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이름 : C
- 직업 : 가사노동자
- 자녀(연령) : 여아2(10세, 8세)
- 주양육자 : 엄마(C)
- 기타 : 지혜의 중,고등학교 동창
2. 이름 : D
- 직업 : 개인사업자
- 자녀(연령) : 여아1(7세), 남아1(7세) / 이란성쌍둥이
- 주양육자 : 엄마(D)
- 기타 : 지혜의 중,고등학교 동창
취업과 함께 본가를 떠나온 지혜는 연고가 없는 곳에서 조금은 마음고생을 하며 지금의 거주지에 자리를 잡았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엔 매주 금요일 퇴근 후 심야 고속버스를 타고 네 시간 넘는 시간을 달려 고향집을 찾아가기도 했다. 자정이 훌쩍 넘어 모두 잠들어버린 늦은 시간에 도착했으나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조금도 피곤한 줄 몰랐다. 주말 간 익숙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다시 낯선 이들과 시작할 한 주를 위해 일요일 느지막한 오후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을 때엔 강제 징병을 당하는 듯한 기분과도 같다 생각했었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새로운 생활에 시간이 날 때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고향친구들에게 채팅으로, 메시지로, 전화로 전했다. 친구들은 그런 지혜에게 귀찮은 기색 없이 언제나 빠른 응답과 다정한 말들로 화답해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며, 시간은 약이고,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지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공간에 익숙해졌고, 새 친구들도 만들었으며, 새로운 이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늘렸다. 본가에 내려가는 일은 점차 줄어들었고, 고향 친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생일과 명절 때 보내는 축하와 안부 메시지 정도가 전부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는 그 빈도가 더 줄었다. 본가는 명절에만 내려갔으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만으로도 일정은 모자라 친구들을 만날 여력은 없었다. 생일과 명절 메시지도 더 이상 챙기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오랜 친구들과 멀어지던 중, 중학생 시절부터 한 몸인 듯 딱 달라붙어 다녔던 네 명의 친구 무리에서 마지막 결혼을 장식할 친구의 결혼식 초대로 오랜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생긴 지혜였다. 그는 생활반경과 주변환경이 자못 달라진 친구들과 긴 시간의 간극이 주는 어색함의 크기가 걱정되어 결혼식 참석을 여러 번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의 결혼식에 참석해 해맑게 부케까지 받아주었던 그 예전의 친구를 떠올리며, 제 집과 멀지 않은 곳에서 열리는 결혼식임을 감안해 여차하면 다른 일정이 있다고 빠져나올 각오를 하고 얼굴만이라도 살짝 비추러 가자 용기 내었던 것이다.
"지혜야, 오랜만이다. 잘 지냈나."
C였다. 친구 넷 중에서도 집이 가까워 유독 더 붙어 다녔던 C를 보자 지혜의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슬며시 눅었다.
"C야, 잘 지냈나? 일찍 왔네? 서울로 언제 올라왔는데?"
"어, 어제 D랑 하루 일찍 도착해서 여기 근처에서 자고 왔다. 기차 타고 왔지."
마치 어제까지도 서로 연락을 한 듯 자연스레 말을 붙이는 C가 내심 고마웠던 지혜는,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친구를 반기며 말했다.
"애들은? 남편한테 맡기고 온 거가?"
"어어, 애들 아빠한테 맡기고 왔다. 이제 다 커서 엄마 안 찾는다."
긴 타지생활에 고향 사투리는 친정 가족들과 있을 때만 써두던 지혜였지만, 오랜 친구를 만나니 금세 구수한 사투리가 입 밖으로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괜스레 새침하게 표준어를 쓰면 C가 행여 거리감을 느낄까 부러 더 활기차게 사투리를 쓴 것도 있으리라. C는 가장 최근에 봤던 5년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다만 지혜를 웃으며 반기는 눈가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주름이 잡혔고, 머리숱이 많아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해그리드'가 별명이었던 그의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가라앉을 정도로 머리숱이 눈에 띄게 줄어든 듯 보였다. 그녀는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지혜의 식사를 살갑게 챙겼다.
