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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 Sep 01. 2024

힘듦, 미워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서른다섯 번째 주, 친구의 아픔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지난 금요일이었다.




북카페에서 포토에세이 편집을 하던 때였다. 절친들과 있는 카톡방 알림창이 바빠졌다. 곧 퇴근할 예정이라며 오랜만에 한잔할 사람을 찾는단 친구의 메시지. 한참 편집에 열을 올리던 중이라 오늘은 바쁘다는 핑계로 넘어갈 심산이었다. 마침 다른 친구가 시간이 괜찮다는 응답을 하자 만남이 성사되었다. 마음의 짐을 비우고 적당한 핑계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라며 편집을 이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이 괜찮다던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여자 친구랑 약속이 있었는데 깜빡했다며 양해를 구한다는 말이었고, 약속은 없던 일이 될 순간이었다. 할 일이 많은데... 왠지 모르게 친구의 '한잔할 사람'이란 글자가 어른거려 북카페가 있는 성수동으로 친구를 불렀다.




금요일 저녁 성수동.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시간.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기엔 그래서 가끔 가는 족발집에 이름을 적고 바깥 대기 좌석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도착했고 두 명인 덕분에 조금 일찍 입장했다. 주문을 하고 8부로 따른 소주를 한 잔 들이켜고 나서, 족발을 씹기 전 요즘 어떠냐는 말을 건넸다. 중요하게 맡은 프로젝트가 막바지라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는 말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오늘의 메인 주제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미친놈 때문에 죽을 거 같다"


오늘은 왠지 친구의 말이 직장인들의 일상적인 푸념처럼 들리지 않았다. 눈빛과 호흡에서 풍겨지는 것이 단순히 안줏거리로 말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들은 이야기에 내 얼굴이 뜨거워지며 붉어졌다. 선을 넘었다. 통상적인 직장인의 애환을 넘어선 이야기였다. 인간의 존엄성까지 따지지 않더라도, 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한 쓰레기 같은 직장 상사의 이야기였다. 그 세상에서 친구는 철저하게 홀로 버티고 있었다. 까맣던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버텨내고 있었다.


친구 이야기에 같이 욕을 해주고,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을 되찾아 주고 싶어 찬란했던 예전의 이야기까지 꺼내며 다독여봤다. 일시적으로라도 회사의 악마를 잊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친구의 속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중학생 때부터 함께한 우리 친구들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다니던 독서실 앞 놀이터에 앉아서 했던 이야기들. 우리 친구들은 나중에 모두 멋있는 삶을 살 거라는 이야기들. 다 잘될 거란 응원들. 부자가 되면 스포츠카를 사겠단 수다들. 그때가 떠오르자,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때를 기억하고 있을까하는 생각과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난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서였을까.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속상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던 차에 친구가 돌아왔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입술을 떼자마자 겨우 누르고 있던 감정이 눈에서 쏟아졌다. 무슨 서러운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눈물이 흘렀다. 아마 그곳이 시끌벅적한 장소가 아니었다면, 혼자만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면, 새어 나오는 소리까지 들렸을 거다.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를 몇 겹으로 접어 눈 아래에 가져가기를 반복하자 이제는 친구가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 큰 아저씨 둘은 족발을 가운데에 두고 울기 바빴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좋은 회사, 높은 연봉, 화목한 가정. 삶에서 빛과 어둠은 필연이라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가 서 있는 그늘은 너무도 외롭고 가혹했다. 부서를 옮기거나 이직, 최후에는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는 친구 앞에 난 그저 이야기를 듣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밖에 해줄 수 없는 내 모습이 현실이라는 것조차 슬펐다.


살다 보면 마음이 극한으로 치닫는 힘듦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내 맘처럼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 언젠가는 그런 감정을 만나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때마다 가족과 친구가 옆에서 날 지켜줬다. 아픔을 겪을 땐 혼자 있는 것 같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항상 옆에서 따뜻한 응원을 보내는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꼭 어떤 말을 해주지 않아도 그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나도 친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 지켜만 볼 수밖에 없단 건 참 슬픈 일이다. 가족도, 친구도 이런 마음으로 나를 지켜봤었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친 친구의 마음은 반드시 회복될 테고, 아픔은 행복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거다.




다음 날, 토요일. 어제 고마웠단 친구의 말과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단 말이 카톡방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든 극복해 내고 말겠단 용기의 말로 보였다. 안심하기엔 이르지만 우선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이날을 회상하게 된다면,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면서 이야기하게 되길 바란다.


그땐,

독서실 앞 놀이터. 티 없이 해맑던 얘기를 주고받던 학생들처럼, 친구들 모두 원 없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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