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시,시,시자로 시작하는 말(2)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C

- 직업 : 가사노동자

- 자녀(연령) : 여아2(10세, 8세)

- 주양육자 : 엄마(C)

- 기타 : 지혜의 중,고등학교 동창


2. 이름 : D

- 직업 : 개인사업자

- 자녀(연령) : 여아1(7세), 남아1(7세) / 이란성쌍둥이

- 주양육자 : 엄마(D)

- 기타 : 지혜의 중,고등학교 동창



주먹크기의 작은 얼굴, 그 위에 적당히 자리 잡은 눈 코 입. 둥그런 쿠키반죽 위 초코칩을 얹은 듯, 으깨논 감자에 콩을 박아 놓은 듯. 사람의 모습 이라기보다는 어떤 물체나 혹은 이름 모를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 다르게 생긴 부분 없이 그야말로 '똑같은' 얼굴의 쌍둥이는 인체나 과학의 신비를 논하기에 충분했다. 오른팔에는 수액과 진통제바늘이 꽂힌 채로, 아직은 몽롱한 상태에서 맞이한 제 뱃속에서 나온 두 아이의 똑 닮은 얼굴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D였다.


D는 대학시절 우연히 재회한 초등학교 동창과 긴 연애의 종착지로 결혼을 선택했다. 연애기간이 길었기에 신혼생활이라고 뭐 그리 다를까 싶었지만, 같은 집에서 생활하며 소꿉놀이처럼 살아가니 그 또한 연애와 다른 새로운 재미였다. 출산은 생각지도 않았기에 자연히 꼬박 피임을 챙겼다.

새롭고 재밌기만 하던 시간도 2,3년 지나니 조금은 단조로워지기 시작할 쯤. 오랜 세월 함께한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며 D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큰 상실감이 찾아왔다. 무기력해지던 시간에 오랜 친구까지 잃게 되니 하루하루 의미가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녀의 침잠을 곁에서 보던 남편은 조심스럽게 출산계획을 제안했고, D 역시 아이를 가진다면 지금이 때가 아닐까 싶어 그의 의견에 긍정하며 피임 없는 생활을 시작했다.

피임을 하지 않게 되면 곧장 임신을 하게 될 줄 알았다. D와 그의 남편 모두 그리 많지는 않은 나이였으며, 운동을 좋아하니 건강 하나는 자신 있었다. 허나 임신계획을 세운 지 반년이 지나도 기대하던 소식이 찾아오지 않자 조급해진 그들은 곧장 난임전문의를 찾았다. 둘의 몸은 아이를 가지기에 크게 눈에 띄는 이상이 없다는 검사결과를 받았다. 다만 원할 경우 조금 더 생명이 확실하게 찾아오는 방법은 있다 했다. 뭐든지 분명한 방법을 선호하던 D는 '인공수정'이라는 임신방법을 택했고, 큰 문제가 없던 몸에 심어진 배아는 한 번에 착상되고 자라나 쿠키와 감자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다.


인공수정을 택할 당시부터 쌍둥이 육아는 각오했기에 두 아이를 동시에 키우는 만반의 준비는 해 놓았다. 모든 비용과 물품은 배가 필요했지만 한 번 고생하고 아이를 키워놓으면 나중엔 수월하겠지, 라는 마음도 있었다. 친정엄마에게도 미리 언질 해 두었기에 아이를 낳고 조리원을 퇴소하자마자 자연히 그와 공동육아를 시작했다. 하지만 쌍둥이 육아는 어른 두 사람의 손으로 부족했다. D와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돌보다 둘로는 도저히 힘겨웁겠다는 판단에 친정아빠까지 호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셋은 한 팀이 되어 쌍둥이를 케어했다. 엄마 아빠도 오랜만에 해보는 갓난아기 키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몸 이곳저곳에서는 '지금은 그런 걸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데요'라는 신호를 보내오듯 했다. 허리가 아프고, 등이 결렸으며, 무릎은 쑤셨다. 그래도 제 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내색 않고 육아에 전념했다. 그러다 친정엄마의 고질병이었던 무릎에 큰 탈이 났고,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 수술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쌍둥이를 생각해 수술을 미루겠다는 엄마에게 다른 손을 빌리더라도 아픈 엄마에게 애들을 맡길 순 없다고 설득해서야 엄마는 수술을 결정했다. 보호자가 필요했기에 아빠도 손주들이 아닌 엄마 곁으로 가야만 했다.