"축의금 냈나? 저기서 신부 동생이 걷고 있더라. 걔도 많이 컸데이. 요만했는데 이제 청년이 다 됐드라. 신부대기실에 있을게. 축의금 내고 식권 받아온나. D는 화장실 갔는데, 아마 곧 올 거다."
지혜는 수 십명의 사람이 복잡하게 오가는 예식장 앞에서 정신없이 축의금을 낸 후, 방명록에 이름 세 글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 나갔다. '왔다는 티는 내야지.' 어린 시절의 모습이 흔적만 겨우 남은 듯한 신부의 동생에게 굳이 알은체는 하지 않은 채 식권 하나를 건네받고, 조금은 과장스럽고 기운 넘치듯 하객들을 맞이하는 신랑을 곁눈질로 재빠르게 훑고서는 곧장 신부대기실을 찾았다. 대선출마하는 후보자처럼 씩씩하게 인사하던 신랑과는 대조적으로 친구는 신부대기실의 길주름한 공주 의자에서 조금은 불편한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손에는 부케를 꼭 쥔 채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앳된 얼굴을 고운 신부화장으로 가린 친구는 그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향해 수줍게 웃음 지어 보였다. 이내 지혜를 발견한 신부는 반갑게 인사해 주며 와주어 고맙다고, 눈은 조금 경직된 채 입꼬리만 살짝 올라간 미소로 그를 맞이하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D까지 합류해 드디어 넷이 된 친구들은 오랜만에 다시 모여 반갑다고 인사하며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려다, 갑자기 카메라를 들이미는 촬영기사의 등장으로 대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런저런 포즈를 요청하는 촬영기사 앞에서 쑥스러워하면서도 야무지게 사진을 찍으니 마치 중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평소라면 절대 웃지 않을 시답잖은 사진사의 농담에 꺄르륵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예식과 마무리 사진촬영이 끝난 후, 이미 쓰러질 듯 기진맥진해 보이는 신부에게는 나중에 보자 인사하며 지혜와 친구들은 아래층 식당으로 향했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니, 다른 일정이 있다는 핑계는 대지 않아도 될 성싶었다.
만날 때마다 그랬듯 '이때 기억나니, 그때 거기 갔던 일 기억나니' 하며 이미 예전에도 수십 번 반복했던 옛 추억들을 새로 듣는 것 마냥 이야기하다 이내 결혼생활과 아이들에 대한 주제로 대화하기 시작한 친구들이었다.
"야, 지혜야. 니는 좋겠다. 남편이 경상도 사람 아니라서. 니가 그때 그랬잖아, 무뚝뚝한 아빠한테 질려가 경상도 남자랑은 결혼 안 할 거라고."
동향사람과 결혼한 C는 지혜가 부럽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내가 그랬나? 맞다, 그랬는갑다.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경상도 사람이라도 다 다정하고 그렇다든데."
"어데서? 누가 그라대? 집에 와서 다섯 마디 말 하면 그날은 말 많은 날인데."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동창생과 결혼한 D도 불만이라는 듯 지혜의 말을 받아쳤고, C는 중학생 시절 얼굴이 그대로 남은 개구진 얼굴로 볼이 발그레진 채 웃으며 D의 말에 동조하고는 덧붙였다.
"내 말이. 시댁에 가면 아무도 말 안 해서 누가 들으면 내만 말하는 줄 안다니까? 오죽하면 우리 딸들이 할머니집은 너무 조용해서 싫다고 안 간다 안 하나. 그카면 또 어머님이 애들 보고 여자애들이 곰살맞도 몬한다고 머라카고. 어른들이 입 꾹 닫고 앉아있는데, 아-들은 뭐가 좋다고 할매할배 하면서 들러붙겠노. 손녀라서 그런가, 손자라면 좋아할란가."
친구들 중 결혼을 제일 이른 시기에 한 C는 아직 미혼이었던 친구 셋에게 항상 어른처럼 다른 세계의 일들 같은 이야기를 하고는 했었다. 특히 혼수로 첫째를 가지게 되며 결혼을 했을 적에,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시어머님이 본인을 구박한다는 C의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마치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의 말을 흥미진진하게 경청하곤 했던 것이다. 지혜가 여전히 입담 좋은 C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위로하듯 말했다.
