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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천 Mar 22. 2022

식탁

어릴 적 꿈 중 하나는 식탁을 나 혼자 차지하고 책을 보는 것이었다. 주말의 명화극장 시간에 티비에 나오는 서양 집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집집마다 식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에 본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서는 떠돌이 찰리가 고아 소녀와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에도 식탁이 있었다.      


어릴 적 식탁을 갖고 싶었던 이유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방 두 칸에 부엌과 작은 마루가 있던 그 집에서는 개인 공간이 없었다. 모든 공간을 가족들이 공유하는 시절이었다. 어렸으니 딱히 불만은 없었지만, 외국 영화를 볼 때 식탁이 유달리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내 안에 그런 갈망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때는 좌식 생활 위주의 한국과 입식 생활 위주의 미국의 생활방식의 차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당시 우리집에는 물론 식탁이 없었다. 때가 되면 방에 밥상을 펴놓고 먹던 시절이었다. 우리집 뿐만 아니라 내가 알기로 동네에서 식탁이 있는 집은 없었다. 집이 제법 크고 대청 마루가 널찍한 집도 거기에 식탁이 있는 집은 보지 못했다.  

    

식탁은 서양식 집 구조에 어울리는 가구다. 그래서 예전에도 양옥집이라 불리던 부잣집 중에는 식탁을 사용하는 집이 더러 있었지만, 식탁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아파트가 주거문화의 대세가 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우리집은 나중에 이층 양옥집을 짓기는 했지만 내가 결혼할 때까지도 식탁은 없었다. 부모님의 오랜 습관 때문이었겠지만, 식사 때가 되면 거실에 상을 펴고 다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었다.      


식탁을 갖게 된 것은 결혼 후 분가하고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다. 집이 작았기에 식탁도 작았다. 밝은 갈색의 정사각형 식탁에서 밥도 먹고 아들 아이의 생일 케익도 자르고 때로는 아내가 책을 보았다.     

 

지금은 나도 아내도 각자의 책상이 있지만 가끔 식탁에서 책을 볼 때가 있다. 특히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중에 식탁 등만 켜고 차 한 잔과 함께 책을 보면 집중이 아주 잘 된다. 서재의 책상에는 컴퓨터도 있고 주변에 다른 책들도 있어서 방해가 될 때가 있다. 컴퓨터는 무엇인가 찾아봐야 할 경우 편리하기는 하지만 또한 집중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반면 식탁에서 책을 볼 때는 필요한 것만 놓으니 산만해지는 일이 훨씬 적다.     


새벽에 눈을 떠 식탁에 앉았다. 차 향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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