"애들은 어떻게 할 거야? 계획 있나?"

엄마의 수술소식을 남편에게 전하자 남편은 뭐라도 생각해 둔 게 있겠지 싶어 D에게 물었다.

"계획은 무슨. 그렇다고 일어나지도 몬하는 엄마한테 계속 애 봐달라고 할 수는 없잖아. 뭐 사람을 쓰든 해서라도 어떻게 되겠지."

D도 처음엔 정말 아무 계획이 없었다. 늦은 나이에 손주를 보느라 몸 이곳저곳이 말썽인 듯한 엄마 아빠를 보는 것도 마음이 좋지 않던 차에,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상해버린 엄마의 무릎을 마주하니 마치 제 잘못인 것만 같았다. 조부모의 사랑과 손길을 받으며 날로 살이 올라 부풀어 오르는 풍선처럼 포동해지는 아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엄마 아빠의 얼굴은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하루가 다르게 주름이 늘어갔다. 때문에 이기적으로 엄마의 수술까지 미뤄가며 제 육아를 맡길 생각은 없었다. 앞뒤 잴 것이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 고민하는 시간 중, 갑자기 억울해지는 D였다. '쌍둥이가 우리 엄마 아빠 손주만도 아닌데. 어머님 아버님 손주도 우리 쌍둥이잖아.' 아이를 낳은 후 첫 손주들이 태어났다며 좋아하던 시부모님이 떠올랐다. 아이들을 보고 싶은 주말마다 준비되지 않은 집에 불쑥 찾아오곤 했었는데, 처음 30분은 아이가 귀엽다고 봐주다 이내 리모컨을 찾고서 TV로 눈길을 돌리던 그들에게 불만이 있긴 했다. 아기들이 깨어있을 땐 영상시청을 애써 자제하던 D였기에, 그들이 켜놓은 TV에 고개와 눈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아기들의 모습에 속이 상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들이 쌓여 시부모님들의 방문이 불편하고 꺼려지던 D였다. 하지만 당장에 육아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른 것도 시부모님들이었다. 모순적인 마음이 제가 생각해도 조금은 부끄러워 남편에게 머뭇거리며 물었다.

"어머님이랑 아버님...... 한... 한 달 정도만 도움 주실 수 있으려나? 당연히 용돈은 더 챙겨드리고."

남편은 의아해하며 D를 쳐다보았다. 말은 하지 않지만 눈빛과 행동으로 그의 부모님을 불편해하는 D를 알던 터였다. 그 역시 자신의 부모님이었지만 조금은 그들의 행동이 불편했기에.

"용돈은 용돈인데... 괜찮겠나? 안 불편하겠나?"

