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에그 샐러드 7
아마 누군가 가져갔겠죠?
퇴근 후 바로 집에 오니 세 시 반이었다. 오늘은 식료품점을 들르지 않았다. 신발을 벗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지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후 세 시의 태양열은 커튼을 닫아도 기필코 들어와 이글댔다. 일과 사람에 지쳐 흐물거리는 몸뚱이를 마저 녹여내려는 심산인가 보다. 트리가 소파로 가볍게 뛰어오르더니 윤조 배 위로 올라와 꾹꾹이를 했다.
"아이. 시원해. 트리가 마사지해 주는구나."
핸드폰이 울렸다. 마샤라고 화면에 뜬 걸 보자 상체를 일으켰다. 캐나다에서 의사직을 계속하려면 시험을 봐야 하는데 아직 영어가 부족한 마샤는 대신 울트라 사운드 테크니션 학과를 지망했다. 모집인원이 수용인원보다 많아 인터뷰를 봐야 했다던 마샤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오늘이 합격자 발표날이다.
"헬로, 마샤? 잘 지냈어?"
"응, 조. 넌 어때? 일 끝났어? 통화 괜찮지?"
"괜찮아. 좀 전에 들어와 쉬고 있었어.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었는데. 인터뷰 결과 말이야"
"조. 안 됐어. 또 떨어졌어."
실망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마샤가 이어 나갔다.
"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윤조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의사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 년제 컬리지 학과 입학을 하겠다는 건데. 그것도 전직 의사가.
"인터뷰한 교수한테 메일 보낼 거야. 내가 떨어진 이유가 뭐냐고 물어볼 거야."
"이유를 알려주기나 할까?"
"알려줘야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고치지 않겠어? 자기네도 기준이 있을 거 아냐. 만약 대답을 못 하면 그것도 이상한 거 아니겠어?"
마샤는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민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게 아닐까 분개하는 것이라는 걸 윤조는 알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며 전화를 끊은 윤조는 어쩌면 인터뷰 담당자를 잘 못 만난 마샤의 나쁜 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민자가 잘할 수 있겠느냐는 저평가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인터뷰했다면. 꼭 그런 사람이 있다. 앰버 같은. 윤조는 낮에 앰버와 눈 마주친 때를 떠올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소름이 끼쳤다. 무시하는 듯한 그 눈초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날 앰버는 제프가 10시쯤 출근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둘이서 뭘 하든 윤조는 맡은 일만 했었는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윤조가 참견해야 할 일이었다. 제프가 어색하게 윤조에게 다가왔다.
"조, 어제 베이컨 얼마나 구운 거예요? 아, 오해 하지는 말고요."
윤조는 퇴근하기 전에 오후 팀을 위해 베이컨을 하나씩 펴서 오븐에 굽는 프렙을 해놓는데 어제저녁 베이컨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고 한다.
"조. 그래서 베이컨을 넉넉하게 구워야 할 것 같아요. 어제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게요."
제프가 윤조 바로 앞에서 학생을 훈계하는 선생님 같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제프. 전 넉넉히 구워놨어요. 스탠통을 꽉 채웠는걸요. 아마 누군가 가져갔겠죠?"
윤조의 계획에 없던 말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