"느그 어머님 아직도 그라시나. 아니 시대가 어떤 시댄데 아들아들 하노. 요즘은 딸 가지면 축하하는 세상인데. 내 봐라, 내는 둘째도 아들 낳을까 봐 무서워서 둘째 낳기 싫은데."
"말도 마라, 그놈의 아들아들. 내가 느그랑 못 보는 동안에는 또 어떤 상상 못 할 일이 있었는지..."
C가 막 대학을 졸업한 무렵, 제조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사무보조 업무를 하며 취업준비를 하던 때였다. 당시 회사의 영업직원이었던 지금 C의 남편 눈에 그녀가 들어왔다.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방글방글 웃으며 꾀부리지 않고 성실히 일하는 C를 보고는 한 눈에 반했던 것이다. 이후 그가 적극적으로 C에게 구애를 하였고, 임신과 결혼까지 가게 되었다.
"내가 그때 미쳤지. 아니지, 난 속았지."
결혼 당시를 떠올리며 C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 신분으로 일을 했었기에 출산휴가니 육아휴직이니는 내 이야기가 될 수 없었고, 퇴사는 정해진 수순이었다. 임산부였던 탓에 취업준비 또한 더는 진행시킬 수 없었고, C는 자연스럽게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이후 쉴 틈 없이 이어진 둘째 출산까지. 아직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못 해본 게 한이라며 억울해하던 C지만 그보다 C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시댁이었다.
시부모님과의 만남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결혼을 허락받기로 하고 점심 약속을 잡은 날. 사전에 마음의 준비라도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 "부모님은 어떤 분이야?" 물었더니, 남편이 조금은 망설이며 "좋은신 분들인데, 말투가 조금 차가울 수도 있어."라고 대답했다. 원했던 반응과 대답은 아니었다. "말투가 차가울 수 있다"라는 말에 걱정은 커졌지만, "좋으신 분들인데"라는 말을 억지로 상기시키며 긴장을 풀고자 하는 C였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백화점에 들러 난생처음 명품관이라는 곳도 가 보고, 친정엄마에게도 사드린 적 없던 실크 스카프를 구입하기도 했다. 있어 보이는 고급 상자에 직원이 뚝딱뚝딱 포장을 하고 능숙하게 리본을 매어놓으니 선물은 더욱 빛나 보였다. 직원이 건네주는 선물을 받으며 손에 쥐어진 명품 스카프가, 번듯하게 포장되어 있는 그 물건이 마치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기라도 된 듯 든든했다.
신경 써서 예약해 둔 한식당에 먼저 도착한 C와 그의 남편은 20분가량 늦게 도착한 시부모님들의 등장에 잔뜩 긴장한 채 자리에서 곧장 일어나 인사했다.
"어머님, 아버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처음 써보는 호칭이 낯설었지만 최대한 살갑게 인사하려 노력하는 C였다. 그러고는 부적처럼 꼭 쥐고 있던 선물을 시어머니가 될 사람에게 수줍게 건넸다. 하지만 선물을 받은 그녀는 C가 건네는 선물을 마뜩찮은 표정으로 무심하게 받고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도 없이, 옆 자리에 툭 내려놓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대의 행동에 C는 얼어붙었고, 살가운 며느리가 되겠다는 마음에 준비했던 많은 대사들은 허공에 흩어졌다. 내팽개쳐진 선물처럼 C의 마음도 무참히 짓밟힌 듯 했다. 눈치를 살피던 남편은 그의 부모를 상대로 일상적인 대화를 시작하며 분위기를 풀고자 했다. 차는 밀리지 않았나, 어떻게 지내셨나, 어떤 걸 드시겠나. 다정히 대화가 오가는 듯 했지만 C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는 그의 부모들은 마치 그녀가 자리에 없는 듯 이야기를 나누었고, 예상치 못한 소외감에 C는 점점 더 주눅이 들었다.
