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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행복조각

by 윤기



'금화글방'


금요일에 만나 서로의 글에 따뜻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오전 11시 광화문 근처에서 만난다. 이 모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글쟁이 친구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함께 글을 쓰는 J 님의 제안으로 시작된 소규모 오프라인 합평회다.


J 님은 오래전부터 동화 작가로 활동하신 분인데(유명한 동화책을 여러 권 내셨다) 지난 8월, 단체 카톡방에 조심스럽게 말풍선을 하나 남기셨다. 소규모 오프라인 합평회 모임을 했으면 하는데 누군가 모집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단 이야기였다. 20분 정도 지난 메시지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꽤 재밌는 모임이 될 것 같단 거였다. 그래서 내가 한 번 나서보기로 하면서 J 님에게 따로 연락드리겠다고 답했다. 다음 날 J 님과 통화를 하며 꾸리고 싶은 합평회의 성격을 여쭤봤다. J 님은 오래전 동화를 쓰는 분들과 합평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참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당시의 합평회는 서로의 글을 비평해 주며 발전을 도모하고 공모전 입상을 위한 모임이었다고 했다. 실제로 가장 큰 공모전 입상도 그 모임에서 수차례 나온 이력이 있을 정도로 유익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저마다 사정이 있어 운영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덧붙인 J 작가님 말씀엔 서로의 글을 가르치는 것보다 조언을 주는 모임이 있으면 좋겠는데 본인이 직접 운영하기엔 벅차서 누군가 나서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메시지를 남겼다고 했다. 말씀을 듣다 보니 그동안 나도 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싶단 갈증이 있었고 꼭 평가라 하지 않더라도 어떤 형태여도 좋으니 의견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단 걸 발견했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긍정적인 말과 응원도 소중하지만 아쉬웠던 부분, 더 나아졌으면 하는 부분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님의 제안을 냉큼 받았다. 합평회를 운영해 보겠다며 인원을 모집해 보겠다고 말했다. 대신 경험이 부족하니 J 님이 많이 도와주셔야 한단 바람을 함께 전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반색하는 J 님의 목소리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뿌듯해졌다.


먼저 모집 요강에 들어갈 내용을 몇 가지 정해야 했다. 합평회 인원은 최소 3명 최대 6명으로 할 것. 월 1회 만나며 일시는 매월 셋째 주 금요일 오전 11시, 장소는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합평회를 할 수 있을 분위기가 확보된 곳) 만나는 것이었다. 그 사이에 작가님과 뜻이 맞았던 E 님이 합평회에 참석하고 싶단 의사를 밝혀왔다. 그래서 이렇게 3명이 의기투합하여 '금화글방'이 만들어졌다. 최소 인원을 확보했으니 조금 편한 마음으로 모집 요강 글을 올릴 수 있었다. 글쟁이들 모임의 소식을 전하는 카페에 합평회의 시작을 올리며 금화글방과 함께 할 3인을 추가로 찾았지만 올라가는 조회수에 비해 신청 댓글은 조용했다. 아무래도 평일 오전, 오프라인이란 조건이 만만치 않을 듯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 성향상 솔직하게 비평을 주고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원을 꽉 채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첫 모임인 9월 19일 전까지만 신청을 받고 이후에는 입장문을 닫기로 했다. 모집 글을 올린 지 일주일이 흘렀을까? 놀랍게도 두 분이나 참여하고 싶단 의사를 전해왔다. 그렇게 금화글방은 5명으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번 주 금요일엔 금화글방이 세 번째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만나기 일주일 전까지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데 나는 브런치에 썼던 '행복조각 44편'의 글감을 확장해 A4 5장 정도의 원고를 제출했다. 이 글은 출판사에 투고할 목적으로 쓴 에세이라(물론 투고하기 전 많이 다듬어야 하지만) 구성을 조금 다르게 했다. 사실 다산성곽길을 찾았던 날 하루를 가지고 블로그에 짧은 일기 한 편, 브런치에 '행복조각'용 한 편, 매거진에 사진 컬렉션 한 편, 그리고 투고용 에세이 한 편으로 형태를 다양하게 한 건 처음 도전하는 일이었다. 금화글방 멤버들도 모두 브런치와 블로그에서 활동하고 있는 만큼 같은 사건을 가지고 몇 가지의 형태로 표현 한 걸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합평회에 제출한 건 투고용 에세이라 주된 비평은 투고용 원고가 중심이 되었지만 매거진에 올린 사진이 원고에 있던 일들을 이미지화시킨 것이라 이것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내겐 큰 소득이었다.


이번에 들었던 이야기 중 좋은 말들을 제외하면 주로 질문이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 님이 궁금해했던 "윤기 님의 글을 읽으면 행복한 마음이 전해지는데 실제 글을 쓸 때도 행복한 마음이었는가?"에 대한 거였다. 나의 답변은 "그렇기도 했고 아니기도 했다"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행복한 마음이지만 쓰다 보면 문장이 막히고 단어들이 부유하며 글쓰기가 늘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되고 그땐 지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쓰는 것이기에 그 마음을 다시 끌어내려 노력하는 편이고 그런 마음을 담아 글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말도 전했다. 이 질문에 답하며 알게 됐다. 혼자서만 글을 썼다면 절대 스스로 던지지 않았을 질문 덕분에 내가 행복한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누르고 있었단 걸 알게 된 거였다. 글을 지으며 어떤 감정으로 시작하고 변화하며 매듭지으려는지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모임의 분위기는 따뜻하다. 저마다 다른 장르를 쓰지만 비평은 좋은 말과 아쉬웠던 부분, 이렇게 하면 어땠을까 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글을 읽으며 궁금했던 저자의 의도는 질문으로 남긴다. 첨삭은 하지 않는다. 대신 솔직하게 말해야 하며 듣는 사람은 오해가 없어야 한다. 오가는 말속엔 누구를 가르치려는 마음이 아닌 내가 읽은 글의 저자가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지금처럼 좋은 글을 계속 썼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있다.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쉼 없이 서로에게 뜨거운 애정과 때로는 차가운 열정을 마음껏 쏟아냈다. 서로의 글을 진지하게 바라봐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세상에 내 글을 읽는 독자를 만나는 기쁨은 글을 써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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