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1. A
- 직업 : 정규직 근로자(IT회사 디자인팀), 현재 육아휴직 중.
- 자녀(연령) : 남아1(생후 70일)
- 주양육자 : 엄마(A)
- 기타 : 지혜의 이전 직장동료
'아기가 자고 있으니, 벨을 누르는 대신 노크 해 주세요.'
A의 집에는 몇 년전 그가 갓 결혼을 했을 때, 신혼집 집들이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디자인 업무를 하고 미적 감각이 탁월하며 깔끔한 성격의 A가 잘 꾸며놓은 집에 기분좋게 감탄한 기억이 있다. 전체적으로 깨끗하고 말간 느낌의 집에 감각적으로 배치한 독특한 가구들은 마치 인테리어 전문잡지에 나오는 집 같았다. 지혜와는 같은 회사 다른 팀으로 회사 내에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지만, 우연히 같이 하게 된 점심식사 자리에서 서로 호감을 갖게 되었고, 이후 꽤 오랜 기간 마음이 맞는 친구로 지내는 중이었다. 오히려 다른 팀으로 일하니 서로의 고충을 기탄없이 나누기가 더 쉬웠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깔끔하고 당당했던 A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집 앞에 당도하니, 눈에 익은 그녀의 정갈한 필체로 써놓은 당부의 메모지가 현관문 앞에 붙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거 한창 붙일 때지.'
잠에 예민한 갓난아이를 키우던 시절을 생각하며 지혜는 미소 짓는다. 그래도 자신의 지금 육아가 그때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조심히 노크를 해 본다.
'똑똑'
잠시 뒤, 녹두장군 전봉준의 농민봉기 머리를 한 A가 눈 밑이 예전보다 조금 어두워진 안색으로 지혜의 눈앞에 나타났다. 화장기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에는 세상 온갖 피곤이 내려앉은 것 같았는데, 미소조차 띨 힘이 없는 것처럼 아주 힘겹게, 겨우겨우 웃음을 짜낸듯한 얼굴로 지혜를 반겼다. 윗입술은 부르튼 상태로 입술껍질이 콩알 크기만큼 까져있고, 본래 브이넥이었는지 의심스러운 목 늘어난 티셔츠에, 양손에는 진분홍색 손목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 항상 어깨까지 가지런히 내려앉은 깔끔한 생머리에 말끔한 옷차림의 A였는데. 지각하더라도 머리는 꼭 감고 오는 A였는데. 머리에 고무줄자욱이 생기는 게 싫다며 머리 묶은 모습도 보여준 적 없는 A였는데. 지혜는 내심 놀랐지만, 행여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티 내지 않으려 놀란 기색을 꾹 참았다. 그런 지혜의 마음이 들리는지, A는 속삭이듯 얘기했다.
"그냥 맘 놓고 웃어. 내 얼굴 나도 거울로 보고 나온 참이니까."
그제야 지혜는 편하게 웃는다. 니 꼴 좀 보라며, 내가 아는 A가 맞냐며. 그러자 A도 같이 웃음이 터졌다가, 금세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거둔다. 마치 중요한 국가기밀을 말하듯, 부르튼 입술 위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댄 채 조용히 속삭인다.
"쉿. 소리 내지 말고 웃어. 방금 잠들었어."
지혜는 도둑고양이처럼 까치발을 들고 A의 집에 입장했다. 아무리 조용히 발을 내딛으려 해도, 현관문 앞부터 깔아놓은 유아매트 위에서는 눈길을 밟는 듯한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그 모습이 마냥 웃긴 지혜와 A는 마주 보며 소리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손부터 씻고 나와)
A가 손 씻는 시늉을 하며 입모양으로 지혜에게 일렀다. 곧장 알아들은 지혜는 전에 가 본 적이 있는 화장실을 알아서 찾아 들어갔다. 신혼이었던 그 예전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이솝 핸드워시와 핸드로션이 깔끔하게 각 세우고 있던 자리에는 유기농 비누와 유아치약이 차지하고 있었고, 색감 없이 모노톤의 수건만 말끔히 걸려있던 수건걸이에는 뽀로로와 그 친구들이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해맑게 웃는 목욕타월이 걸려있었다. 욕조는 자리만 차지한다고 과감하게 없애고 샤워부스만 설치했다던 그 곳에는 조그마한 아기욕조가 제 크기보다 더 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고 오리모양 고무인형, 아이의 목에만 두르는 튜브 등이 뒤죽박죽 담겨져 있었다. 그 뒤에는 용도미상의 스탠딩 물품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혜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깔끔하던 A도 어쩔수 없구나 생각하며 지혜는 손을 씻고 나와 A에게 물었다.
