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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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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01. 2020

고양이 R

11화

인간 말은 복잡하다. 우리 고양이 족속은 단순하다. 양양. 이렇게 같은 소리를 두 번 내면 다 통한다. 그런데 그걸 인간이 못 알아먹는다. 음의 높고 낮음과 부드러움과 강함, 짧고 긴 발음에 표정과 몸짓까지 동원해도 인간은 고양이 말을 모른다. 인간은 인간끼리도 말을 알아듣지 못해 악을 쓰고 부수고 때린다.  


뭔가 소리가 이상했다. 꼬리를 몸통에 착 붙이고 앞발에 힘을 꽉 줬다. 발톱이 불쑥 튀어나왔다. 발소리가 코앞에서 멈췄다.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눈알이 파르르 떨렸다.    


_여보, 여기야, 여기. 여기 어디서 노린내가 계속 난다니까

_그럼 거기 뒤져보면 되겄네. 죽은 쥐새끼가 열 마리는 나오겄다

_저 냥반이 증말. 아, 일루와 봐요. 이 냄새 말야. 고양이 똥 냄새 같지 않어?

_내참, 고양이가 어딨다구. 쥐똥이라면 몰라. 에이 귀찮어      

 

물건이 뒤엉킨 구석 아래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퍼-ㄱ, ㅍㅜ-ㄹ-ㄱ. 실내에 물건들이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포개진 물건 사이를 잽싸게 빠져나와 구석 끝으로 들어갔다. 어떤 선택은 참 나쁘다. 구석 같은 거 말이다. 고양이가 구석이라니! 구석은 숨기만 좋은 게 아니라 잡히기도 좋은 곳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모든 게 단번에 끝났다. 나는 학학 대며 발톱을 세웠다. 그러나 한줌 털 뭉치가 덤비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강했다.     

      

_깜장이잖어!

_거봐! 내가 고양이 똥 냄새라고 했잖아. 아유, 당신이 저기 저 똥 다 치워. 아, 얼렁어!      


인간은 발톱을 뻗쳐 발버둥 치는 나를 버스럭대는 물건에 강제로 욱여넣었다. 쇠붙이에 던져져 어둠에 묻혔던 때처럼 작은 물건 안은 깜깜했다. 괜찮아, 인마. 밥도 주고 이뻐 해 줄 테니 성질 좀 죽여. 나는 분해서 계속 거칠게 씩씩댔다. 작은 틈으로 내다 봤더니 큰길을 가로질러 건너고 있었다. 내 몸을 가둔 물건이 심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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