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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Aug 11. 2024

사진, 편안함에 기대 보기

서른두 번째 주, 편리함과 편안함에 대하여




폰으로만 사진을 찍은 지 오래됐다. 

편하니까...


아. 생각해 보니 폰에 달린 렌즈의 화질이 꽤 좋아진 탓도 있고, 부족한 하드웨어를 소프트웨어가 그럴듯하게 채워준 탓도 있긴 하다. 하지만 폰에 달린 카메라의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하기 전부터 이미 대부분의 사진을 폰으로만 찍고 있었다. 일상에서 편리함을 찾던 버릇이 사진 찍는 것까지 옮겨간 것이었을까.




사무실 안의 책장 바로 옆. 전시품으로 전락해 버린 필름 카메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현상을 맡길 일도, 카메라를 꺼내 들 여유도 없다. 한 무더기 모아뒀던 필름조차, 필름 카메라로 취미를 바꿨다던 후배에게 줘버렸었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벌써 4년 전이다. 한때, 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설렜던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추억에 빠지다 보니, 책장 한 편 덩그러니 처박혀 있는 카메라가 가엾게 느껴진다. 


Minolta 사의 AF-C란 모델은 플래시와 하드케이스까지 있는 걸 20년 전에 중고로 어렵게 구했었다. Lomo 카메라와 비슷한 외관을 가진 귀여운 반자동 카메라인데, 거추장스럽게 카메라를 둘러메고 싶지 않을 때, 예를 들면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가볍게 가지고 다니기 참 좋았었다. 그래서인지 정말 자주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찌직' 하는 특유의 셔터 소리도 외관만큼 귀여운 데다 은근히 진득한 색감을 가진 렌즈가 참 마음에 들었었다. 현상 후 스캔한 사진들을 보니 죄다 술자리 사진뿐이다...


Nikon 사의 FM2. 여기에 50mm F 1.4 렌즈를 물려서 나가면, 원하는 풍경은 다 모두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 때가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것도 중고로 구매했는데 뭔가 작품(?) 활동 같은 걸 하고 싶은 날엔 어김없이 FM2를 들고나갔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은 풍경 사진인데 남겨진 사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참 좋아하는 카메라였는데도 손에 들린 횟수는 왜 적었을까. 아마도 FM2만 들고나가면 너무 힘이 들어간 탓은 아니었을까.


RF 카메라의 최고라 불리는 고가의 라이카부터, 중형 필름을 사용하는 롤라이플렉스와 싸구려 자동카메라까지. 정말 많은 카메라와 렌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던 적이 있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거야, 카메라를 수집하고 싶은 거야...?' 


고민도 없이 당연히 사진이었다. 카메라를 모았던 건 다양한 카메라와 렌즈를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지만 기왕이면 내 손에 착! 하고 감기는 카메라를 갖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게 사진이란 걸 알자 수많은 카메라와 렌즈를 모두 내다 팔아 버렸다. 필름 카메라부터 디지털카메라까지 모두. 그리고 마지막까지 떠나보내질 못하고 남겨둔 게 저것들이었다. (얘기하지 않은 것들이 몇 개 더 있긴 하지만...) 그래도 디지털카메라 하나쯤은 있어야겠다 싶어 7년 전에 FUJIFILM 사의 미러리스 X-T20을 표준 줌렌즈 1개와 단렌즈 2개를 포함해서 구매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역시 전시용이 되고 말았다. 카메라는 내다 팔았고, 필름 카메라는 더 이상 쓰지 않고, 디지털카메라도 거추장스러워졌지만 사진은 계속 찍고 싶었다. 그러면서 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카메라들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전시용이 되었을 때쯤 마침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호캉스를 갔던 어느 날 이른 아침. 오픈 시간에 맞춰 수영장을 들른 적이 있었다. 어떤 어르신이 레인에 홀로 수영을 하고 있었다. 초보 눈에도 제법 폼이 좋아 보였고, 쉬지 않고 25m 풀을 계속 왕복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여 슬쩍 구경했다. 하지만 너무 느린 속도라 그때는 그냥 노인이라 힘이 부족해서 저렇게 수영하시는 건가 보다 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중상급 반 정도를 다닐 정도의 실력이 되자 빨리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힘 빼고 천천히 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호텔 수영장에서 봤던 어르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랬다. 그때 레인을 홀로 돌던 어르신은 수영 '고수'였다.




사진도 그랬다. 스튜디오에서 조명을 5개씩 써가며 힘을 빡 주고 노출을 하나하나 컨트롤해야 하는 촬영도 어려웠지만, 피사체를 자연광 하나에 맡긴 채 힘을 빼야 하는 촬영도 어려웠다. 힘을 뺀 사진이라...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게 더 힘들었었다.


어느새인가 카메라에, 렌즈에 이것들을 이고 지고 다니면 마치 대단한 결과물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밀려왔었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사진 찍는 걸 미루게 됐었다. 하지만 폰은 그냥 폰이니까. 사진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소에도 들려 있는 것이고, 마음에 드는 풍경이나 피사체가 나타나면 카메라 모드를 켜고 셔터 버튼을 누르면 될 도구일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고 사진을 찍는단 행위 자체에 힘이 들어갈 겨를이 없게 되었다. 그러자 오래전 술자리에서 필름 안에 친구들을 담았던 그 시절처럼 마음껏 셔터를 누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폰으로만 사진을 찍게 된 건,

편리함에 익숙해진 것이 아닌 편안함에 기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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