"야, 근데 화장실에 있는 저 이상한 물건은 뭐야? 재활훈련할 때 쓰는 걸음 보조기 같은 거."
"아~, 그거 애들 응가했을 때 서서 씻겨주는 거야. 요즘 다 쓴대. 아직 울 애기는 어려서 못 쓰긴 하는데, 100일 정도 지나고 몸 가눌 때 쓰면 편하다고 해서. 중고거래로 미리 사놨지. 얼마 안 쓰는 거래서 새 거 사긴 또 아깝더라고."
"와, 나 때는 저런 거 없었는데?"
"육아는 다 템빨이야."
역시 A와는 오랜만에 만나도 마음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지혜였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다시 깔끔하고 색이 많이 없던 예전 집을 떠올리며, 이젠 그 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으리만치 알록달록 아기용품으로 가득 찬 거실을 둘러보고 있으니 이내 A가 쟁반에 손님용 다과를 내어왔다.
"먹을 게 없어. 바로 오라고 하긴 했는데, 손님 초대 해 놓고 아차 싶더라니까. 내가 이렇게 염치가 없어진다."
쟁반에는 커드터드, 몽쉘, 후렌치파이등 한 손에 먹을 수 있는 파이류 과자들과 보리차 비슷한 색을 띤 정체불명의 차가 담겨 있었다. 신혼 집들이 때에는 유명 베이커리의 마카롱과 에끌레어, TWG 티백이 담긴 크림캐러멜 차를 내왔던 A였다. 지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A는 괜히 민망해하는 듯했다.
"애 보다 보면 내 밥때를 놓쳐서 이것저것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을 사놓다 보니... 아니, 애 낳으면 누가 저절로 살 빠진댔어? 애 몸무게 딱 3킬로만 빠지고 나머지는 아주 빠지질 않아. 그 차는 작두콩차야. 애 낳고 나서 비염이 심해져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작두콩차가 몸에 좋다고 하길래. 어제 우려 논거라 맛 괜찮을 거야."
괜히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는 A를 유심히 보는 지혜였다. 그러다 A 역시 지혜의 눈과 마주쳤고, 이내 둘의 눈시울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동시에 붉게 물들었다. A는 이내 왈칵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지혜는 자신의 눈에 고였던 눈물을 먼저 닦고서 A를 토닥였다.
"힘들지? 알아, 지금이 제일 힘들 거야."
그러자 A는 자신의 손목에 감겨있던 손목보호대로 눈물을 닦더니 억울한 듯 말했다.
"야, 왜 미리 얘기 안 해줬어. 이렇게까지 힘들다고. 아무도 얘기 안 해줬단 말이야. 나 이 정도로 힘들 줄 알았으면 애 안 낳았다고."
A의 육아지옥은 산후조리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쉴만하면 전화가 왔다. 수유전화였다. 그 누구는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했었다. 때마다 챙겨주는 밥 먹고, 편하게 누워서 쉬며 몸조리를 하는 줄 알았다. 마사지받을 시간에 마사지받고, 동기들과 이런저런 육아 정보를 교환하며 편안한 시간을 즐기는 곳인 줄 알았다. 그랬으니 그 큰돈을 턱 하니 냈겠지.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따르르르릉
"아인이 엄마, 아인이 지금 깼는데 수유되나요?"
