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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행복조각

by 윤기




지난주 일요일은 매우 이상하면서도 특별한 날이었다. 무엇이 이상했는가 하면 바로 나답지 않은 모습을 마주한 것이었다. 나다운 것이라는 것 중엔 계획한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말겠단 것과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단 마음이 있다. 좋은 면에서 보자면 책임감이 강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과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해지면서 중압감에 시달릴 때도 종종 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 엄마로부터 들었던 말 중에 남자는 책임감이 강해야 한단 것이 어떤 땐 자신을 스스로 괴롭히는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 연재 마감일인 일요일이 다가오면 알게 모르게 부담감에 시달리곤 한다. 바쁜 일상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연재의 주제다 보니 한 주를 행복으로 가득 채운 일주일은 상대적으로 덜 하지만 만약 그것에 소홀하고 게을리했던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더 큰 압박에 짓눌리기도 한다.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라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낼 수는 없기에 그럴 땐 모든 걸 덮어두고 아무것도 모른 척하고 싶을 때도 있다. 마치 개학일은 다가오는데 잔뜩 쌓여있는 방학 숙제를 보며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자정이 조금 지나고(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시간에) 10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둔탁한 것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맞다. 브런치!' 이 순간도 믿기지 않지만 연재 마감을 하지 않은 거였다. 이 상황이 너무 황당했다. 일요일 하루를 이름 모를 귀신에 씌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태평하게 보냈던 거였다. 브런치에 글을 써야 한단 걸 까마득하게 잊은 나를 보는 것도 정말 낯설었다. 씻고 밥 먹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본 게 전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야말로 순수한 '없을 무'의 상태로 하루를 보내며 중압감을 느낄 수조차 없던 무중력 상태인 것 마냥 하루를 유영했다. 평소에도 연재할 글감을 찾는 걸 고려하면(물론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요일을 착각했다거나 시간 개념을 잃어버려서 그런 상태가 되었단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부터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란 인간은 약속한 걸 지키지 못하면 자괴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놈인데 오히려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 거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마음속에서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편안해졌다.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나에게 이런 모습도 있구나...'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마도 마감의 압박과 굴레로부터 자유로움을 느낀 데서 나오는 웃음이었던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이 감정을 더 지속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원래의 '나'라면 했을 다음 행동인 [연재 지연] 공지 글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냥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있고 싶었다. 살면서 처음 만난(과거에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므로) 모습을 유유히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일요일이 오기 전까지 브런치에 접속하지 않으며 여운을 즐기기로 했다. 찐이 작가님과(Jin) 정 작가님의(마음의 온도) 소환이 몇 차례 있어 일탈을 멈추고 아주 잠시 브런치로 복귀하긴 했지만 그건 정말 찰나의 순간이어서 괜찮았다.(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고 하면 왠지 서운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나란 인간은 이렇게 간사하다)


벌써 2년이나 되어버린 브런치 연재는 사진 찍는 것과 글 쓰는 걸 좋아했던 내게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대신 올해의 주제는 어렵지 않은 것으로 선택했다. 평소에도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 찾는 걸 즐기는 편이라 나름 편안하다고 생각한 주제를 골랐던 것인데 이것이 '마감'이란 규칙 안에 들어오니 '행복'이 때로는 '강박'이 되기도 했다. 간혹 제 발로 찾아오는 우연한 행복도 있지만 일상의 행복 대부분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상을 채우는 건 작은 행복이며 그런 것들은 너무 작아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에선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행복을 찾는 게 강박이 되는 건 곤란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무작정 덮어놓고 싶기도 했었지만 책임감이란 녀석은 언제나 날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약속은 꼭 지키는 것이라는 말로 나를 압박했다.


당연하지만 지난 연재가 모두 억지스럽게 행복 조각을 끼워 맞춘 것은 아니다. 분명 있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것도 있었고 어떤 때는 한 주에 몰려든 행복 때문에 다음 편에 만날 행복의 총량이 줄어들었던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남겨온 행복 조각은 즐거운 마음으로 기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 역시 책임감이란 녀석이 언제나 곁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책임감이란 아이는 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그것을 다루는 마음이 보다 순수하고 단단해야 하는 이유다. 어쨌든 나답지 않았던 일요일 덕분에 이상하면서도 황당하고 그래서 더욱 특별했던 날들을 보낼 수 있었다.


평소와 달랐던 이번 주를 보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스스로에게 압박을 크게 준 날들이 있었구나. 그것이 동력이 될 수 있겠지만 때로는 안온해야 할 순간조차 헤집어 놓을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번 주는 일탈의 순간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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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기다리셨을 독자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리는 게 맞단 생각을 합니다. 어찌 되었든 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까요. 다음엔 연재를 미룰지언정 공지글은 반드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습관적으로 연재를 미룰 것처럼 예고를 하는 것 같네요. 하하... 연재를 기다린 독자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해의 행복 조각 연재는 이번 편이 마지막입니다. 다음 주는 에필로그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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