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반자발적 비혼주의(2)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김지민

- 직업 : 게임회사 일러스트레이터

- 자녀(연령) : 없음, 미혼

- 기타 : 지혜의 동생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비혼장려?"

지혜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에 놓으며 본격적으로 지민을 향해 따져 물었다. 순하디 순하기만 했던 동생이 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배꼽 아래부터 울컥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허리가 조금 이상하다 싶었던 그제 저녁, 지혜의 남편은 갑작스러운 출장소식을 알렸다. 회사에서도 급히 잡은 일정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그에게 지혜는 별다른 항의를 할 수 없었다. 나 허리 아플 것 같으니 다른 사람한테 가라고 부탁하라 할 순 없으니. 제발 남편이 없는 동안 허리가 더 말썽을 부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하지만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고전적 정설이 이번에도 통했다.

남편이 출장을 떠난 다음날이었던 오늘 아침, 허리는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일단 주형만 유치원에 보내놓는다면 얼른 병원을 다녀와 그 후는 대충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주형을 케어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삐걱거렸다. 친정과 시댁도 멀고, 오롯이 남편과 육아해 달리 도움을 구할 곳이 없던 지혜의 머리에 떠오른 건, 어쩔 수 없이 20분 거리에 사는 친동생 지민이었다.


엄마와 두 자매가 있는 단톡방에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다. 지혜는 주로 주형의 사진을 보냈고, 엄마는 꽃사진과 명언 글을 공유했으며, 지민은 주로 회사욕을 뱉어냈다. 서로 너무나 다른 일상을 살아가는 모녀들이었지만 각박한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쳐 서로를 보듬어주는 따스한 곳이었다.

몇 달 전부터 지민은 자신을 괴롭히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마무리되고 남은 주간동안 쭉 휴가를 써 쉴 계획이라 단톡방에 미리 알렸었다. 지혜는 그것이 생각난 것이었다.

긴 일정을 끝내고 맛보는 달콤한 첫 휴가날을 제 일로 방해해도 되나 싶은 지혜였지만 옆에서 자고 있던 아들 주형이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모습을 보자니 도저히 앞이 막막해 어쩔 수 없었다. 곤한 잠에서 깨어나려하는 이 천사 같은 아이를 얼른 해치워야 했다.


제때 도착해준 지민 덕에 기어가다시피 정형외과에 가 진통제를 맞고, 처방받은 약을 타 약국의 정수기 물과 함께 급하게 털어 넣었다. 곧장 같은건물의 2층에 자리한 한방병원을 쫓아가 침과 뜸을 맞았더니 몸은 많이 회복된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휴가를 반납하고서도 싫은 소리 없이 한걸음에 달려와준 동생이 고마워 평소 그가 좋아하던 가게에서 기분 좋게 분식거리를 샀다. 밀떡볶이와 쌀떡볶이를 함께 파는 그 가게에서 지혜는 주로 쌀떡볶이를 먹었지만, 지민을 위해 밀떡볶이로 포장했다. 순대는 간을 뺀 부속들만 섞어달라 이르고, 튀김은 야채튀김 대신 오징어튀김을 하나 더 넣어달라 부탁했다. 모두 지민의 취향이었다.



그렇게 사 온 떡튀순은 전쟁으로 분단된 국가의 경계선역할을 하듯 둘 사이 정확히 가운데에 위치해 향긋한 냄새만 풍기고 있었다. 이젠 둘 중 누구도 코 앞의 먹거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내가 뭐 어떤 못난 모습을 보여줬길래 그런 말까지 들어야 돼? 오늘 같은 모습? 허리 아파서 내 애도 못 돌보고, 남편은 어디로 가버린 그런 모습? 보이는 게 다인줄 아니?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아예 도와주러 오지도 말지 그랬어. 여태 우리집 올 때마다 항상 그런 마음이었니?"

살짝 눈물이 맺히며 울분을 토하는 언니를 보고서는 마음이 약해지는 지민이었다. 상처를 주려 한 말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먼저 시작한 건 언니였다.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얘기했어? 언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결혼이고 연애고 뭐고. 난 전부터 분명 말했잖아, 관심 없다고."