갓난아기는 시도 때도 없이 깼고, 깨는 시간도 대중없었다. "수유되나요?"라고 묻는 청유문이었지만, "수유 안 하면 모성애도 없는 엄마랍니다"라는 협박문으로 들렸다. 안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 젖을 물리는 것도 꽤나 힘들었다. 잘 물지도 않거니와 자세도 잘 잡히지 않아 목과 어깨, 등이 결리기 일쑤였다. 심지어 젖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오지 않는 젖을 잘 나오게 해 보리라 마사지를 받으러 간 곳에는 모르는 여자들 네댓 명이 양쪽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 천장을 쳐다본 채 당당히 누워있었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본 A의 충격은 상당했다. 이후 생판 모르는 여성이 제 가슴을 조몰락거리는 그 느낌 또한 썩 유쾌하진 않았는데, 젖이 드디어 돈다고 기뻐하며 제 가슴에서 흘러나온 모유를 즐겁게 닦는 마사지사를 보니 이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 모든 것이 조금은 불편하고, 낯설었으며, 충격이었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물면 모성애가 말도 못 하게 뿜어져 나온다고 하던데, 그도 아니었다. 그냥 이 작은 생명체가 내 가슴을 아프게 하는구나, 싶을 뿐이었다. 난 모성애가 없나 봐, 자책하기도 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티브이 광고나 잡지에서는 아기가 엄마 젖을 평화롭게 먹고 있으면, 엄마는 다정하게 아기를 쳐다보고 창밖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그들을 비추는 아름다운 장면들 뿐이었는데. 넌 왜 젖을 잘 안 무녜 마녜, 여기 젖이 있잖아 다투는 게 일상이었다. 젖을 다 먹이고 나서는 트림전쟁이었다. 젖만 먹이면 되는 줄 알았더니, 갓난아기는 소화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꼭 트림을 시켜줘야 한단다. 한 번에 꺽 하면 그리 시원할 수가 없을 텐데. 등을 두드렸다, 위로 쓰다듬었다, 아래로 쓰다듬었다 이리저리 해보아도 트림이 안 나올 땐 속이 터졌다. 젖 물리는 시간, 먹이는 시간, 트림하는 시간까지 족히 1시간은 걸렸다. 한 번 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이 짓을 하루에 몇 번이고 하는 것이다.
또한 젖이 돌기 시작하면 매시간마다 가슴에서 젖을 빼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은 돌덩이처럼 굳어 세상 이만저만한 고통이 아니었다. 잠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아이와 타이밍이 맞다면 아이가 배가 고플 때 젖을 물리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아이의 배고픔과 일어나는 시간은 대중이 없다. 가슴의 젖은 차오르는데 아이는 날 찾지 않는다면, 유축기를 써서 젖을 빼주어야 했다. A는 유축기를 처음 썼을 때의 충격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젖소의 젖을 짜기 위한 도구 그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젖소 유축기 똑 닮은 그 모양의 기계를 내 양쪽 가슴에 대고 있노라면, 내가 마치 사람인지 젖소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는 위대한가 보다. 그 고통과 굴욕을 감내하고 나서 젖이 많이 나오면 은근 뿌듯하기는 했다. 동기 엄마들과 누구의 젖이 더 많이 나왔나 얘기도 나누고, 너무 젖이 많아 냉동까지 해놓는다는 엄마를 보면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A의 몸은 온전히 그의 것이 아닌, 아이의 식량과 연관된 그 어떤 것이 되었다.
그렇게 산후조리원에서 수유의 지옥을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A는 친정엄마가 그녀의 집 근처에 살아 한 달가량은 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 많은 산후조리원보다 친정엄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애를 키우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산후조리원을 천국이라 부르는 이유를 조리원 퇴원 후 알게 된 A였다.
진짜 지옥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밤낮없이 수시로 잠에서 깨어났고 세 가지 이유로 울어댔다. 밥, 잠, 기저귀. 처음 아이를 돌보는 A는 그 셋 중에 무엇이 아이가 원하는 건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밤에는 남편과 2인 1조가 되어 아이를 돌보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 앞에서 둘은 무너져갔다. 하루종일 아이를 돌보고 지친 A는 A대로, 회사에서 퇴근하고 온 뒤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남편은 남편대로 피로누적과 스트레스가 날로 쌓여만 갔다. 친정엄마와의 육아도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엄마, 지금 아인이 수건이랑 속싸개 일반 세제로 어른 빨래랑 같이 돌렸어?"
"어, 돌리는 김에 같이 돌리는 게 나아서 다 넣었어, 왜?"
"내가 아인이 거는 따로 아기용 세제로 돌리라고 했잖아!"
"아우 유난은. 너 어렸을 때도 다 그렇게 컸어. 뭘 그렇게 유난이야."
"그때랑 지금이랑 같아? 내 애라고. 내가 해달란대로 해주면 되잖아. 그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
작은 일들로도 의견이 부딪히고 고성이 오갔다. A는 A대로 자신의 육아관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럽고, 친정엄마는 그 대로 본인의 노고를 무시하는 것 같은 딸의 언사가 섭섭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일로 부딪치던 둘은 결국 끝장을 보고야 말았다. 낮잠을 자야 할 시간에 자지 않고 칭얼대던 아기를 친정엄마가 안아 올려 달래던 때였다.