"지금 불편한 게 문제겠나... 당장 애를 봐야 하는데. 내가 혼자 쌍둥이를 어떻게 보겠노. 사람 쓰는 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조금 꺼려지기도 하고... 그래도 아는 사람이 보는 게 더 낫지 않겠나. 어머님 아버님도 쌍둥이들 좋아하시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 주 주말. 웬일로 아들네가 손주들을 끌고 자신의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에 시부모님은 상다리 부러지는 점심식사로 보답할 참이었다. 시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고 있던 남편의 여동생인 시누이와 그의 4살 배기 딸은 점심메뉴를 전해 듣고는 먼저 도착해 있었다. D는 잔칫상 같은 식탁을 구경하고선 평소보다는 조금 더 활기찬 소리로 시어머니의 요리솜씨를 칭찬했다. 부탁할 일을 염두에 둔 탓이다. 모두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들임을 눈치챘지만, 오늘만은 부탁을 해야 할 처지이기에 아무런 불만을 말하지 않기로 했다. 점심식사가 모두 준비되었지만 어른들의 편한 식사를 위한 쌍둥이 낮잠재우기는 성공하지 못 했다. 평소와 같이 둘 중 누가 먼저 식사를 할까 얘기하는 남편과 D의 모습을 보고는 시어머니가 항상 내놓던 답을 제시했다.

"아들, 니 먼저 묵어라. 니 먼저 후딱 먹고 그다음에 쌍둥이 엄마가 묵으면 되겠다. 그래야 둘 다 편하제."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지만, 항상 아들을 먼저 챙기는 시어머니의 말에 빈정이 상하는 D였다. 하지만 오늘만은 불만을 꾹 참는다. 밥을 먹을 때 남편이 먼저 육아 요청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내면 되겠다 싶어 되려 잘되었다 생각했다. 너가 먼저 먹으라는 남편의 등을 떠밀며 귓속말로 잘 얘기하라 넌지시 일러두었다.

D는 거실에서 아이를 보면서도 귀는 식사자리를 향해 있었다. 남편이 언제 이야기를 꺼내나 생각하던 중, 대충 식사가 마무리될 쯤이었다.

"엄마, 우리 집에 와서 한 한 달만 애기들 봐주면 안 되나?"

남편의 물음에 조금은 반갑기도, 갑작스러워 당황스럽기도, 사실 어떤 기분인지 모를 듯한 얼굴로 시어머니는 대답했다.

"한 달? 와? 언제부터? 사돈댁은 우짜고?"

남편 역시 부탁하는 제 처지를 염두했는지 평소보다 사근사근하게 어머님을 향해 말했다.

"어머님이 쌍둥이 보다가 몸이 상하셔서 무릎을 다치셔가지고 수술해야 된다더라. 원래도 무릎이 불편하긴 하셨는데, 이번에는 수술해야 될 것 같아서. 아버님도 보호자로 옆에 계셔야 되니까. 한 달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와서 봐 줄래? 다음 주부터 와주면 된다. 집에서 왔다 갔다 하기 힘들면 방도 하나 치워놓을게. 용돈도 잘 챙겨드릴게요."

D는 미리 의논 한 적 없는 '단기 거주'성 발언에 조금 흠칫했지만, 쌍둥이를 혼자 보는 것보단 낫지 싶어 남편의 이야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대신 어머님의 표정을 살폈다. 아버님이야 어머님이 간다고 하시면 따라오실 테니 어머님만 잘 설득하면 될 터였다. 그리 나빠보이지 않았다. 고민을 하시는 듯했지만, 거실에 있는 쌍둥이를 흘긋 보는 눈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들이 오랜만에 보드랍게 부탁하는 얼굴을 보는 표정이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잘 풀리겠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아닌, 예상치 못한 자의 날 선 발언이 나왔다.

"엄마 그때 안되는데? 엄마 우리 집에 와서 하린이 봐줘야 되는데?"

시누이였다. 가까이 살고 있어 어머님이 종종 딸네에서 손녀를 봐준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하지만 시누는 집에서 육아를 전담했고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기에 굳이 어머님의 상주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둘이서 잘 놀고 있는 쌍둥이를 두고 식탁에 참전을 하러 가야 하나 생각 중인 D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의 남편이 동생에게 대꾸했다.

"하린이를 왜? 하린이 이제 4살인데. 뭐 봐줘야 되는데. 니 집에 있잖아."

시누는 무뚝뚝한 오빠의 말투와 무심한 발언이 섭섭한 듯 따지며 대답했다.

