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령과 한 달 살이 8
브링 미 홈, 실 부 쁠레
A4 용지에 다섯 개 목록을 사인펜으로 또박또박 적어 냉장고 자석으로 고정했다. 윤조는 냉장고문에 시선을 박은채 한번 더 목록을 읊었다. 그러고는 뭔가 생각난 듯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문을 열자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밀려왔다. 스위치를 올렸다. 마감이 되지 않은 썰렁한 지하실이 드러났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나란히 놓여있고 보일러통이 한편에 서있다. 한쪽 구석에 잡동사니를 넣어 둔 박스가 대여섯 개 쌓인 옆으로 밸류 빌리지에서 산 촛대를 올려둔 작은 커피 테이블이 있다. 퀴퀴한 냄새 때문에 비 오는 날이면 꼭 양초를 켜두곤 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옆집 8호 엄마는 매트리스를 깔고 아이들을 재울 수 있는 걸까. 문득 윤조는 무려 열다섯 명의 시리아인 가족(사촌과 조카들 포함해서)이 살고 있는 옆집을 떠올렸다. 월세에 수도세와 난방비가 포함되어 있는데 열다섯 명이 사는 옆집과 같은 금액을 내고 있다 생각하니 손해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유령까지...... 그러다 윤조는 자신이 왜 지하실에 내려왔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뭘 가지러 온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요즘은 이런 일이 흔하다. 정 생각이 안 날 때면 되감기 하듯 뒷걸음치다 보면 생각나곤 했다. 윤조는 그녀 자신이 유령이라면 지금 어디에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하실이 제일 그럴듯한 장소로 보였다. 다섯 가지 팁 목록 중 알리기를 실천하기 위해 내려왔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화장실 사용 중이거나 옷 갈아입을 땐 사생활 보호를 해달라든가 지하실이 싫으면 올라와도 좋지만 수연과 유진이 놀랄만한 일은 벌이지 말라는 것 등말이다. 만약 정말로 유령이 이 집에 산다면 말이다.
윤조는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또 목소리를 들었다.
"다커"
토요일, 햇살이 눈부신 유월의 나른한 오후였다. 수연과 유진이 심심하다며 밸류 빌리지라도 가보자고 했지만 윤조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의 피로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소파 팔걸이에 비스듬히 걸친 그녀의 머리가 까닥 대고 있었다. 수연과 유진은 냉장고에 붙은 유령을 대처하는 법이 적힌 종이를 보며 키득댔다.
"우리 엄마 실천력은 알아줘야 해. 유진아, 이것 봐! 집세 내는 사람이 당당해야 한대. 완전 웃기지?"
"감사하라는 건 또 어떻고? 이런 기사를 쓴 사람도 웃기다."
비아냥대며 수연과 유진이 윤조를 조롱한다. 냉장고에 붙은 종이가 흐물거리고 수연의 비웃음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입을 쩍 벌려 냉장고의 종이를 물어뜯는다. 이어 유진이 킥킥대며 수연의 입에서 종이 반쪽을 쭉 찢어 질겅질겅 씹는다. 그들의 얼굴이 빈정거림으로 일그러져있다. 냉장고옆에 서있던 유령이 잔뜩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지 마, 얘들아. 유령아저씨가 무안해하시잖니.' 윤조가 애원한다. '무안? 유령도 무안함을 느끼나?' 종이를 씹어대며 수연과 유진이 유령에게 다그친다. '말해보시지. 얼마나 무안한가. 허락도 없이 이 집에 살고 있는 건 무안한 일이 아니고? 어?' 낡은 옷을 입은 데다 후추색깔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자라 더 초라해 보이는 유령이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윤조를 바라본다. '아, 죄송해요. 원래는 예의 바른 애들이거든요. 얘들아, 그만해!' 윤조는 말리려 일어난다. 그럴수록 몸은 더욱더 소파밑으로 가라앉는다. 팔을 저어 보지만 소파가 윤조몸을 죄어온다. '그렇게 무안하시다면 이걸로 그 얼굴을 가려드릴까? 으흐흐.' 구명 몇 개가 뚫린 검은 보자기를 수연이 유령에게 씌우려 한다. 유령은 울상이 되어있다. '말해보시라니깐! 말햇!' 수연과 유진이 소리친다. 유령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윤조에게 애원한다.
"브링... 브링 미 홈, 실 부 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