"아인이 안아주지 마, 내가 실컷 누워서 재웠는데 엄마가 안아주면 손 타잖아."
"애가 울잖아. 울면 그냥 안아주면 되지 뭘."
"그러면 엄마가 가고 나서 내가 힘들다니까? 엄마는 낮에만 잠깐 있다가 가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계속 봐야 된단 말이야."
"낮에만 잠깐 있다가? 너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 내가 김서방 올 때까지 계속 너랑 아인이랑 있잖아. 네가 같이 있어 달라고 해서 처음 한 달 보겠다고 한 거 좀 더 있어 줬더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엄마가 안아주고 나서부터 아인이 그냥 누워서 안 잔단 말이야. 나 여기 팔목 다 나간 거 알면서 왜 그래."
저만 생각하는 듯한 A의 뾰족한 말에 엄마는 참다 못 한 울화가 터져버렸다.
"너야 말로 엄마한테 너무 한 거 아니니. 아무리 제 자식이 중요하다기로서니. 엄마도 이 나이에 아기 다시 보느라 팔이며 어깨며 안 쑤신 데가 없어. 네 아빠가 이제 그만 가라고 해도 제 생각해서 진통제라도 먹고 왔더니. 내가 너한테 그런 말 들어야겠어? 이번만이 아냐. 너 내가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는 줄 알아? 애 키우는 거 힘들고 안쓰러워서 여태껏 말은 안 했다만, 아인이 보랴, 니 눈치 보랴, 김서방 퇴근하면 김서방 눈치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왜 그래 정말, 엄마까지. 누가 눈치 보래? 다른 엄마들은 그냥 해주는 거 왜 이렇게 생색을 내."
마음과 달리 나가는 A의 무심한 말에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뭐? 생색? 내가 무슨 생색을 냈니? 넌 고마운 마음이라도 가져본 적 있니? 그게 당연한 거니? 니 자식 네가 봐 이제. 아빠 말 들을 걸 그랬다, 도와줘봐야 좋은 말 못 듣는다더니. 사람을 구하든 혼자서 하든 알아서 해. 나도 더 이상은 못 보겠다. 사람을 써도 너 이렇게 말할 거니? 어쩜 엄마한테 말하는 게..."
친정엄마와 꿈꿨던 행복 육아는 그렇게 끝이 나 버리고, 혼자가 된 A에게 뒤늦게 우울증이라는 그림자가 찾아왔다.
남편을 출근시킨 뒤 아이를 매트 바닥에 눕히고 노래가 나오는 모빌을 켠다. 아침을 급하게 먹고, 집을 대충 정리하고 시간을 보니 아이 젖을 먹일 시간이다. 모빌에서 나오는 반복되는 노래가 이제는 이명처럼 들릴 지경이다. 듣기 싫으면 그냥 끄면 그만일 테지만, A는 그래도 청각자극이니 뭐니 들은 건 있어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 작은 고통은 그냥 감내하면 되겠거니 생각한다.
"오구, 우리 아인이 아침 먹을 시간이네. 엄마 기다려줘서 고마워."
알아듣지도 못할 아이에게 입모양을 한껏 보여주며 즐거운 척 말한다. 첫 탄생 때보다는 꽤 무거워진 아이를 들고 이제 조금은 익숙한 자세로 젖을 물린다. 여전히 모성애는 생겨나지 않는다. 막 봄이 된 바깥 풍경을 창문 너머로 쳐다본다. 그러다 A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자신의 눈물에 흠칫 놀라는 A다. A는 모든 일에 긍정적인 편이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의 A를 보며 사람들은 A에게도 과연 힘든 일이 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A 역시 그런 자신의 성격을 본인의 최대 장점으로 여겼었다. 그렇기에 제 아이를 돌보며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의 정체가 무엇인지 처음엔 알 도리가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울증이라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어. 그 단어가 나에게 적용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어."
지혜 앞에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A가 말했다.
"산후우울증이란 건 누구나 겪는 거래. 다만 그 정도가 얼마냐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지. 당연한 거 아니겠어? 잠도 제대로 못 자지, 살아왔던 인생이 완전히 바뀌는데. 부모가 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잖아."
지혜 역시 자신도 모르게 계속 흐르는 본인의 눈물을 닦으며 A를 토닥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거래? 나만 이렇게 힘든 거래?"