"뭐 내가 맨날 집에 있는 줄 아나? 그리고 4살도 다 큰 애 아니고 완전 애기거든? 내 이제 파트타임 일 구해서 다다음주부터 일 할 거다. 1시부터 5시까지 일하니까 엄마가 하원해야 줘야 된다."

"5시까지 일하면 니가 5시에 마쳐서 하원시키면 되겠네. 뭐가 문젠데."

남편 역시 따지듯 말하는 동생에게 조금은 화가 났는지 날카로워진 듯했다. 아직 거실에서 참전을 궁리 중인 D의 생각엔 그 작전은 시누에게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상대가 화를 내면 더 화를 내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뭐가 문제? 5시에 하원하는 애가 어딨는데. 그때 되면 애들 거의 다 없어서 하린이만 남거든. 그리고, 엄마가 일 안 하다가 갑자기 일하면 하린이도 적응 못 하고 불안해한단 말야. 오빠야야 말로 뭐가 문젠데? 자주 오지도 않드만은 갑자기 밥 먹으러 온다고 할 때부터 쎄하드라. 언니는 언니네 친정 있잖아. 내 친정엄마 왜 건드는데?"

'친정'을 건드리자 참지 못하고 일어난 D였다. 참을 수 없는 단어였다.

"아가씨, 아가씨 말씀대로 저도 친정 있는데요, 오빠가 아까 말한 것처럼 수술을 하셔야 되잖아요. 손주들 보다가 다치셔서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지금 스스로 걸을 수도 없는 상태이신데, 저를 위해서 그 다리로 애들을 봐주실 순 없잖아요."

화를 꾹 참고 호소하듯 말하는 D에게 시누는 어떠한 감정도 변하지 않은 듯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엄마가 수술하신다면서요? 아빠가 봐주시면 되잖아요. 예전부터 쌍둥이라고 되게 힘든 내색 많이 하시던데, 지금도 저기 애들 보니까 지들끼리도 잘 노네요. 평소에 애들 데리고 잘 오지도 않으시면서, 이런 부탁하시려고 오신 거잖아요. 제가 먼저 엄마한테 말했고, 제 친정엄마니까 더 이상 엄마한테 부담 안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야기가 심각하게 흘러가는 듯하자 시어머니는 과일접시를 내오며 분위기를 풀고자 말했다.

"됐다, 내가 고민해 볼게. 일단 과일 먼저 먹어라. 아가야, 니도 이제 밥 묵으라."

입이 오리처럼 삐죽 튀어나온 채 과일접시를 들고 거실로 향하는 시누는 부엌을 향하는 D의 어깨를 스치며 그를 흘기듯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봐 오던 사이였기에 항상 '언니 언니'하며 따르던 귀여운 여동생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뭔가 자신이 보다 높은 입장이 된 듯 굴던 그녀였다. 결혼을 허락받던 때, 농담 삼아 '이제 제가 언니 시누이네요~, 시집살이는 언니가 하는 거 봐서 고민 좀 해볼게요~.'라던 그녀의 말이 주마등 스치듯 D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지금의 기분에선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지만, 분위기를 생각해 식탁에 앉았다. 갈빗대가 몇 개 남지 않은 고기접시와 반찬 국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그릇들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설움이 배꼽 아래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한 숟가락 가득 밥을 입에 억지로 넣었더니 사레가 들려버렸다. 쿨럭거리며 눈물을 찔끔 흘리자, 참고 있던 눈물이 한꺼번에 와락 쏟아졌다. 쿨럭이는 소리에 식구들의 시선이 D에게 쏟아졌지만, 흐르는 눈물이 사레 때문이라고 변명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은 D였다.

대충 입으로 음식들을 빠르게 쑤셔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니, 어머님은 D의 뒤통수를 향해 굉장한 인심을 쓰는듯 일렀다.

