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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r 21. 2021

어머니와 순대국

순대국을 사들고 어머니가 계신 요양병원에 들렀다. 늘 당뇨식이 나오는 병원밥에 물릴 무렵이면 한 번씩 어머니가 찾는 메뉴다. 간호사에게 대신 전달해줄 것을 부탁하고, 코로나로 인해 길게 머물 수 없으니 어머니와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전화로 짤막한 대화를 나눈다.     


“잘 사왔다. 고맙다.”

“천천히 드세요.”     


어머니가 순대국을 좋아하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순진한 시골 처녀가 가난한 집에 시집와 애타게 아이를 기다리기 십 수 년, 하지만 아이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마을 아낙들은 애 못 낳는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옆집 숟가락까지 다 세는 작은 마을에서 입소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한 친척들 중에는 밖에서 하나 낳아오라는 은근한 권유를 하는 이마저 있었다. 신랑이 그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알게 된 새댁은 눈물을 흘렸다. 그저 기도만이 하소연의 창구였다.     


신랑은 늦깎이 대학생이 되어 서울 가고 혼자 남아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리며 남편 학비를 대던 새댁은 그래도 두세 주에 한 번 신랑이 내려올 때면 행복했다.     


마침내 태기가 느껴진 날, 새댁은 하염없이 울었다. 이제 더 이상 애 못 낳는 여자라는 소리는 듣지 않겠구나. 속으로는 애가 탔어도 한 번도 아이를 재촉하지 않았던 남편이 고마웠다.      


배가 점점 불러오자 먹고 싶은 것도 생겼다. 그 중에서도 꼭 먹고 싶었던 것은 언젠가 장날에 먹었던 순대국 한 그릇. 하지만 혼자 나룻배를 타고 강 건너 읍내까지 나가기에는 몸이 너무 무거웠고 혹시 물에 빠지면 어쩌나 하고 겁도 났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다가 밤이 되어 무거운 몸을 단칸방에 뉘이면 순대국 생각이 났다. 남편이 곁에 있었으면. . . 하지만 공부하는 남편에게 방해가 될까봐 꾹꾹 참는 새댁이었다.     


순대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머니가 순대국을 특히 좋아하는 이유를 몰랐다. 언젠가 순대국에 얽힌 사연을 흘리듯 얘기해주시기 전까지는.      


이제 선친은 먼저 먼 길을 가셨고 당신은 병원에 계시니 순대국이 생각나도 혼자 드시러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때때로 병실로 순대국 한 그릇 들고 간다. 물론 당신 남편을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사진출처: By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Language - https://krdict.korean.go.kr/eng/dicSearch/viewImageConfirm?nation=eng&searchKindValue=image&ParaWordNo=64870&ParaSenseSeq=1&multiMediaSeq=1, CC BY-SA 2.0 kr,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156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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