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공양_#3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주사라-
'정신과 선생님이 '주사'네. 의사하려고 태어나셨나 봐. 주사라... 뭔가 운명적이다.'
나에게 병명이 생겼다.
37년 동안 아파서 병원을 가본 게 몇 번인지 열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로 건강했던 나였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니 어두운 터널 속에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몰라 주저앉아 있는 내가 있었다.
병원을 가기로 했다.
사직서를 쓰고 마지막 퇴근을 한 후 2주 동안 단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사실 어딜 가고, 누구를 만나야 할지 몰랐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디도 가고 싶지 않았고, 그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늘 그랬듯 그냥 모르겠다고 하는 게 더 편하니까-'
힘겹게 도착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복도에는 모든 의자가 꽉 찰 만큼 환자들이 가득했다. 연령도 생김새도 모두 다양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나도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 얼굴보다 큰 마스크를 쓰고 그들 사이 가장 구석 의자에 앉아 내 순서를 기다렸다. 예약된 시간에서 20분이 지났다.
30분이 지났다. 그리고 4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상담이 길어지면서 예약된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다. 나에게는 기회였다.
'그래, 시간도 늦어지고 그냥 집에 갈까?
아무리 의사라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터널 속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하지? 죽고싶어서 한참동안이나 베란다에 서서 밖을 바라봤다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지? 내가 얼마나 볼품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늘어져 있었는지를... 그리고 정신과 진료라니, 좀 부담스럽긴 하지. 그래, 지금이라도 도망가자.'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화면에 띵동- 소리와 함께 가운데 한 글자가 빠진 내 이름이 떴다.
l 정신건강의학과 주사라 – ‘변O윤’님 지금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아, 진짜 이건 아닌데...'
주사라 선생님은 내게 인사를 했고, 앉으라고 의자를 가리켰다.
그리고 마스크를 벗을까쓰고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였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네요. 환자분은 어떻게 저에게 오셨어요?"
'’왜’왔냐가 아니고 ‘어떻게’ 왔냐고?'
어떻게 오셨냐는 물음에 마스크 생각은 까맣게 잊었다. 그리고 마스크를 쓴 채로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오게 되었더라. 지난 2년간 지독하고 악랄한 직장 내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으로 파괴된 내 영혼과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너진 자존감으로 점철된 내 인생이 이젠 정말 망한 것 같아 2주 만에 처음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는 그 이야기를 소상히 해야 되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힘들게 입을 떼었다.
"아. 제가요. 제 영혼이 파괴된 것 같아요. 산산히 부서져서 다시 붙여지지 않을 것 같아요.
구겨진 종이를 다시 편다고 해서 그 종이에 접힌 자국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저에게 남은 자국도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지난 2년 여간 내가 회사에서 당한 괴롭힘과 있었던 일들을 조용한 진료실 안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한참 이야기 하다보니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내가 눈물을 닦은 휴지가 내앞에 한 움큼 쌓일 때 쯤 선생님은 본인 안경을 만지작 하고 다물고 있던 입술을 떼었다.
"저는 이 자리에 앉아 매일 환자분과 같은 분들을 아주 많이 뵙니다. 그 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다양한 일들로 인해서 환자분처럼 제게 오세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그런 분들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종이가 아니잖아요.
사람은 종이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이 구겨졌다 해도 다시 예쁘게 펼 수 있고요.
접혔던 자국도 남지 않을 수 있어요."
“저는 17층에 사는데요. 집안에만 있으면서 갑자기 창밖을 멍하니 보게 되었는데, 무섭더라구요.
너무 무서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무서워 지지 않는 순간이 오면 저는 여기에서 뛰어 내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두시간을 울었어요.
선생님, 저는 너무 피곤해요.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이제 다 그만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리고 주사라 선생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셨군요. 너무 힘드셔서 지금은 많이 지쳐계시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 도 있어요.
환자분은 삶을 끝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지금의 이 고통을 끝내고 싶은 거예요. 잘 생각해보세요.
둘 중 어떤 걸 끝내고 싶으신 건지요. 정말로 이 삶을 끝내고 싶으신가요? 고통이 끝나면 삶도 다시 예전처럼 밝아질 날이 올 텐데요. 다음 상담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돼요. 더 웅크리고 계셔도 되고요.
몸에 상처가 나고 뼈가 부러지면 그 상처들이 다시 회복될 때까지 약도 바르고 깁스도 해서 시간을 주거든요. 우리 같이 마음에 약도 바르고 깁스도 해요. 저는 의사니까 처방전을 쓸 수 있잖아요? 그게 제 처방이에요.
약과 깁스요. 그리고 복용하실 약도 드릴게요. 약도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억지로 견디거나 참지 말아보세요. 환자분 그냥 계셔도 그 자체로 괜찮아요."
내가 지금까지 30년하고 7년을 살면서 아무것도 안 해본 적이 없는데, 엄마 뱃속에서도 난 무언가를 계속 했을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 너무 당황스러워 눈물이 났다.’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에 눈물이 났다.
‘나는 아무것도 못 하는 거 못하는데 어쩌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었다.
"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아요? 제가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해요? 저 못할 것 같아요.
저 빨리 이 어두운 터널에서 나가고 싶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어떻게 나가요?"
그리고 선생님은 까만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날 향해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환자분은 아무것도 안 해야 나오실 수 있어요. 그 터널에서요."
내가 흘린 눈물이 내 하얀 마스크를 또 흠뻑 적셨을 때, 진료실을 나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나온 진료 대기실엔 여전히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 사람들은 다들 어떤 터널에 들어가 있는 걸까?
선생님은 이 사람들에게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을까?'
그리고 4주 후에 다시 병원에 와야 한다기에 '7월 25일' 예약 날짜가 적힌 노란 종이를들고 병원을 나섰다.
‘나에게 병명이 생겼다. 공황장애 및 중증도 우울증.’
"정신과 가본 적 있어요? 백화점보다 야구장보다 사람이 더 가깝게 모여있어요.
내 터널이 가장 길고 어둡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그 정신과 외래 의자에 앉아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그들만의 터널을 가지고 있고 한 번쯤은 그곳에 갇힐 수 있구나..' 하고요.
주사라 선생님은 주사는 안 주셨어요. 그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쩌죠?
태어나 숨을 쉰 순간부터 무언가를 계속 하면서 여기까지 온 나는 너무나 두려웠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내자신이 불안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할 생각에 병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내내 눈물이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