그들이 C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었던 건 코스요리에서 애피타이저로 나온 전복죽을 다 먹은 뒤, 직원이 죽 그릇을 샐러드 접시로 교체하며 방을 나가던 때였다. 샐러드가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코로 들어가는 건 아닌지 깨작거리던 C에게 시어머니가 될 사람은 대뜸 뱃속 아이의 잉태에 대한 책임을 C에게 물었다.
"조심 좀 하지 그랬노, 여자애가."
갑작스런 대화의 전개에 C는 어리둥절했다. 식사 내내 없는 존재처럼 대하던 저에게 갑자기 날아온 비수가 자신에게 날아온 게 맞는지, 어디를 향한 건지를 파악하는 데도 몇 초간의 시간이 걸렸다. 식사 자리에 '여자애'로 추정할만한 인물은 본인 밖에 없었기에, 그 공격의 방향을 파악하자 C는 식사 내내 참고만 있던 울화가 조금씩 치밀기 시작했다. '내가 조심해서 될 일인가.' 화나고 분했다. 억울한 마음에 옆자리에 앉은 남편을 슬쩍 쳐다봤다. 남편은 누군가에게 혼이라도 나는 듯 고개도 들지 않고, 평소 잘 먹지도 않던 샐러드를 입에 꾸역꾸역 쑤셔 넣고 있었다. 그 이후의 식사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시작된 셋의 일상 대화와 가끔씩 C에게 꽂히는 무례한 질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짧은 C의 대답, 남편의 무거운 침묵.
불편했던 식사자리가 끝나고 부모님과 헤어지고 나서야 C에게 사과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그의 남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싫은 소리 한 적이 없었다, 자라면서 이렇다 할 부모님 속 썩인 일을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작스런 결혼 소식에 부모님이 많이 놀라신 것 같다,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등이 변명의 주된 골자였다. '오해'라는 건 해석을 잘 못 한다는 뜻인데, 그들의 행동은 해석이 불필요한 너무나도 자명한 무례함이었다. 호된 첫 만남과 상처에도 C는 결혼을 무를 용기를 내지 못했다. 뱃속의 아이와 둘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부모에 대해 변호 아닌 변호를 하며 고개 숙여 사과하는 남편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 점만 빼면 괜찮은 사람이니까.'라는 다소 위험한 생각으로 부모님과의 식사는 애써 기억에서 지운 채 결혼을 진행시켰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가장 걱정했던 상견례도 큰 사건 없이 잘 지나갔다. C는 생각보다 무탈하게 진행되는 결혼준비에도 무언가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 대화를 나눌 때마다 말끝에 '여자애가'라는 말을 버릇처럼 쓰던 시어머니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핑크색 옷으로 준비하시면 될 것 같네요."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에둘러 아이의 성별을 얘기해 주던 의사의 말을 듣고, C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처음 임신을 했을 적엔 성별은 상관없지만 그래도 딸이면 조금 더 좋겠다고 생각한 C였다. 하지만 시부모님과의 만남 이후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고 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거운 소식을 전하듯 상대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태아의 성별을 어렵사리 고백하던 C의 남편에게 시어머니는 말 대신 깊은 한숨으로 대답했다. 그러곤 그 옆에 자리한 C가 들으라는 냥 "뭐 이쁜 짓을 하는 게 있어야 이뻐해 주지."라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안방으로 휙 들어가더니 있는 힘 다해 문을 쾅 닫는 것이었다. 우레와 같이 집안을 울리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뱃속의 생명이 놀란 듯 C의 배가 움찔거렸고, 그는 본능적으로 두 팔로 배를 힘껏 감싸 안았다. 여전히 무릎 꿇은 채 고개 숙이며 앉아있던 남편은 그 예전 샐러드를 꾸역꾸역 삼키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진 바가 없었다. 그의 방어는 이제 더이상 기대하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는 내가 지키겠노라 다짐하는 C였다.
첫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온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C를 향해 둘째 계획을 묻는 시부모님이었다.
"아직 채린이 하나로도 벅차서요."
잘못을 한 게 없음에도 마치 잘못을 한 사람마냥 대꾸하는 C에게, 이번에는 시아버지가 눈치 없이 속을 긁었다.
