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네 번째 주, 독자가 있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하여
블로그에는 매일 1회 400자 정도 내외로 짧게, 브런치에는 매주 1회 1800자 정도로 조금 더 늘린 글을 발행하고 있다. 작년 어느 날, 언젠가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그게 계기가 되어 올해부터 조금씩, 꾸준히 글을 써보자고 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가 볼지도 모르는 공간에 글을 쓴다는 것.
혼자만 보는 일기와 달리, 독자가 있는 글을 쓴다는 건 꽤 특별한 일이다. 재미와 자극적인 숏츠 영상이 넘쳐나고 독서율은 가파르게 곤두박질하는 시대에 누가 시간을 들여 내 글을 읽어줄까. 바쁜 삶 속에 더욱 귀해진 여가 시간을 내어 줄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다. 결국엔 단 한 명의 독자도 만나지 못하면 어떡하나 싶기도 했지만 독자가 생겨도 걱정이었다. 혹여나 누군가 글을 읽고 현실에 사는 '나'의 존재를 알아버리면 어쩌나 와 같은 쓸데없는 걱정 따위였다. 시간이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모든 것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이었다.
걱정했던 시간이 무안할 만큼 세상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메시지도 없고, 이렇게 따분한 글을 누가 읽는다고...' 이런 생각이 들자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단 웃픈 이야기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굴복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훗날 많은 이들에게 공감 가는 글을 쓰는 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꾸준히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야 했다. 하루를 보내며 그 안에서 글감을 찾으려 애썼고, 일주일을 정리하며 글밥을 늘리는 훈련을 했다.
어느 일요일이었다. 마감 발행 버튼을 누르고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알람이 왔다. 누군가 라이킷을 했다는 의미였다. '누굴까? 얼마나 한가하길래 내 글에 하트를?' 댓글은 달리지 않아 글을 읽고 남긴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응원의 표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드러났다는 자체가 뿌듯했다.
알람이 떴다. 이번엔 댓글이란다. 단숨에 앱을 열고 짧은 글을 확인했다. '읽었다! 이번엔 확실히 내 글을 읽고 적은 댓글이다!' 신이 나 바로 답글을 달고 싶었지만 그건 뭔가 기다렸다는 듯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댓글을 단 당사자도 당황할 것 같아 잠시 숨을 골랐다. '우선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1시간쯤 후에 달자' 처음으로 달린 댓글의 위력은 대단했다. 젖은 장작에 불을 붙이는 것처럼, 일방통행인 글쓰기가 답답할 때쯤, 단 한 번의 댓글은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어주었다. '아! 독자가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물론 그분이 앞으로도 글을 읽어 줄지는 모르지만 단 한 번뿐일지라도 내 글을 읽어주었으니, 그는 나에게 '독자'였다.
시간이 흐르자 라이킷 횟수도 늘어나고 댓글로 피드백을 남겨 주는 분도 점차 늘어났다. 한 번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방문자수가 2,000회를 기록하기도 했다. (평소엔 70회 내외 정도) 그리고 블로그에서 친해진 이웃 중 브런치 글을 읽고 싶단 분들까지 생겨났다. (블로그는 브런치와 톤이 다르다) 블로그 이웃은 글쓰기 대가들답게 댓글뿐 아니라 따로 피드백까지 주었다. 심지어 한 이웃은 메모장에 필기까지 하며 내 브런치 글의 후기를 포스팅까지 해주었고, 다른 이웃은 거액의 응원하기 후원을 해주었다. 글을 써보자고 한지 고작 반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최소 10명이 넘는 독자가 생긴 것이다. 작가는 단 한 명의 독자만 있어도 글을 쓴다고 했는데, 난 작가도 아닌데 벌써 10명이 넘는 독자를 만났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을 말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독자의 유무다. 물론 단순히 독자만 있다고 일기가 에세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글이 독자를 공감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들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아직은 그 정도 수준의 글을 쓰진 못하지만 고작 6개월 차 초보자에겐 그저 독자가 있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가 생긴다.
"아팠던 기억을 담담하게 쓰는 것. 기뻤던 일을 슬프게 쓰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의미 있게 쓰는 것. 글쓰기는 우리 삶을 새롭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이하루, p.208)
이하루 작가님의 말대로 독자가 있는 글쓰기는 나의 삶을 새롭게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이 습작이 되어, 언젠간 제대로 된 에세이를 쓰길 고대한다.
그날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한 주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