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에그 샐러드 6
"저희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오전에 손님이 몰리는 바람에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중단했었다. 이제 좀 한가해져서 윤조는 다시 식빵과 레티스를 꺼내고 에그 샐러드를 담아놓은 통을 꺼냈다. 냉장고에서 통을 꺼내 들었을 때 이상하게 가볍다 했더니 역시나 샐러드가 반이나 줄어있었다. 또 시작인가. 사실 그 후에도 재료가 사라지는 일은 이따금 발생했다. 삶은 감자, 잘라 놓은 과일, 깍둑 썰어 놓은 햄 등이 뭉텅이로 없어지곤 했지만, 에릭이나 제프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며 방관했었다. 하지만 윤조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정도로 재료가 없어진다면 또 다른 문제다. '아, 제발 다른 걸 가져가라고! 이 좀도둑들아.'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하필 에그 샐러드를 가져가다니. 무엇보다 불과 두 시간 전에 만들었던 거였다. 그때 있었던 사람은 앰버와 스탠, 매튜와 제프는 왔다 갔다 했고, 그리고 미아.
윤조는 뒤 주방 입구에 있는 옷걸이를 보았다. 아무도 가방을 걸어 놓지 않았다. 모두 윤조처럼 클럽 하우스 들어올 때는 빈손으로 들어온다. 에릭을 제외하곤. 하지만 에릭은 아직 출근 전이다. 재빠르게 돌아가는 머리와는 반대로 윤조는 재료가 든 쟁반을 들고 느릿느릿 작업대로 나왔다. 반이나 줄은 에그 샐러드를 쏘아보며 몇 개가 나오려나 생각하고 있었다. 포스에 기대서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앰버가 윤조를 쳐다보았다. 윤조도 고개를 돌려 앰버를 봤다. 둘은 눈을 피하지 않고 서로를 응시했다. 윤조는 앰버가 의심스러워 쳐다보는데 앰버는 왜 그렇게 윤조를 빤히 쳐다보는 걸까. 뒤통수에서 스탠의 시선도 느껴졌다.
그때 클럽 하우스 문이 급하게 열렸다.
"오, 스탠. 구급상자 좀요. 미아가 다쳤어요."
제프가 벌게진 얼굴을 하고 스탠이 건네는 구급상자를 들고 다시 나갔다.
"뭐야, 많이 다친 건가."
앰버가 무심하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자전거에서 굴렀대요. 다행히 심하지는 않은가 봐요"
외부 직원 중 하나와 통화를 끝낸 스탠이 윤조와 앰버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얼마 후 미아가 절룩거리며 클럽 하우스로 들어왔다. 윤조는 샌드위치를 만들다가 비닐장갑을 벗고는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미아에게 다가갔다.
"어쩌다가? 세상에나. 피 좀 봐."
허벅지는 찰과상 정도만 입은 것 같은데 무릎은 이미 푸르뎅뎅하게 변해 있었고 종아리를 지나 발목 뒷부분까지 이어 붙인 밴드는 피로 얼룩져있었다.
"괜찮아요. 자주 다치는걸요. 하하. 제가 근육이 없어서 힘이 달려요."
윤조가 볼 때는 근육만 없는 게 아니었다. 뼈와 살가죽이 붙다시피 한 게 특히 팔다리가 앙상했다.
"엄마가 아시면 얼마나 속상하시겠어요?"
윤조가 다친 다리를 올려놓으라는 신호로 의자 하나를 빼내어 미아 다리 앞에 놓았다.
"저희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무슨 뜻이냐며 빤히 쳐다보는 윤조에게 미아는 말을 이어갔다.
"루푸스를 앓고 계시거든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요. 항상 누워계세요."
"어머, 그렇군요."
왠지 미안한 표정을 짓는 윤조와 다르게 미아의 말투는 무덤덤했다.
"그럼, 아빠는요?"
"아빠는 멀쩡하세요. 호호. 적어도 육체적으로는요. 어렸을 땐 아빠가 음식을 만들어 주시곤 하셨죠. 그래서 전 요리하는 엄마를 가진 아이들이 부러웠어요. 조 딸들도 부럽네요. 항상 음식을 만들어주는 엄마가 있으니까요."
윤조와 미아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무거운 집안사를 가볍게 말하는 미아에게서 약간의 거부감도 느꼈다. 작업대로 돌아온 윤조는 혹시 음식 재료를 미아가 가져갔을 수도 있다고 의심했다가 이내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가정환경이 좀 다르다고 의심하다니.' 하지만 빵 한 면에 버터를 바르고 에그 샐러드를 채워 넣으며 의심은 다시 시작되었다. '집에 요리하는 사람은 없지. 먹어야 할 식구는 있지. 그렇다면 재료 하나하나가 간절하지 않을까.' 윤조는 귀가하며 빵 한 봉지를 사 들고 가는 미아를 그려보았다. 에그 샐러드를 빵 한 면에 채우고 다른 빵으로 덮어서 반으로 자른 다음 접시에 놓고 다른 접시에는 이미 얇게 슬라이스가 되어 식감이 좋은 로스트비프와 스위스 치즈를 겹쳐 놓고는 허니듀로 장식해 식탁에 올려놓으며 아빠와 남동생을 부르는 미아의 모습이 자꾸만 다른 빵으로 덮어 눌러도 아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