"나도 장손이고, 채린이 애비도 장손인데, 우리 제사 지내 줄 사람 한 명은 니가 얼른 낳아줘야 안 하겠나."
귀를 의심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지? 조선시대? 광복 이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 들을 말인가.' 애당초 C 자신도 제사를 지낼 마음이 없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아니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C의 아들이 제사 지내는 날을 기다리는 시부모님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고작 그런 현실성 없는 이유 때문에 각종 모진 말로 자신을 괴롭히는 건지. 그도 모자라 손녀인 채린을 보아도 본체만체하며 아직 여리디 여린 어린아이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기는 건지. 이해가 되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속이 상한 마음을 터놓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건, 남편이 본인 부모님의 일련의 행동들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모든 사건에서 전적으로 C의 편을 들어주며 제 부모님에게 조금씩 목소리를 높여 가는 것이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부모님과 눈을 마주치고, 본인들의 입장과 설명을 잘 전달할 정도로 변해준 남편이었다. 정말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런 남편의 변화마저 '여자애가' 집안에 잘 못 들어와 제 아이를 망쳤다는 둥의 이야기로 잘못의 화살을 C에게 돌렸다.
계속되는 시부모님의 '제사'와 '아들'타령에 C는 계획해 두었던 재취업을 포기하고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발 남자아이 이기를 바라는 C였지만, 의사는 종전과 같이 그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그리고 아주 다정하게 태아의 성별을 넌지시 일러주었다.
"채린이 아기 때 옷 아직 안 버리셨죠? 물려 입히면 되겠어요. 정말 축하드려요. 금메달이시네요."
그 누구는 금메달이라지만 C에게는 상상했던 일들 중 가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오는 길. 아직 임신한 태가 전혀 나지 않는 배 위에 손을 얹은 채 창밖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C를 보고, 옆에서 운전을 하던 남편은 미안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에 그 어떤 위로의 말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자격이 되나 싶었다. 그는 너무나도 죄스러운 마음에 신호대기를 받은 틈을 타 C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는 내가 잘 말할게. 이런 상황에 놓이게 해서 미안하대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C였다. 뒷좌석에서 얌전히 카시트에 앉아있던 딸 채린이 또래보다 야무진 말투로 엄마의 뒷모습을 의아해하며 물었다.
"엄마, 울어요? 엄마 울지 마요. 나는 동생 좋아."
아직 세 살이 채 되지 않은 딸이 나이답지 않은 눈치 빠른 모습으로 엄마를 위로하자, 이미 흘렸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흐르는 C였다.
"야, 그게 말이 되나? 요즘 세상에 누가 아들아들 한다고."
이야기를 듣던 지혜가 답답하다는 듯, 본인의 일인 양 화를 내었다.
"진짜 말 안 되제? 근데 이게 거짓 하나 없는 실화라는 거. 시댁에 가면 둘째 채령이는 아예 유령취급 한다니까? 사람 없는 취급하는 게 특긴갑지. 그래도 첫째 채린이는 첫째라서 그런가 인사는 받아줬었는데, 채령이는 인사부터 안 받아줘. 그거 볼 때마다 내 가슴이 얼마나 찢어지는지."
지혜는 제 아들 주형을 가졌을 적 시부모님의 반응을 떠올렸다. 딱히 아들이니 딸이니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그래도 우리 시부모님은 그런 부분에서는 깨어있는 마인드를 가지셨구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주형을 낳고 그가 조금씩 클 때마다 장손이니, 무엇을 물려주니, 제사가 어쩌니 하는 말들을 흘렸고 이는 지혜에게 이유 모를 작은 답답함을 선사했다. 그러다 주형이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가 되자, 이제 너도 절을 해야 한다며 아직 인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본인 옆에 세워두고는 울먹이는 아이를 억지로 끌어 제를 지내도록 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서 그 답답함의 원천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지혜는 그때를 떠올리니 다시 말 못 할 화가 치미는 것 같아 친구들을 향해 토로했다.
"아니, 제사가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까지 집착하는 거지? 죽고 나서 대접받고 싶어서 그러는 건가?"
