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주, 인간관계
이번 주는 대부분의 시간이 분노와 이를 잠재우기 위해 애쓴 날들이었다. 단순한 오해나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른 감정이었다면, 이토록 더러운 기분을 일주일이나 붙잡고 있지 않았을 거다.
깊은 곳부터 차곡히 누적된 인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폭탄이 가득한 화약고가 되어 있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뻔뻔한 것도 모자라 배려 없고 제멋대로인 말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애써 피하려 해도 집요하게 들러붙은 말은 기폭제가 되어 위태롭던 화약고를 기어이 터트렸다. 이번 주 월요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일단 나가서 뛰자.'
밖으로 나가야 살 것 같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타들어 갈 것 같은 마음을 잠시 누그러뜨린 후 러닝화의 끈을 단단히 조였다. 1km마다 페이스를 알려주는 워치의 알람이 15번째 울렸을 때였다. 어느덧 해는 남산 옆 한남동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척 사랑스럽게 보였을 붉은 하늘조차 그때는 타버린 내 마음과 똑같게 느껴졌다. 그렇게 21.1km를 내달렸다. 소용없는 일인 줄도 모르고.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해 보자.'
육체적 힘듦보다 마음이 더 지쳐서였을까. 긴 거리를 달렸는데도 몸이 힘들지 않다. 샤워를 하고 차를 한잔 우려냈다. 가라앉은 듯했던 마음에 몹쓸 생각이 다시 기어 올라왔다.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가 내 이성을 갉아먹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성을 지키려 애써 책을 펼쳤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글자를 눈으로만 읽고 있었다. 마음속에 글이 들어오질 않으니 요동치는 심장이 진정될 리 없었다. 이제는 나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자.'
달리기와 독서는 나에게 건강을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화를 다스리는 치트키 같은 존재다. 그 외의 방법은 잘 모른다. 그동안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은 분노는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다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 내면의 나와 다시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이마저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반복하고 사흘을 더 보내고 나서야 용광로 같던 마음이 겨우 진정되었다. 그 사이 별짓을 다 해봤다. 그의 연락처와 카톡을 차단하고, 포차에 가서 혼술도 해봤지만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그를 험담하고 싶진 않았다. 생각만 해도 같은 인간이 되는 것 같아 그게 더 소름 끼쳤다. 힘들었지만 용기를 내어 월요일에 일어난 일과 다시 마주 앉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태엽을 오래전으로 돌려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처음 분노를 느꼈을 때가 7년 전이었다. 그토록 긴 시간을 간곡하게 부탁했건만 그는 변하지 않고 날 괴롭혔다. 7년을 참아왔으니 두 시간을 달려도, 책을 읽어도, 연락처를 차단해도 마음이 정돈되지 않은 건 당연했다.
'이제는 나를 찾을 수 있다.'
사과를 받은 것도 아닌데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이제는 그를 놓을 수 있어서였다. 진작 이렇게 해야 했지만 관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기적인 선택으로 비칠까 봐 눈치를 봤었고, 그 안에 함께 있는 이들이 나 때문에 상처받을까 봐 그를 놓지 못했다. 나를 지키기보단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 신경 썼었다. 이제 와서 보니 바보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7년을 견뎠으면 이 정도 셀프 위로는 해주어도 될 것 같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고 한다. 나에게 일어난 일의 인과에는 당연히 내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부터 시작된 그와의 일들에 나의 잘못이 없을 수 없다. 누구의 잘잘못 여부를 떠나 결이 맞지 않은 인연을 부여잡는 것이 해법이 아님을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다. 관계를 놓지 못하는 이유를 타인에게서만 찾는다면 고통받는 사람은 결국 나일뿐이다.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기 위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