"그릇은 내가 싱크대에 담가 놓을테니까네 설거지는 과일 다 묵고 하그라."

이래서 내가 시댁 안 온다, 니들 입만 입이냐, 아가씨는 그럼 하는 게 뭐냐, 처먹기만 하냐, 아버님은 허수아비냐, 설거지는 니 아들도 잘한다, 하고 싶은 말 수가지를 목구멍에 집어삼키는 D였다.

'육아전쟁'사태는 협상으로 일단락되었다. 첫 2주간은 D의 집으로, 그 다음주부터는 시누이의 집으로 시부모님이 가기로 한 것이다. 2주간 도움의 손길이 비게 되나, 그 기간은 사람을 고용하기로 남편과 의견을 나누었다. 굽힐 기색 없는 시누이와 의미 없이 더 싸우느니 그게 낫다 싶었다.

하지만 힘겹게 얻어낸 2주라는 시간을 시부모님은 채우지 않았다. 아니, 채우지 못했다.


"도윤아, 이리로 와 봐라. 아고 우리 아들."

"도윤아, 할배 봐봐라. 아고 이뻐라. 장군감이네."

"아고, 우리 도윤이는 벌써 일어서네. 확실히 쌍둥이라도 뭐가 다르네."

누군가가 듣는다면 집 안의 아기는 한 명인 줄 알 것이었다. 어머님과 아버님은 쌍둥이 남매인 도희와 도윤 중 유독 남자아이인 도윤만을 더욱 챙겼다. 쌍둥이지만 발달속도가 다른 부분도 도희가 뛰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만, 도윤이 빠른 부분에 대해서는 유별나게 강조하며 칭찬하기도 했다. 하루이틀은 참을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습이 눈과 마음에서 거슬리는 D였다. 남편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던져보았지만, 하루종일 함께 있는 D와 저녁에만 잠깐 같이 하는 남편의 체감상황은 많이 다른 것이라 크게 공감 받지 못했다. 낮에 있었던 일을 걱정스레 이야기하면, 별 것 아니라는 듯 대꾸하는 남편이었다.

그들의 편애는 날로 심해져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들은 굳이 여자아이의 머리에 핀따위를 꽂아놓거나 옷 색깔을 다르게 입히지 않은 이상 성별구별조차 어려웠다. 이란성쌍둥이지만 유달리 똑 닮아 부모마저 구분이 쉽지 않은 그들의 얼굴에, 시아버지의 기가 차는 대사는 다음과 같았다.

"도윤이는 아빠 어릴 때랑 쏙 뺐네. 도희는 외탁을 한 것 같고야."

아무리 봐도 한쪽 도화지에 물감을 짜 발라 반으로 접어 놓은 데칼코마니 모양을 한 쌍둥이를 보고선, 한 명은 친탁이니 한 명은 외탁이니 구분을 하는 아버님이 안쓰러울 만큼 웃길 지경이었다. 아쉬운 쪽이 참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그 모든 광경들을 애써 못 본 체하며 저라도 딸 도희를 좀 더 신경 써서 봐야겠노라 마음 먹는 D였다.


인내의 시간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던 날들 중. 시부모님이 D의 집에 온 지도 1주가 조금 넘어가던 날. 결국 D가 참지 못 할 일이 발생했다.

