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양_#6 미래의 불행을 빌려다 오늘의 우울을 만들었어요.
7월 25일이 되었다. 다시 병원에 왔다. 처음 왔을 때랑은 다르게 내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진료실 앞 간호사 선생님의 머리 색깔, 여기 외래 의자 재질, 진료실 앞의 푯말―
▶ ‘상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예약한 시간보다 늦어질 수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유독 더운 그 여름날, 아빠가 퇴원하시고 며칠 후에 나는 다시 병원에 앉아 있었다. 지난 한 달간 내가 혼자 보낸 시간은 ‘우울’이 아니라 ‘절망’이 더 어울린다고 곱씹으며 대기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때, 진료실에서 어떤 중년 남성이 나왔다. 그리고 간호사는 그에게 다름 외래 진료 예약에 대해 물었다. 그 중년의 남성은 달력을 가리키는 간호사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다음 외래 진료는 예약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나중에 다시 예약이 필요하면 전화드려도 될지요?”
“그럼요. 그럼 다음 예약은 잡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하세요.”
그리고 그 중년의 남자는 편안한 얼굴로 마른 두 다리를 힘차게 옮기며 정신과 외래를 나섰다.
‘다음 진료 예약이 필요 없다고? 그럼 다 나은 거야? 이게 나아질 수 있는 거였어?
나도 저런 날이 올까? 저렇게 편안한 표정과 발걸음으로 여길 나갈 수 있을까―’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예약한 시간이 30분은 훌쩍 넘어섰을 때, 화면에 내 이름이 떴다.
▶ 띵동―정신건강의학과 주사라 – ‘변O윤’님 지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주사라 선생님은 오늘도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에 들어오는 나에게 인사를 하셨다. 나도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푹신한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내 뒤에도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갑자기 빨리 상담을 받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제 뒤에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서 빨리 말씀드릴게요. 제가―”
주사라 선생님은 급하게 내 이야기를 하려는 나에게 말했다.
“환자분, 어깨 위에 뭐가 많이 있으신 것 같아요. 그 어깨 위에 밖에 기다리고 계시는 다른 환자분들도 올라가 계신 건가요? 여기선 그러시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 팔이 부러지고 상처 위에 피가 철철 흐르는데, 뒤에 대기 중인 환자분들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하셔도 됩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 사이에 내 어깨 위에 오늘 처음 본 내 뒤에 대기 중인 다른 환자들도 올려두었다니―정말 대단한 책임감이다. 아님 내 어깨를 무쇠라고 생각하는 건가?
“네… 제가 평소에도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싫어해요. 그러다 보니 그 버릇이 또 나왔나 봐요.”
“그러실 수 있죠. 환자분은 워낙 혼자 모든 걸 짊어지고 애써 온 세월이 긴 것 같기도 하고요. 다 이해합니다. 지난 한 달간 어떤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그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물론 몸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제 머릿속은 거의 우주의 쓰레기장처럼 엄청나게 많은 생각들이 뒤엉켜서 정말 난리도 아니었어요.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면 바로 주신 약을 먹고 잠을 청하거나 방에 있다가 거실로 나가거나 했어요. 정말 괴로웠습니다. 울다가 지쳐서 잠든 날도 많았어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셨군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무슨 생각을 하시면 그렇게 눈물이 나던가요?”
나는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했다.
“보통 제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그 생각이 시작되는데, 그 생각이 과거를 샅샅이 훑고 현재의 깜깜한 방에 누워 있는 저에게 와요. 그러면 끝도 없는 우울과 절망이 오고, 그리고 그 생각이 미래로 가요.”
나는 왠지 손이 저린 듯한 느낌에 마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리고 진료실 시계는 또각또각 움직였는데, 그 순간에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오래 기다릴까 봐 마음이 불편했다.
“생각이 미래로 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 길고 어둡고 습하기까지 한 터널이 영원히 끝나지 않으면 어쩌지? 앞으로도 내가 다시 어떤 일도 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 난 뭘 하고 살지? 만약 예전의 일상으로, 그리고 원래 내 모습으로 계속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그렇게 나는 한참을 내 생각이 어떤 미래에 가서 방황하고 있는지를 꽤나 길게 설명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선생님은 키보드 타이핑을 멈추고 날 보고 천천히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짐들을 짊어지고 살아가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고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는데요. 제 생각에는 환자분은 유독 어깨에 많은 짐들을 올려두고 여기까지 오신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어떻게 보면 존경스럽기도 해요. 그런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까지 그 어깨 위에 짐으로 올리면 환자분의 그 어깨가 너무 무겁고 아프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하고 계시는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관한 생각들은 보통은 부정적인 것들이 더 많아요.”
나는 마스크 위로 눈물을 한방을 또르륵 흘리며 대답했다.
“맞아요. ‘만약’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자꾸만 안 좋은 생각만.. 그렇게 돼요.”
“당연해요. 그리고 그런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관성’이 있어요.”
“관성이요? 어떤?”
“그 부정적인 생각을 억지로 내 어깨에서 내려놔도 계속 다시 내 어깨에 올라오려고 하죠. 그래서 다시 그 걱정들을 내려놓고 앞으로 나아가도 또다시 올라와있어요. 게다가 환자분은 지금 힘든 시간 속에 계시니 그 관성이 더욱 강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누구나 그렇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은 내려두고 앞으로 가시는 게 가장 좋은데, 지금은 에너지가 너무 약해진 상태시니까 당분간은 조금 더 쉬시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또다시 눈물이 났다. 이상하게 ‘에너지가 적다’는 말에 눈물이 났다.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불행까지 빌려와서 현재 나의 우울을 위한 재료로 쓰고 있었다는 생각에 다시금 절망감이 찾아왔다.
“이 고리를 도대체 어디서 끊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본인을 위해 최소한의 것들은 꼭 해주세요. 건강한 식사를 하시고, 잘 씻고, 일기도 쓰시고요. 그냥 기본적인 들만이라도. 다른 건 당분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나가려는 찰나―
“아, 그리고 정해진 건 없어요. 제가 해주는 이야기도 정답이 될 수는 없어요.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당분간은 환자분을 잘 보살펴 주세요. 지금 밖에 계신 다른 환자분들 배려하시던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진료실을 나왔다.
의자에 앉아 대기하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나처럼 본인의 진료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진료날, 저는 밖에 대기 중인 사람들의 진료시간이 늦어질까 걱정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배려하지 않고 있더라고요. 게다나 나에게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빌려와서 현재 내 어깨에 가득 짐을 지어 주기까지 저는 정말 몰랐어요. 진짜로 몰랐어요. 지금까지 제가 제 자신을 그렇게 대해 왔는지요.
그리고 미안했어요. 내 자신에게요.
‘지금까지 난 나를 도대체 어떻게 대한 걸까요?’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니까 기억나는 건데요. 그날 그 진료실을 나오면서 처음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관성에 맞서려면 내가 달려야 하나―’
부정적인 생각의 관성으로 인해 자꾸 내 어깨에 그것들이 들러붙으니까, 떼어 놓고 뛰어가야 다시 내 어깨에 안 올라올 것 같았어요. 다시 내 어깨에 올라온다 해도 뛰고 있으면 시간을 좀 벌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 ‘관성’도 점점 약해지지 않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