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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은 Mar 04. 2024

엄마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까?

미안하지만 이제 안 미안해할게.

매번 아이에게 미안해할 수는 없다. 


나는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을 최대한 미루는 습관이 있다. 미루고 미루다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직전에 초인적인 능력을 끌어와 실행하는 편이다. 학창 시절에는 주로 중간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벼락치기로 하는 편이었고, 직장에서 일할 때에는 마감일 전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갈아 넣었다. 임신을 하고 막달까지 회사에 출퇴근을 하면서 나는 육아 관련 책들을 꽤나 많이 구입해 두었지만, 이 역시도 애가 나오기 전에는 펼쳐보질 않았다.


나는 진짜 잘하고 싶은 일일수록 시작을 못한다. 결국 아기를 어떻게 맞이하고 시기별로 무얼 준비해야 할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조리원 가방을 싸야 했다. 그리고 가방 속에 두꺼운 육아서를 두 권 챙겨 넣었다.


나는 제왕절개를 했기 때문에 병원에서 약 일주일 동안 있다가 조리원으로 옮겨 갔다. 병원 입원실 침대가 송곳 같았기 때문에 어서 빨리 조리원의 푹신한 침대에 누워 육아서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니 역시나, 책 대신 핸드폰을 쥐고 누운 나였다. 벌써 아기는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나는 이 소중한 아이를 맞이하는 최소한의 방법조차도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있었다. 두꺼운 육아서는 손이 갈 엄두가 안 났다. 마음이 조급해져 인터넷으로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  남편과 공유하고 필요한 물건을 밤마다 시켰다. 한 3일 정도 정돈되지 않은 넘쳐나는 육아 정보에 빠져 살다 보니 젖꼭지 하나 고르는 것조차 스트레스였다. 왜 이리 단계가 많은지, 종류는 또 왜 이리 다양한지…. 부지런한 사람들이 정리해 놓은 브랜드별 장단점마저 읽기가 너무도 벅찼다. 이 와중에 핫딜 알람은 계속해서 깜빡이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조리원 입성 단 3일 만의 일이었다.


사실 조리원에서 나는 충분히 쉰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모유 수유, 그리고 모유 수유를 위한 가슴 마사지, 또 모유 수유를 위한 다섯 번의 식사(간식 포함)가 하루를 꽉 채웠다. 조리원의 하루 일과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밥 - 젖 - 밥 - 젖 - 간식 - 젖 - 밥 - 젖 - 간식 - 젖, 젖, 젖…(사이사이 마사지와 산모 요가 수유 교육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밥과 젖으로 하루가 간다.


아이를 낳기 직전까지도 나는 모유 수유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일단 모유가 나오는 걸 봐서 결정하자 생각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충분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닥치면 하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조리원에 오니 방으로 시시때때로 수유콜(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할 것인지 묻는 전화)이 왔고, 수유교실에 가거나 가슴 마사지를 받을 때면 모유의 중요성을 부드러운 말투로 반복해서 들려준다. 그래, 이렇게 좋다는데 모유가 잘 나와만 준다면 아기에게 모유를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아기는 내 젖만 물리면 ’퉤’하고 거부를 했다. ’엥? 이 기분 뭐지?‘ 그래도 좋은 걸 해주고 싶은 엄마 마음에 결국 유축을 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 먹이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잘 먹어주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조리원에서 퇴소를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이 작은 아기를 안고만 있어도 어쩔 줄 몰랐지만 어찌어찌해보면 되겠지 생각했다. 물론 오만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유축기를 빌리러 보건소에 갔다.  그 사이 배가 고픈지 아기가 울기 시작했다. 다행히 미리 유축해 놓은 모유가 있어 먹이려는데, 세상에나, 중탕하는 방법을 모르겠는 것이 아닌가? 우리 엄마가 자주 하던 워딩을 빌리면 ‘대학까지 나온 애가 그것도 모르다니…’ 딱 그말이 떠올랐다. 바로 핸드폰으로 중탕하는 법을 찾아보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더 진해졌다. 허공에 울리는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허둥지둥하며 중탕하는 법을 찾아 읽고 있으니 식은땀이 다 났다. 중탕은 별개 아니었다. 따뜻한 물에 젖병을 넣어 두면 되는 것이었는데 이걸 몰라 찾아보다니 내가 다 울고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유 중탕은 최대 45도 정도에서 해야 모유의 좋은 성분이 유지된단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초반에는 70도 이상의 뜨거운 물로 빠르게 중탕을 했었다. (아가야 미안하다….)


아무튼, 집으로 돌아온 후 조리원이 천국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소한 밤에 꿀잠은 잤으니 말이다.)


조리원에서 모유를 언제까지 줄 예정이냐는 질문을 유독 많이 받았는데, 나는 호기롭게 6개월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래서 지금 잘 하고 있냐고? 노우! 두 달 만에 모유 유축은 이제 안 하겠노라고 남편에게 비장하게 선언했다. 모유가 좋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주고 싶기는 하지만, 많이 안 나오기도 하고, 유축을 하고 있으면 아기가 울어 시간을 내기가 어렵고, 무엇보다 먹는 것도 제한이 있다 보니 6개월까지 버틸 기운이 나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는 이유는 이상하게 죄책감이 들어서라고 말했다.


나의 이상한 죄책감이 담긴 단유 선언을 들은 남편이 말했다.

‘그럼 오늘 저녁 닭발 시킬까?’

매콤한 닭발이 도착했다. 진짜 오랜만에 신명이 났다. 매콤한 닭발 양념을 쪽쪽 빨아먹는 나에게 남편은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했다.

‘엥? 나 이미 안 미안한데?  이 집 닭발 진짜 맛있다! 흐흐흐’

곤히 잠든 아가가 깨지 않도록 소리 내지 않고 둘 다 웃었다.


육아는 시기별로 챙겨야 할 게 너무나 많다. 그리고 나는 분명 인터넷과 육아서가 알려주는 그 수많은 정보를 다 실행할 수 없을 것이란 것도 안다. 그럴 때마다 매번 아이에게 미안해할 수는 없다. 그냥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미안해하는 대신 사랑해 줘야지.


아가야, 미안하지만 이제 안 미안해할게.

잘 먹고 잘 커주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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