쌍둥이들의 성격은 둘 다 온순한 편이라 아기 둘을 돌보는 것 치고 어려움이 심하지는 않았다. 몸을 스스로 일으켜세우거나 기어다니며 어느정도 저들의 몸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둘이서 꼼지락대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단 한 가지 어려운 점은, 한 명이 울면 다른 한 명이 마치 한 몸인 것 마냥 곧장 따라 우는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원래 하나이긴 했으니 그도 일리 있는 일이구나 싶었다. 어쨌거나. 그들이 동시에 울게 되면 어른이 한 명씩 아이를 맡아 달래거나, 기저귀를 확인하거나, 밥때가 되었을 땐 젖병을 물리거나 했었다. 그날도 그랬다. 쌍둥이는 사이렌소리마냥 동시에 빽빽 거렸고, D는 손에 잡히는 대로 가까이에 있는 도윤을 안아 올렸다. 도윤은 엄마 품을 느끼자 곧장 울음이 멎는 듯했는데, 아직 매트 바닥에서 구제되지 못한 도희의 울음은 지속되고 있었다. 울고 있는 도희의 머리맡 소파에는 어머님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다는 듯 앉아있었다. 어머님, 불러서야 D를 쳐다보더니 알겠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제 발치에서 울고있는 손녀 도희를 뛰어 건너 D에게 다가와 두 팔을 뻗는 것이었다. D는 어머님의 속내 투명한 의도를 눈치챘지만, 조금은 화가 나 모른 체하며 말했다. 울고서 누워있는 제 딸을 뛰어넘어 굳이 손자를 안겠다는 그 심산이 오늘따라 더더욱 불편했던 것이다.

"네? 어머님, 도희 울고 있잖아요. 도희 좀 봐주세요. 도윤이는 제가 볼게요."

어머님은 그런 D에게 뭐가 문제냐는 듯 대꾸했다.

"내가 도윤이 볼게. 줘봐봐라. 내는 이상하게 여자애들은 속을 잘 모르겠드라. 어디 불편한지 니가 함 봐봐라. 내가 도윤이 보고 있을게."

일주일을 속앓이 하며 끙끙 참았는데, 한 번 불만을 표출하니 심지에 불이 붙은 듯 화가 화르르 타오르는 D였다. 타오르는 화를 최대한 눌러보며 D가 말했다.

"도윤이 제가 안고 있잖아요. 쌍둥이고 아직 돌도 안 지났는데 여자애 남자애 속이 뭐가 다르겠어요. 그냥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제야 며느리의 분노 낌새를 알아차린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꾸 없이 도희를 안아 올렸다.

"아이쿠야, 무겁다. 도희가 더 먹나, 와이래 무겁노. 도윤이보다 무겁대이. 도희야, 도윤이거 뺏아묵나. 아고 허리야."

억지로 손녀를 안아 올린 시어머니는 몇 그램 차이가 나지도 않는 쌍둥이 손녀를 두고 무겁다느니 칭얼댄다느니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그 말들조차 듣기 싫었던 D는 울음 그친 도윤을 매트에 두고 다시 도희를 달라 시어머님에게 말 한 뒤 울고 있는 딸을 들어 달랬다.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듣게 한 미안한 마음에 더욱 꼬옥 안았다. 아직 작은 어깨 들썩이며 울먹이는 도희의 등을 토닥이곤 이 방 저 방 걷다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D는 어머님과의 육아를 종료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머님은 누워있던 도윤의 말짱한 기저귀를 벗겨놓고 그 안의 것을 감상하듯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기저귀는 갈아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기저귀를 20분 전에 갈아놓은 것도 시어머니였다. 놀란 마음과 징글맞다는 생각에 화가 난 D가 조금은 언성 높여 시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어머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자신을 죄인처럼 다그치는 듯한 D의 어조에 시어머니 역시 조금 놀라 큰 목소리로 대응했다.

"와? 내가 뭐 잘못했나? 도윤이 우는 게 기저귀 때문인 것 같아서 함 봤다, 와?"

뻔뻔하게 대답하는 시어머니.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기저귀 20분 전에 갈으셨잖아요. 어머님, 제가 말은 안 했지만 이런 적이 한두 번 아니시잖아요. 굳이 도윤이 기저귀만 직접 갈아주시겠다고 하시고, 씻기는 것도 도윤이만 씻겨주시고. 애들 돌봐주시는 거 힘든 거 아니까 굳이 말씀 안 드렸는데, 그러시는 거 많이 불편해요. 지금도... 하... 도윤이... "

차마 제 입 밖으로 이후의 말은 내뱉을 수 없던 D였다.



