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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행복조각

by 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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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왜 이리도 빨리 돌아오는 걸까? 쌀쌀한 날씨와 함께 다가오는 연말은 왠지 모를 불안과 조급함에 쫓긴 채 하루를 살아가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맘때쯤이면 나의 일상은 행복 조각을 찾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이런 마음을 극복할 때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듣는 것도 무척 좋은 일이지만 나는 주로 혼자 해결하는 성향이라 그런지 다른 방법을 찾는다. 그건 이미 지나간(그러니까 돌아보면 잘 해결되었던 것만 골라서) 불안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그런 일을 겪고도 나는 잘 살고 있으니까 안정을 잃어버린 현재의 마음도 결국은 해결될 것이며 더 건강한 내일을 위해 때마다 맞는 독감 예방 주사 따위 같은 것이라 생각해 보는 거다. 그와 동시에 일상에서 지나가기 쉬운 행복을 찾아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어지러웠던 마음이 잘 정돈되곤 했다. 내가 취하는 태도가 정신의학적으로 얼마나 효용성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작업이 심신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약간만 시선을 틀어보면 이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돈과 시간에 쫓기며 팍팍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 찾기나 한다는 것은(달리 보면 한가하게 보일 수도 있고) 점심 한 끼 사 먹을 돈도 없는 놈이 파인 다이닝 식당에 앉아 페어링할 고급 와인을 고르는 것처럼 허황되고 한심하게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르게 생각해 보면 시간에 매인 몸이라 하더라도 상상하는 재미까지 억눌러야 한다면 이 세상에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란 말처럼 가오라도 챙겨 보고 싶은 허세야말로 인간의 본능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서두에 뭔가 거창한 이야기를 꺼낸 것 같지만 사실을 고백하자면(다들 알다시피 원래 빈 수레가 요란한 법이다) 이번 주 나의 초조함과 불안을 무한대로 증폭시킨 건 브런치 연재 마감 탓도 크다. 한 주를 거의 사무실에서 보낸 탓에 행복 조각을 찾는 데 소홀했었다. 애쓴 만큼 업무가 잘 해결되지 않아 초조함만 가중되었던 한 주를 보내서 그런지 끄집어낼 사진도 손에 잡히는 글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행복을 책임져 주었던 두 축이 흔들리자 심연을 방패 삼아 숨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작년 말, 내년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매 순간 행복 찾기를 게을리하지 않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가볍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남들과 똑같이 일곱 번 바뀌는 밤낮이 이번 주에도 분명히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행복한 일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는 건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사랑도 노력해야 지속이 가능하듯 행복이란 것도 행복한 순간을 애써 찾아 마음에 콕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서 결국엔 그 한 조각을 찾아내고 말았다.




지난 월요일이었다.


"저기...! 잠시만요..."


"네? 저... 저요? 무슨 일 있으세요?"


한강을 한참 달리고 있는데 나를 불러 세웠던 어떤 아저씨. 무척 야윈 모습과 어딘가 애처로운 눈으로 나를 부르더니 그는 대뜸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사진 한 장만 찍어 줄 수 있냐는 말을 보탰다. 저 뒤에 월드 타워와 자신의 발이 다 나오도록 찍어 달란 요청까지 덧붙였다. 꼭 발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사진 때문에...?' 란 생각이 잠시 들긴 했지만 오죽하면 달리고 있는 사람을 붙잡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자 아저씨가 내민 핸드폰을 덥석 쥐었다. 그러고는 무릎까지 꿇어가며 열심히 아저씨를 찍었다. 보통은 하나, 둘, 셋 하고 찍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여러 장 남겨드리고 싶어 구도를 잡는 척하며 내 마음대로 찍었다. 숫자는 마지막 셔터를 누를 때 가서야 세었다. 핸드폰을 넘겨받은 아저씨는 여러 장 찍힌 사진을 보더니 무척 흡족해했다. 너무 열심히 찍었던 탓이었을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는데 아저씨는 멋쩍은 듯 웃으며 내 옷자락을 쥐었다. 강하지 않은 당김이었지만 고개를 떨궈 바라본 그의 손가락은 나를 이대로 놓아주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아저씨의 눈을 보자 그는 말했다.


"저기... 가로 사진도 좀..."


아... 가로사진. 너무 몰두한 나머지 세로 사진만 찍었던 거였다. 이건 나의 실수였다. 할 수 없었다. 알겠다고 말하자 아저씨는 핸드폰을 다시 내게 건넸다. 그런 아저씨의 모습이 싫기보단 왠지 모르게 귀여웠다. 사실 나는 러닝 할 때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니라면 웬만해선 멈추지 않는다. 운동 나온 엄마나 친한 친구를 한강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물론 눈을 마주치며 인사는 하지만) 그만큼 달리는 순간에 관성이 깨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아저씨의 부탁엔 이상하리만큼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까짓 거 이미 부탁을 들어드리기로 한 이상 별수 없었다. 가로 사진도 열심히 찍어드렸다. 세로 사진보다 정성을 더했다. 물론 이번에도 숫자는 가장 마지막에 세었다. 사진을 본 아저씨는 잘 나왔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내가 보기엔 사진 찍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과 달리 그저 그런 인증사진 정도였는데 그걸 보면서도 아저씨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내게도 행복한 마음이 절로 스며들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오늘 이 시간에 달리러 나오길 잘했다고. 그리고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있어 참 다행이라고.




이번 주 내가 건져 낸 행복 조각은 고작 이게 전부다. 물론 더 찾아보면 무언가 또 나타나겠지만 앞서 말했듯, 왠지 모를 불안과 조급함에 쫓겨 사는 요즘엔 피부로 느껴지는 일에 더 집중하기 마련이다. 다음 책의 기획도 다시 해야 하고 사진에 대한 고민도 더 깊어져야 하지만 이런 것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기에 뒷전이 되고 만다. 지금 당장은 내년엔 어디서 수익을 창출할 것인지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사실 연재의 부담은 핑계고 연말이 되면 나를 흔드는 가장 큰 파도가 이것들이다. 몸뚱이와 정신이 분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예술로 풀어내고 싶은 욕구와 본능은 언제나 피부와 맞닿은 현실과 싸우게 된다. 하지만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이런 고민을 겪으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고 싶어 애쓰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처럼 환경에 따라 자동으로 주행모드를 변경할 수도 없고 비록 수동으로 조작해야 하는 낡아빠진(그렇다고 언제나 마음처럼 작동하는 것도 아닌) 스위치이지만 이것을 갖고 있다는 건 정말 큰 위안이 된다. 초조함과 불안이 찾아오고 힘듦과 어려움이 아무리 밀려오더라도 이 스위치를 내리고 올릴 수 있는 마음과 시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고 어둠에서 나와 다시 행복의 빛을 켤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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