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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리에 (Plié)

深海魚… 심해어,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듯이…


발레를 배운다고 하면 대부분 유연성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몸이 유연하지 못해서 발레 배우기를 꺼려하고, 발레를 떠올리면 그저 몸을 쭉쭉 늘리는 스트레칭을 위주로 하는 운동으로 생각한다. 또한 기구나 도구 없이 근력 강화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발레를 배우고 실력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면 기구나 도구 없이 내 몸 하나만 가지고도 일반인들이 하기에는 충분한 근력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 클래스 순서 중 가장 처음에 하는 플리에… 단순히 동작만 보면 기본 스탠딩 자세(1번, 2번, 4번, 5번)에서 고관절과 무릎을 바깥으로 연 턴아웃(turn out) 자세에서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동작에 가깝다.

발레를 배우다 보면 다른 동작도 어렵지만 언뜻 보면 간단히 보이는 플리에가 참으로 어려운 동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 그럴까?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라면 철퍼덕 주저앉지 않고, 무릎을 바깥으로 열고 그 힘을 유지하면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 될 것이다. 하지만 플리에는 그냥 무릎 굽히기 운동이 아닌 대단한 근력 운동에 속한다.


1번 드미플리에 동작 /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플리에 동작을 할 때 선생님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신다.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하세요.”



우리는 평상시 1 기압의 힘을 받고 생활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대기압이라고 불리는 1 기압의 힘을 못 느낀다. 생활하면서 “공기가 너무 무거워서 서있기가 힘들어!!”라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플리에 동작을 할 때는 마치 온몸에 1 기압의 몇 배에 해당하는 압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간단한 힘의 역학에 기초한 원리로 설명해 보자. 외부에 힘이 가해질 때 물체가 움직임 없이 땅에 제대로 지지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외부와 같은 힘을 내부에서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 우리가 땅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외부의 1 기압의 힘을 받음과 동시에 신체 내부에서 같은 압력을 바깥으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힘의 평형 원리이다.



그렇지만 플리에 동작을 할 때는 지구의 공기 중이 아닌 깊은 바닷속에 있다고 생각하자. 이 동작을 할 때만큼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숨 쉬고 헤엄칠 수 있는 심해어가 되었다는 상상을 해보길 바란다. 묵직한 압력이 나의 온몸을 누르지만, 그것이 무겁다고 느끼지 말고 내 몸 안에 있는 힘을 모아서 그 압력을 지탱한다는 생각을 해보자. 그리고 폴 드 브라(팔 동작)를 할 때는 마치 심해어가 바닷속에서 지느러미를 움직이는 것처럼 느리고 우아하게 움직여보자. 발레를 배우다 보면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코어에 힘을 준다고 하면서 온 몸에 힘을 꽉 주고 동작을 하는 경우가 있다. 온몸이 경직되도록 힘을 주고 동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중심에 단단하게 힘을 주고 손끝 발끝까지 에너지를 내보내며 몸속의 근육을 가늘고 길고 단단하게 다듬어 간다는 기분으로 동작을 해보도록 하자. 힘을 주지만 힘을 빼고 있는 상태… 그것이 가능한 장소는 물속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는 공기 중에서 폐호흡을 하는 인간이지만 플리에를 할 때는 아가미와 부레와 우아한 지느러미를 지닌 멋진 심해어가 되었다고 상상하길 바란다.



플리에 동작에서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플리에를 할 때 천천히 내려가는 동작에서 날숨을 쉬어야 한다. 그것도 그냥 코나 입으로 단순히 호흡하는 것도 아니고, 복식 호흡도 아니고, 별로 들어본 적도 없는 횡격막 호흡을 해야 한다. 쇄골은 나란히, 어깨를 내리고, 갈비뼈를 닫는 기분으로 서고, 척추는 바로 펴고, 괄약근에 힘을 주고 조이고, 엉덩이에 힘을 주되 골반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면서 바른 위치에 놓고, 허리에 단단히 힘을 주지만 허리 곡선을 억지로 S자로 만드는 것이 것이 아닌 배꼽을 등에다 딱 붙인다는 기분으로 납작하게 만든다. 호흡도 코로 천천히 들이마시고 입으로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천천히 이 사이로 츠~~~ 하고 내쉰다. 이때 호흡을 제대로 하면 갈비뼈가 촤악~ 닫히는 기분이 든다. 1번 플리에를 하기 직전 기본 스탠딩 자세에서만도 지켜야 할 것이 약 스무 개 가까이 된다. 이게 완벽하게 세팅이 되면 기본자세만 잡아도 신체의 잘못된 자세의 많은 부분이 교정이 될 수 있다.



그. 러. 나… 밧뜨…!!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성인이 돼서 발레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뭔지 모르게 잘 안 되는 힘든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플리에는 이 기본 동작에서 심지어 벽을 타고 내려가듯이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이래서 동작 하나 제대로 익히려고 해도 머리에서 쥐가 날듯 복잡했지만, 오히려 바닷속 이미지를 그려나가니 플리에가 좀 더 편안하고 우아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즐겁게 춤추기 위한 준비로 플리에를 하는 것이지 우린 오리걸음 벌을 받기 위해서 플리에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마도 플리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우아함이 좀 더 일찍 내 몸에 밸 수 있었을 것이다. 


1번 그랑플리에 동작 / 모델 : Claire Teisseyre(체코국립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동양의 전통 사상으로 일반인이 무릎을 양옆으로 쫘악 열고 다리 형태를 마름모꼴로 벌리고 앉는 자세는 사실 익숙하지도 않고 참으로 민망한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지하철에서 다리를 쩍 벌리고 앉는 비매너 남성을 쩍벌남이라는 명칭까지 쓸까? 플리에는 단순히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있는 발레의 많은 응용 동작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 동작이자, 턴아웃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아주 우아한 동작이다. 앞으로는 플리에를 할 때 느리지만 음악을 꽉꽉 채워서 좀 더 과감하게 턴아웃을 하고 힘을 줄 때도 다리 안쪽 근육에 좀 더 신경을 써서 동작을 해보길 바란다. 

플리에만 잘해도 평상시 서있는 자세(posture)의 모양새가 달라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멋진 허벅지 안쪽 근육을 갖고 싶은가?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신체 내부에서는 격렬한 운동 에너지가 작용하는 정련된 플리에 동작으로 내 몸속에 숨겨진 길고 단단한 근육을 서서히 깨워보도록 하자.


지구의 공기 중에 있지만 마치 푸른 바닷속을 놓여 있다는 상상을 하며…


바닷속을 유영할 준비가 되었는가? / 5번 포지션 기본 자세 / 모델 : 이상은 (드레스덴 발레단) / 사진 : 김윤식 (copyright.2017 김윤식)


글 : 취미발레 윤여사 @대한민국

사진 : 김윤식 작가 @체코

(첨부된 사진의 저작권 및 사용권은 김윤식에게 있으므로 무단복제나 사용을 금지합니다)




취미발레 윤여사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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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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