"으!"

이야기를 듣던 지혜와 C가 동시에 외쳤다. 충격적인 전개에 비명밖에 낼 소리가 없던 둘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지혜였다.

"야, 너무 징그럽다. 그거 성희롱 아니가. 무슨 애기한테."

D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재. 성희롱이지 뭐. 그 뒤로 남편도 미안하다고 하고, 어머님 아버님은 어머님 아버님대로 속상하시다면서 가시고. 그러고 나서 그냥 사람 구했더니 그게 훨씬 낫더라고. 엄마 수술 하고 나서는 다시 친정부모님 오시고, 애들 클 때까지 돌봐주셨지. 엄마 아빠한테만 미안하지 뭐. 어머님 아버님도 그 뒤로 일 있을 땐 종종 봐주시고는 했는데, 저 때 이후로 큰 사건은 없었어. 다행이라고 해야 되는 건지."

분위기를 바꾸고자 C가 D를 향해 쌍둥이 사진을 보여달라 요청했다. 아가들이 많이 컸겠다며, SNS를 통해 종종 사진을 보고는 했는데 더 보고싶댔다. C의 요청에 가방 속 핸드폰을 꺼내는 D는 제 아이들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리는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사진첩을 열었다. 벌써 7살이 되어 학교 입학을 앞둔 쌍둥이들은 이제 한 눈에도 성별 구분이 가능하게끔 훌쩍 컸지만 이목구비만은 여전히 똑 닮아 있었다. 지혜와 C는 D가 넘겨주는 사진 여러장을 보았다. 워터파크, 눈썰매장, 놀이공원, 박물관, 해외로 추정되는 낯선 곳.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쌍둥이들은 신기하게도 구도와 위치, 표정만은 사진마다 꽤 유사한 형상을 띠고 있었다. 카메라를 개구지게 쳐다보고 몸을 이리저리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아들 도윤. 카메라는 잘 쳐다보지 않고 몸을 배배 꼬거나 엄마 혹은 아빠 곁에 딱 달라붙어 있는 딸 도희. 둘의 차이를 먼저 눈치챈 C가 물었다.

"쌍둥이들이 얼굴은 똑같은데, 성격은 완전 다른갑제. 도윤이는 엄청 활발해 보이는데 도희는 되게 수줍네."

D가 얕은 한숨을 쉬자 C는 순간 괜한 걸 물었구나 싶었다.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차, D가 한탄하듯 말했다.

"사진만 봐도 보이제. 둘이 원래는 성격이 비슷하게 활발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저래 차이가 나드라. 똑같이 뭘 해도 도윤이는 잘한다 잘한다 카는데, 애들은 그런 걸 영향을 안 받겠나. 그라지 마소, 아-들 다 똑같이 좋아해주소, 남편이 시부모님한테 말해도 뭐 달라지는 게 없다. 클수록 애들이 눈치는 빨라져 가 도윤이는 점점 더 안하무인이고, 도희는 점점 더 의기소침이다. 세뱃돈도 도윤이한테 몇 만 원 더 얹어 주고, 맛있는 것도 도윤이 먼저 챙기고. 한숨뿐이 안 나온다 진짜. C야, 니가 말한 그 아들아들. 아들 있으니까 낫겠다 했재, 아들이 있어도 이래 고통이다."

자신의 처지만 생각하느라 채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니 그렇겠구나 고개 끄덕이는 C였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왜 그토록 남아선호사상은 뿌리 깊게 박혀 이래나 저래나 우리를 괴롭히는 걸까.