지혜는 계속 눈물이 그렁한 채 대답했다.

"관심이 없다고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너 지금은 자유롭고 좋겠지만, 나중을 생각해야지. 나중에, 나중에, 그러니까. 너 언제까지 엄마 아빠가 살아계실 거라 생각하는 거 아니잖아. 우리 나이 드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엄마 아빠 나이 드는 것도 생각해야지..."

눈물이 그렁하던 지혜는 '엄마'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면서부터 격해지더니 이내 왈칵 울어버리기 시작했다. 지민은 부모님을 걱정하는 언니의 마음은 이해하나, 그것과 자신의 결혼을 연관시키는 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식탁 모서리에 있던 티슈곽에서 휴지 세 장을 뽑아 언니에게 건넨 후 그게 내 결혼이랑 무슨 상관이야, 대답하니 지혜는 건네받은 휴지로 코를 팽 풀고서는 아직 코가 꽉 막힌 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이 험한 세상을 나중에 어떻게 혼자 살아가려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서로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어야지. 그래야 엄마 아빠도 마음을 좀 놓으시지."


언니가 꼰대가 되었다. 지민은 눈앞의 언니를 보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언니가 뱉은 말은 그들이 그토록 싫어하던, 남동생과 그들을 차별했던 친할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설 명절, 갓 대학생이 된 언니에게 결혼 언제 할 거냐고 묻던 할머니를 보고 언니와 지민은 집으로 돌아오는 아빠의 차 안에서 2시간 내내 할머니를 욕했었다. 아빠조차 그런 그들을 말릴 수 없었다. 그런 언니가, 지금 할머니와 똑같은 말을 지민에게 전하고 있었다. 누군가 옆에 있어야 의지하고 기댈 곳이 있다는 말, 가정을 단란하게 빨리 이루어야 안정적이라는 그런 말들.


할머니까지 떠올린 지민은 언니의 눈물에 넘어가지 않겠노라 마음먹고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언니를 다시 낯선 '주형의 엄마'가 아닌 내가 알던 '김지혜'로 돌려놓고 싶었다.

"언니, 난 지금 혼자 사는 이 세상을 해결하는 것도 어려워. 언니는 계속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는데, 나중이 없다니까? 나중에는 뭔 나중에야, 지금도 힘든데."

자신의 눈물에도 올곧게 할 말을 내뱉는 지민을 보고 지혜는 당황했다. 평소의 지민 같았으면 언니 알았어, 알겠으니까 일단 떡볶이 먹자,라고 할 아이였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지민은 어리둥절한 지혜를 두고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결혼은, 혼자 하니? 뭐 그래 같이 할 사람 어찌어찌 찾았다 쳐. 결혼하는 데만도 또 수천만 원 깨진다며, 그거 내 연봉이야. 연봉은 무슨, 잘하면 2,3년치는 되겠네. 집은, 집은 어떡할 거야? 지금 결혼적령기 남녀가 결혼해서 부모님 도움 안 받고 우리나라에 집 살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 지방은 집값이 싸다고? 지방에는 일자리가 없는데 어떡해. 일하려면 여기 있어야 되는데. 집 굳이 살 필요 없다고? 전세? 보증금은 뭐 큰 돈 아닌가. 전세사기 요즘 기사 봤지? 월세? 지금 나 혼자 사는 조그만 자취방 월세도 점점 올라서 감당하기 어려워. 뭐 그래, 사랑으로 이겨내서 꾸역꾸역 산다고 쳐. 결혼하면, 또 주변에서 애 낳으라 하겠지? 애 낳으면? 걔 키우는데 몇 억이 든다는데, 내가 뼈 빠지게 일해서 몇 억을 걔한테 투자하는 게 맞는 건가? 그래놓고 또 주변 애들이랑 내 애랑 비교하면서 스트레스 받겠지. 몇 억 써도 모자라겠지. 아니, 지금 언니랑 주형이를 뭐라고 하는 게 아냐. 언니는 집 있잖아. 그러고 보면 언니 결혼할 때 나도 결혼했어야 했나? 그때는 집값이 좀 쌌으니까?"


