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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 shift 스탠바이

편집인 모드



enter와 Shift의 사이 어디쯤에서



"편집인 모드"

말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고, 글 쓰는 것이 편한 사람이 있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글은 맥락 없이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어느 자리에서든 말하기를 힘들어하는데 의외의 필력으로 ‘이 사람에게 이런 면이?’라는 반전 매력을 드러내기도 한다. 책을 쓰는 작가라면 당연히 글을 잘 쓰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내 머릿속 생각과는 달리 남들이 읽기 편한 글로 매끄럽게 써 내려간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책을 내기가 쉬워진 세상이 됐다. 작가의 문턱이 높을 것 같지만, 마음만 먹으면 자비 출판, 독립 출판의 형식으로 자신의 글을 책이라는 매체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정식 작가로 데뷔하기는 쉽지 않다.


책을 쓰는 입장에서 책을 짓는 입장이 되면서부터는 타인의 글을 좀 더 꼼꼼히 읽게 됐다. 예전에는 내 글쓰기를 발전시키기 위한 데이터 분석 쪽이었다면, 지금은 좋은 책을 내기 위해 아니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나와 일하는 저자가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다른 책을 보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다. 좋은 글이든 그렇지 않은 글이든, 좋은 책이든 조금 아쉬운 책이든 모든 것을 자료 분석이라는 마음으로 대한다. 닥치는 대로 잡식성 독서를 하게 됐다. 물론 읽다가 정말 재미가 없으면 이경규 형님의 눈깔 돌리기 신공인 속독으로 책을 끝낸다. (결국 어떻게든 끝까지는 읽는다는 뜻이다)


새로운 저자들과 일을 하고 있다. 더 발레 클래스 1기에 비해서 좀 더 원숙한 연령대다. 그래서 또 다른 풍미가 느껴진다. 단, 우리의 문제는 모두 바쁜 사람이고, 심지어는 모두 중년에 접어들어서 체력 안배가 가장 큰 관건이 되었다. 특별히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지만 모두 책임져야 할 가족과 사회적으로 수행해야 할 본업이 있는 사람들이라서 조금 정신없이 달렸다 싶으면 ‘아이고…’ 소리가 나오며 며칠간 숨 고르기를 한다. 모든 저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편집일을 해야할 내가 제일 골골대고 있다.


원고를 받을 때마다 설렌다. 저자와 대화를 나눌 때와는 다르게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은밀한 사고방식을 ‘합법적으로 들여다보는’ 기분이 든다. 분명히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쓸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살짝 빗겨나는 그 짜릿함이 있다. 편집인은 모든 상황에 훈수를 두지 않는다. 다만 그 저자가 ‘가장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도록 슬쩍 힌트만 던진다. 최대한 저자의 색을 잘 드러내도록 가만히 지켜본다. 저자의 생각과 출판사의 기획의 합이 잘 들어맞도록 조율하는 역할. 적절한 때 엔터키를 누르고 언제든 시프트를 눌러 또 다른 기능을 하도록 스탠바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편집인이 해야 할 일이다. 


뜨거운 여름, 나를 설레게 할 완전 원고가 나를 통과해 올해가 가기 전에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게 될지…

독자들에게 어떻게 세련된 인사를 건네게 될지 나조차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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