C 역시 공감한다는 듯 끄덕이더니, 아이들을 돌보며 자제하느라 오랜만에 마신다는 맥주를 시원하게 한 모금 들이켜고는 대답했다.
"그러니까. 제사, 뭐, 그래. 그렇게 중요한 거면 자기들끼리 하면 상관도 안 해. 아들 아들 했으니까 뭐 지들끼리 하면 되잖아. 근데 제사 준비는 또 왜 내를 시키는 건데? 저번에는 또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나."
C가 둘째 채령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조리를 위해 첫째 채린과 친정으로 건너가 제 엄마의 보살핌을 받던 때였다. C는 소파에 앉아 채령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고, 채린은 낮잠 중이었으며, 엄마는 채린이 깰까 조용히 물걸레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고요한 평안 속에서 얌전히 제 젖을 빨고 있는 채령을 흐뭇하게 내려보던 중, 엄마가 방에서 충전 중이던 C의 핸드폰을 들고 나와서는 채린이 깰까 속삭이며 말했다.
"딸, 전화 왔는데? 시어머니라고 뜨네? 사돈?"
평일 오전에는 전화를 한 적 없던 시어머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있진 않았을까 싶어 젖을 먹던 채령을 엄마에게 조심스레 건넨 뒤, 기분 나쁘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애미야. 내다. 니 지금 어딘데?"
평소에도 날카로운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유독 더 날카롭게 들렸다.
"네? 아, 어머님. 저 친정이요. 아범이 말씀드린 걸로 아는데."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몰라 최대한 방어적으로 대답한 C였다. 친정에 온 것이 죄는 아닌데, 마치 그 소식을 전하는 것이 잘못인 것만 같았다.
"니 어제 무슨 날이었는 줄 아나? 요즘 그렇게 정신이 없나?"
어제? 어제가 무슨 날이지? 아이를 돌보느라 중요한 일정을 놓친 건 아닌지 다급하게 전화를 스피커폰 모드로 바꾸고 달력 어플로 들어가 일정을 뒤졌다. 그러나 어제 일자로 등록된 일정은 없었다.
"어제요?? 어제... 는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시어머니는 C의 대답을 예상했다는 듯 매몰차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제 느이 채린이 아빠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아무리 애 낳은 지 얼마 안 됐어도 우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직계 조부 제사를 까묵노? 내가 니 채령이 돌 때까지는 제사 안 와도 된다 했드만, 날짜까지 안 챙기나? 전화는 한 통 해야 될 거 아니가, 전화는. 어머님 힘드시죠, 이번에 못 가서 죄송해요, 이 한마디 전화하기가 힘들드나?"
스피커폰을 채 꺼두지 않아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말들은 조용하던 친정집의 거실을 울렸다. 채령을 다정히 안고 둥게질을 하던 친정엄마 역시 동작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C와 휴대전화를 응시했다. 원래도 제사 일정은 C가 챙기지 않았다. 남편이 챙기면서 C가 가야 할 제사와 가지 않아도 될 제사를 그때그때 일러주고는 했었다. 사실, 챙기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깝긴 하겠다. 저녁부터 온종일 음식만 하다 몸에 기름냄새가 밴 채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는 그 의미없는 일에 영 마음이 붙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억울했다. 남편에게 다 이야기를 하고 왔고, 다른 일이 아닌 제 아이들을 돌보느라 참석하지 못한, 허락받은 불참이었다. 당황스럽기도하고 억울한 마음에 대답이 없던 C에 더 화가 났는지 시어머니는 목소리를 보다 크게 높였다.
"어제 내랑 느 동서랑 둘이서만 음식 하니라 얼마나 욕봤는지 아나? 니, 이거 전화 끊고 니 동서한테도 전화해서 미안하다, 내가 신경 몬 썼다 사과해라. 아무리 정신이 없다고 니 그라는거 아이다. 누구는 아 안 낳아봤는 줄 아나. 그것도 줄줄이 딸래미들만 낳아놓고 뭐 그래 상전이라고 고개 빳빳하이 굴어쌌노."