지혜는 문득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기억이 선연히 떠올랐다. 할머니 집에 도착해 반가운 마음으로 할머니를 향해 가면 앞선 본인보다 뒤에서 느적느적 걸어오던 남동생을 먼저 반기던 할머니. 남동생을 귀엣말로 비밀스레 부르고는 장롱 이불속에 고이 보관해 뒀던 쿠키며 사탕을 꺼내 그에게만 주던 할머니. 설탕가루 하나라도 떨어질까 붙어 있는 저는 본체만체, 결국 흐르는 침만 닦아야 했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니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친구의 딸이 더욱 안쓰러워지는 지혜였다.

각자의 유사한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걸까. 한동안 말이 없던 셋 중 침묵을 먼저 깨트린 건 C였다.

"바뀌었다고는 하는데 진짜 바뀐 게 없다, 그쟈. 어떻게 바뀌어야 되나 싶은데. 부모님들을 우째 바까놔야 싶다가도, 60년, 70년을 그래 살았는데 바꾸기 쉽겠나 싶고. 알고 보면 어머님들도 다 피해자 아니겠나. 우리 어머님은 이름이 말년데, 딸 그만 낳고 싶어서 끝 말(末)에 계집 여(女)자 써서 그렇다드라. 요즘 이름 바꾸고 싶다고 막 그라시대. 근데 우리 어머님 시대에 그런 이름 꽤 있으시잖아. 그 양반들도 피해자지. 그래서 우짤까, 우째야 될까 고민해 보면은. 그냥 내가 먼저 시누이가 안되야지, 그것부터 생각하게 되드라. 내 동생이 내년 봄에 결혼하거든. 그래서 엄마가 시어머니짓 할라 그라면 옆에서 그라지 마라, 하고. 내가 또 그랄라 하면 아 안 그래야지 하고. 그렇게 할라고. 내부터 그래볼라고. 그라면 좀 안 변하겠나."

다짐을 하는 듯한 C의 말에 지혜도 동의했다.

"맞네, 우리부터 안 그래봐야지. 우리가 딸들 잘 지켜주고, 아들들한테는 잘 말해주고. 그리고 내도 아들 다 키워놓으면 그냥 지가 차리는 살림 인정해 주고, 아들이 내 소유라고 생각 안 할라고. 딴 사람으로 알고 살아야지 지들도 알아서 간섭 안 받고 잘 살지 않겠나. 딸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우리도 웬만하면 부모님 손 안 빌려야지. 부모님들이 찾아오는 건 싫어하면서, 내 필요할 때 당연하게 찾는거를 안 해야지. 그래야 서로 각자의 집이라는 걸 인정 안하겠나. 아쉬운 소리도 서로 안 하고."

D도 고개 끄덕이며 호쾌하게 덧붙였다.

"그래, 니들 말이 다 맞다. 아들이건 딸이건 그냥 자식새끼인 건 매한가진데. 둘 중에 뭐라도 잘 낳아놨다가, 어째되든 남편이랑 둘이서 잘 키웠다가, 잘 보내야지. 딸이라고 또 좋아하는 사람 중에 딸은 나중에 효도해서 좋다, 이라대? 효도받을 생각으로 딸이 좋다는 이유는 딸이 너무 억울한 거 아이가. 제사받을라고 아들 좋아하고, 효도받을라고 딸 좋아하고. 뭐 받을라고 애들을 키울 생각부터 고쳐먹어야지. 우리도 그냥 우리가 알아서 잘 키우고, 잘 보내자. 할매되서 외로우면 다시 옛날처럼 우리끼리 놀지 뭐. 애들 키워놓고 우리 또 놀자."


시대가 변해 딸을 낳아야 환영받는 세상이라지만, 좀 더 내실히 살펴보면 아직 또렷이 남아있는 고통의 잔재들이 있다. 결국은 사람의 생각으로 기인한 문제이기에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 위해 나부터 해야 할 것을 찾아보는 친구들이었다.

육아는 결국 아이를 잘 키워 내 품에서 잘 떠나보내는 것이 최종목표라는 누군가의 말이 오늘따라 마음에 와 박히는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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