아직 울음기가 다 가시지 않아 훌쩍이던 지혜는 세상을 향해 냉소를 퍼붓는 지민을 보자 서서히 눈물이 메말라갔다. 그저 지민의 외로운 노후만을 생각하고 되지도 않는 조언을 한 것 같은 자신이 조금씩 부끄러워졌던 것이다.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던 탓이다. 지민은 말을 하면서 더욱 화가 나는 듯 했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줘야 결혼을 하고 애를 낳지. 나 하나 살기도 빠듯한 세상에 대책 없이 무턱대고 애를 낳으라는 건 무슨 심보야. 그렇지 않아? 애 낳으면 내 애도 이런 세상 살겠지. 살 곳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점점 살기 힘든 이 나라에서. 이 30대 성인여성 한 명도 제 앞가림 못하는 세상에서."

지혜는 이제 지민의 말에 조용히 고개까지 끄덕이고 있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지민은 그런 지혜를 보고 약간의 귀여움과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수습하듯 말했다.

"아니, 언니는 잘하고 있어. 주형이는 잘 클 거야."

수습 비슷한 말을 하는 동생을 보고 지혜는 쓴웃음 지었다. 되려 지민이 안쓰럽게 느껴진것이다. 3년이라는 짧은 세월을 먼저 태어났다곤 하지만, 그 짧은 3년의 차이와 사소한 타이밍으로 지민은 지혜보다 더 높은 취업시장의 문턱을 넘어야 했고, 자가취득은 꿈도 못 꿀 입장이 되어버렸다. 같은 시대를 사는 듯 하면서도 각자의 다른 시대를 살고 있었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조용한 지혜를 보고 지민은 눈치보며 말했다.

"외로움이고 뭐고 기댈 곳이고 뭐고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니까. 나도 언니의 선택을 비하하려 했던건 아니라, 그냥... 나도 이런 사정이 있으니까 서로 다른 선택을 존중하자는거였어. 말이 너무 격하게 나왔던건 미안."


지혜는 미안해하는 지민을 향해 칫, 한마디만 장난스레 내뱉곤 젓가락을 들어 튀김을 한 입 베어 먹었다. 그것으로 자매전쟁은 싱겁게 막을 내렸다. 지민도 그런 지혜를 보자니 다시 허기가 몰려와 젓가락으로 순대를 집어 떡볶이 소스를 가득 묻혀 입으로 넣었다. 아직 따끈하고 부드러웠다.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너한테 결혼이고 뭐고 잔소리하지 말라는 거지?"

지혜는 떡볶이의 어묵을 골라 이미 빨간 그것에 새빨간소스를 다시 듬뿍 찍어 먹으며 지민에게 물었다. 지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답했다.

"어. 딴사람한테 말했어 봐, 아주 뒷말 들었지. 말은 안 했지만 아까 언니, 우리 할머니 같았다니까?"

지민의 대답에 지혜는 젓가락을 들어 올려 지민을 향해 찌르는 시늉을 하고선 웃으며 말했다.

"있다가 주형이 하원은 도와주고 가야된다."



지민이 다 먹은 그릇을 치우며 설거지를 하자니 플라스틱 용기가 제법 나왔다. 밖에 나가서 먹을 걸 그랬나, 후회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보았던 플라스틱 쓰레기더미를 기억해 내니 꽤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역시, 아이를 위해서도 아이는 낳지 않아야겠다 생각되었다.


지민은 플라스틱용기 물기를 탈탈 털며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면 아까 보다가 잠들었던 넷플릭스 예능을 다시 봐야겠다 계획한다. 오랜만에 치킨시켜 맥주도 한 캔 따야겠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오늘 하루에 대한 계획정도.

40년 후를 계획할 겨를은 없다. 나 아닌 누군가를 케어할 능력도 없다.


오늘도 지민은 반자발적 비혼주의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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