'딸래미'라는 말에 정신이 퍼뜩 든 C는 그제야 스피커폰 모드를 해제한 뒤, 대충 알겠다고 대답하고선 다급히 통화를 종료했다. 놀란 눈으로 포근한 할머니의 품에서 잠이 들어버린 채령을 안은 채 눈 앞에 우뚝 서 있는 친정엄마가 저보다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랬는데."
겨우 입을 뗀 엄마가 C를 향해 착잡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닌 게 아니라 C는 어릴 때부터 까탈스런 시어머니를 모시며 고생을 한 엄마를 항상 안타까워 했는데, 마치 유전인 것 마냥 똑같은 상황에 처한 자신의 모습을 안다면 엄마가 어떤 마음일지 뻔해 본인의 상황을 철저히 숨겨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방법으로 그 모습이 드러나버렸고 C는 더 이상 숨길수도, 숨길 힘도 없어 엄마에게 모든 일들을 털어놓았다. C의 얘기를 말없이 조용히 듣던 엄마는 C가 예상치 못한 말들로 그를 위로했다. 같이 화내고 시댁 욕을 해줄 줄 알았다. 이상한 아줌마라며 시어머니 흉을 봐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원래 다 그렇다. 너무 뻣뻣하게 굴지 말고 그냥 짜증 나도 네네, 하고 말아라."
억울한 C는 엄마에게 다시 그들의 만행 아닌 만행을 추가로 덧붙여 얘기했지만, 돌아온 답변이 그를 더욱 놀라게 했다.
"그래, 시댁이 그렇다. 둘째는 우야든동 아들을 낳았어야 했는데. 그래야 니가 고생을 덜 했을 텐데."
아들을 낳지 못한 C의 잘못이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혜가 물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아니, 왜 그렇게 말씀하셨지? 딸이 그 고생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이야기 내내 잠자코 들으며 고개만 끄덕이던 D가 C를 대신하듯 대답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은 해결되는 게 없다는 걸 아셔서 그러는 거 아닐까. 그 관념이란 게 진짜 무섭더라니까."
C 역시 그런 D의 대답에 동조했다.
"그런 것 같드라. 우리 엄마도 언니랑 내 낳고 할머니가 엄청 구박했는데, 남동생 낳고 나서는 좀 부드러워졌었다고 말하드라고. 그라면 뭐하는데. 할매 늙어가 요양원 들어갔을 때 면회는 매 내랑 언니만 가고 그놈의 손자는 코빼기도 안 비쳤는데. 살아 있을 때 잘해야지, 죽을 때 제사 지내주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
C는 맥주병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맥주를 제 잔에 탈탈 털어넣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면역이 생겨서 그런가, 상처에 딱지가 앉아서 그런가, 그냥 시어머니가 상처 주는 말 하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엄마 말처럼 네네, 하고 그냥 있었더니 그쪽도 포기한 것 같드라. 동서가 아들 낳아서 관심이 거기로 간 것도 있고. 동서 아들 낳았을 때도 내보고 안 부럽냐고 묻대? 무슨. 난 내 이쁜 딸들이면 되는데. 그래도 '장손'이 뭔지, 아직도 포기 안 하시고 가끔 셋째 뭐라뭐라 하는데, 아 한 명 키우는데 돈이며 품이 얼마나 드는데. 내가 뭐 좋다고 셋째까지. 그리고 막말로 셋째도 딸이면, 그땐 내 소박맞힐건가. 무서워가 낳겠나. 시부모님 사랑이고 뭐고 됐다 캐라. 하나도 안 필요하다."
가슴에 맺힌 한을 쏟아내듯 이야기를 퍼붓던 C는 컵에 남은 맥주를 들이켜고는 D를 향해 말했다.
"그래도 니는 내보다 좀 낫겠다. 아들 하나 있다이가. 이런 스트레스는 없었재."
약간은 씁쓸한 듯, 그리고 부럽다는 듯 말하는 C에게 D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과연 그럴까? 이제 내 얘기할 차례 된 거가."
D는 마치 재담꾼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듯 꽤 기대되는 말투로 제 이야기의 서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