가락 끝으로만 잡고도 떨어지지 않고 온 몸을 지탱해 매달려 있던 장면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강렬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오늘 이야기할 턴듀는 우리가 재밌게만 보았던 바로 이 발가락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회상 2_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가 된 입장에서 요즘에는 볼 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가을 운동회 때 꼭 남녀 파트너를 지정해서 ‘포크 댄스’를 추는 순서가 있었다. 프리 사춘기 시절에 해당하는 서서히 이성에 눈을 뜨고 묘한 설렘이 있던 4-5학년 시기에 이성친구와 손을 잡고 공개적으로 춤을 춘다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것도 선생님들 주관하에 학교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보기 드문 장관이었다. 다른 동작은 기억이 안 나는데 손을 맞잡고 “오른발을 앞에 놓고~ 오른발을 뒤에 놓고~~, 왼발을 앞에 놓고~ 왼발을 뒤에 놓고~~ 손을 잡고 한 바퀴 돌고~” 등의 동작 정도는 기억이 난다. 그렇다. 여기에서 분명 한 스텝씩 발을 앞뒤로 놓는 장면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이 상황이 어떤 동작인지 상상이 갈 것이다. 자! 여기서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본다.



취미발레인들이 발레의 기본 동작 중 하나인 턴듀를 할 때 범하기 쉬운 오류가 여기서 발생한다. 바를 잡을 때 좋아하는 남학생 손을 잡은 소녀처럼 가볍게 잡은 것 까지는 숙지를 하는데 비해 발동작 턴듀를 할 땐 포크 댄스 추는 여학생처럼 너무 사. 뿐. 히. 스텝 놓듯이 발을 밀어낸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사뿐히 발은 앞뒤로 내미는 것은 턴듀가 아니다.

제대로 된 턴듀 드방(Tendu devant_다리를 쭉 펴고 발을 앞쪽 바닥으로 밀어내는 동작) 한방(?)에 가끔은 발바닥 아치가 찌릿하게 쥐가 날 정도로 힘 있게 밀어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다리에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복부 코어에서 시작해 고관절에서 대퇴사두근을 지나 무릎과 종아리와 발목을 통과해서 다섯 발가락까지 균일하고 강한 에너지가 짧고 굵게 한 번에 전달되어야 한다. 턴듀 드방을 할 때는 발목이 안짱이 되지 않게 턴아웃하면서 (최대한 발뒤꿈치가 천장을 바라본다는 기분으로) 힘을 줘야 하고 1번이나 5번 발에서 시작한 발이 턴듀 동작을 하는 순간 발바닥 전체(발가락 포함)에 붙은 초강력 씹던 껌을 바닥에 문질러서 없애버린다는 기분으로 뻗어야 한다. (바닥에 묻은 껌 비유가 거슬린다면 찐득한 밥풀을 바닥에 최대한 짓이긴다는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턴듀 드방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어쨌거나 턴듀!! 하면 쫀득하고 찐득함!! 이란 연상을 해야 한다."


필자가 턴듀를 배울 때 선생님은 엄지발가락에 동전을 하나 딱 깔고 발가락 끝으로 바닥의 동전을 움직이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에너지에 집중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좋은 비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루한 몸뚱이를 가진 일반인 입장에서 조금 더 주의 깊게, 예를 들자면 엄지발가락이 가장 길게 뻗기 위해 나머지 발가락들도 차례대로 바닥을 쫘악 훑어줘야 한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턴듀를 꾸준히 하면 어떤 변화가 올까?

정답을 말하자면 올바른 턴듀 드방 동작을 하다 보면 발등고(발등 아치)가 올라온다. 일반 취미발레인과 전문 발레리나(리노)와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겠다. 취미발레인 중 발레를 좀 오래 했다는 사람도 턴듀를 할 때 최선을 다해 발을 뻗어도 다리부터 발끝까지 쭉 뻗은 일자 라인인데 비해 전문 무용수는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살짝 곡선이 형성된 일자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발등에서 유연한 아치가 한번 더 형성되고 발가락 끝이 강하게 바닥을 내리꽂는 형상을 만든다. 이게 바로 발목 턴아웃도 신경을 쓰고 발등으로 최대한으로 밀고 발가락 끝까지 엄청나게 힘을 뻗어서 밀어서 트레이닝을 한 결과이다.


모델 : 한나래 발레리나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턴듀 드방은 그렇다고 치면 턴듀 알라스콩_Tendu a la seconde(옆으로 뻗는 동작)에서 가장 범하기 쉬운 오류는 자신의 골반뼈가 열려있는 방향에서 다리를 옆으로 뻗어야 하는데 무리해서 180도로 뻗는 경우이다. 대부분의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서 골반이 안쪽을 향한 경우가 많다. 신체 구조를 바탕으로 표현하면 고관절(hip joint)과 넓적다리뼈가 연결되는 방향이 살짝 신체 정면 쪽을 향해 결연되어 있다는 뜻이다. (발레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흔히 ‘말린 골반’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의 골반의 모양 자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골반 자체가 안쪽으로 말린다는 것은 이론상으로 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어쨌든 각자의 골반 상태와 고관절과 다리가 연결된 모양과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다리를 옆으로 뻗을 때 무조건 좌우 180도 방향으로 뻗으면 중심을 잡고 있는 기둥 다리(standing leg) 쪽의 고관절이 틀어지면서 중심축이 흔들리기 쉽다. 180도 알라스콩을 꼭 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제대로 된 턴아웃으로 하면서 다리를 뻗기를 권장한다.



턴듀 데리에_Tendu derrière(뒤)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1번에서 턴듀 데리에를 할 때는 1번 기본자세에서 정확히 뒤로 곧게 뻗고, 5번에서 턴듀 데리에를 할 때는 1번보다 조금 안쪽에서 시작하니 위치를 주의해서 뻗도록 한다. 발레 입문자들이 턴듀 데리에를 할 때는 발목이 안짱이 되지 않도록 거울로 체크하거나 선생님께 위치를 봐달라고 하는 쪽이 정확한 자세를 잡아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턴듀 데리에 / 모델 : 이상은 (드레스덴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미래소년 코난의 발가락 힘, 신기_神伎에 가까운 동작에 재밌어하며 ‘역시 대단한 친구야~’라고 감탄만 할 것이 아니라 ‘내 발가락도 저 정도로 에너지를 뻗어낼 수 있는 뭔가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한마디로 턴듀를 단 한 번 하더라도 필사적인 마음으로 시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발등고 만드는 기계를 구입해서 마루 구석 어딘가에 얌전히 세워두지 말고, 제대로 된 턴듀 동작으로 꾸준히 훈련을 하면 발레리나와 같은 발등 아치가 서서히 드러나는 인체의 신비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쭉 뻗은 발 끝 포인(point) 동작으로 발목의 라인이 더욱 가늘고 길게 보이고, 복숭아뼈 옆을 슬쩍 지나가는 아킬레스건이 강해지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턴듀, 그저 발레 용어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 한 동작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몸이 말하는 세밀한 언어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발레는 그렇게 몸과 친밀하게 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턴듀 드방의 올바른 예. 올바른 방향과 아치 형태 / 모델 : 이상은 (드레스덴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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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on6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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