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려면 에너지가 필요해"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건데 글 쓰는 게 무슨 에너지가 필요하냐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흰 바탕 위로 1초마다 머뭇거림 없이 깜빡이는 막대를 보고 있자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매주 한 편의 이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면 글을 쓴다는 건 무조건, 당연히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잘 모아서 조몰락거린 후 적당히 숙성시켜 세상 밖으로 토해 내려면 적당한 의지와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더군다나 글감이라는 게 어디서 툭 하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보니 매일, 매 순간이 어떻게 하면 글쓰기 재료가 될 수 있을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렇게 애써도 글감 하나 겨우 건져 올릴까 말까 한 게 글쓰기다. 그런데 이 짓도 벌써 2년째에 접어들다 보니 나름 좋은 습관이 들기도 했지만 나쁜 요령도 생겼다. 인풋은 적게, 아웃풋은 많게 하려는 게 그렇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고갈된 생각들과 글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마도 가을이 시작되면서 부쩍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그게 가을 타는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물론 나는 가을이 되면 조금 센티 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내가 꼴 보기 싫던 와중에 글쟁이 친구의 그 '에너지' 한 마디가 가슴을 후벼 팠던 거였다.
'에너지라...'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며 생각을 채우고 정리하면서 저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운을 다시 북돋아야만 했다. 그래야 글쓰기뿐 아니라 사진도 즐겁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욕구를 나침반 삼아 몇 가지를 떠올렸는데 그중 나를 가장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빛을 쫓으며 걷는 것이었다. 천천히 걷다가 빛을 만나면 셔터를 눌러 카메라에 순간을 담고 다시 빛을 찾아 떠나는 일상의 작은 여행. 잠시 쉬고 싶으면 길가에 있는 벤치에 앉아도 좋고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30분 정도 독서를 하는 것도 좋은 마음이 가벼운 여행. 장소는 두 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가볍게 다녀와야 하니 집에서 1시간 이내인 곳으로 정했고 빛을 담으며 사색이 필요했기에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어야 했다. 엄숙하고 진진한 마음으로 지도 앱을 보는데 딱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드디어 화요일, 내가 원하던 그런 날을 보냈다. 오롯이 나만의 행복을 위해 만든 날. 비록 4시간짜리 짧은 여행이었지만 굽이굽이 이어진 조용한 동네 길을 걸으며 요즘 복잡했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걷다 보니 알게 된 건데 최근에 그런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단 걸 알게 됐다. 나는 원래 모르는 동네에 가서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이미지가 나타나면 사진으로 남기곤 하는데 요샌 통 그러지 못했다. 한동안 뭔가 너무도 규칙적인 일상을 보내려 했던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됐고 그러다 보니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됐는지도 알게 됐다. 이런저런 것으로부터 마음의 부담이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동네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마음을 새로이 고쳐먹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고 가까운 미래에 더 집중해 보기로. 그러다 보면 뭐든 손에 쥐어지겠지 하는 마음도 괜찮고 아니어도 괜찮단 마음을 먹기로 했다.
이번 저의 작은 여행은 사진이 많아 이번 편에 모두 싣지 못했습니다. 풀 버전은 다음 주 중에 '동네 한 바퀴' 매거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시선과 함께 발맞춰 걸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