그렇게도 궁금해하던 '나만 힘든 육아'라는 말을 A의 입으로 듣자, 지혜는 기분이 묘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게, 꼭 나만 힘든 거 같지 왜. 근데 아냐. 지금 때는 누구나 힘든 거야. 이렇게 힘든 걸 어디선가 먼저 가르쳐줬더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말이야, 그치? 힘든 걸 다 같이 공유하고 알리고, 배우고, 이런 과정이 필요할텐데. 저출산이니까 애부터 낳으라고 할게 아닌데 말야."
지혜의 얘기에 A도 억울하다는 듯 덧붙인다.
"내 말이. 학교에서 다른건 다 가르쳐주면서 왜 이런 걸 미리 안 가르쳐주는 거야. 미국에서는 고등학생 애들한테 아기 인형으로 신생아 돌보기 실습 같은 것도 한다더만. 그러면 피임률이 올라간대. 완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아닌 게 아니라 그 인형이 진짜 신생아처럼 새벽에도 울고 찡얼대고 한다더라. 나도 그 인형이라도 돌봤으면 지금처럼 완전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싶고..."
"그러게. 아이를 처음 돌보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닌데 말야. 엄마 아빠가 되기 위한 교육이라도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싶어. 육아대백과에 나오는 몇 페이지짜리 글 말고, 진짜 실습이 필요한데. 일단 낳고 보면 알아서 크게 된다는 것도 옛말이니까."
"맞아. 그리고 아빠도 같이 양육을 해야 서로 의지도 되고 배우면서 더 좋을 텐데, 말도 못 하는 아이랑 나만 덜렁 남겨지니까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지는 느낌이야. 좋은 회사라고 해도 일주일 조금 넘는 출산휴가 띡 주고 끝이야. 3+3이니 아빠 육아휴직이니는 현실적으로 꿈도 못 꾸는걸. 그래도 꼴에 내가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고 둘 중엔 내가 더 능숙하다? 그러다 보니까 또 애는 엄마만 찾아. 이렇게 되니 처음부터 육아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러면 몸이 고되고, 그러다 정신도 피폐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야."
깊은 한숨을 쉬는 A의 어깨너머로 갓난아이의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A는 눈을 질끈 감는다.
"깼나 보네. 이게 정상 맞아, 지혜야? 내 애기가 잠에서 깨면 가슴부터 답답한 게 정상이야?"
농담 섞인 진심을 말하는 A를 보며 지혜는 쓴웃음을 지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A는 가슴 답답해하던 모습을 싹 지운 얼굴로 막 잠에서 깬 아이를 품에 안고 거실로 나왔다. 각종 옹알이 소리로 아이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둥게질을 해준 뒤, 지혜에게 잠시 아이를 내맡겼다.
"나 분유 탈 동안만 잠깐 안고 있어 줘. 순해서 낯은 안 가리더라고."
지혜는 갓난아이를 건네받았다. 훌쩍 커버린 주형만 봐서 그런지 오랜만에 안아 본 갓난아이는 솜털처럼 가벼웠다. 기분 좋은 로션냄새며 분유냄새, 그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아가냄새가 어지러울 만치 향긋하게 풍겨져 나왔다. 엄마가 아닌 낯선 이를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지만, 눈물은 터뜨리지는 않는 아기가 더욱더 사랑스럽게 느껴진 지혜였다.
"너무 이쁘다. 주형이 어렸을 땐 힘들었던 기억만 있어서 그런가, 이렇게 보니까 갓난아기는 참 신비롭고 소중하네. 이렇게 가벼운 줄 알았으면 주형이 더 많이 안아줄걸."
"정말? 그럼 한 일주일만 데려다가 키울래?"
A의 진담 섞인 농담에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터진 웃음소리에 놀란 갓난아이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이의 품이 어색했던 차에, 와락 울음이 터져버렸다.
"오구오구~ 우리 아인이, 이제 밥 먹을 시간이지? 다시 엄마한테 오자~. 이모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소파에 앉아 아이 분유 먹일 준비를 끝낸 A에게 지혜는 짐짓 삐진 체 하며 아이를 건넸다.
"치, 이모도 싫다 뭐. 이모도 집에 큰 형아 있거든~."
아이를 건네받고 자세를 고쳐 잡은 A는 아이의 조그마한 입과 젖병의 꼭지를 무사히 도킹시킨 후 시계를 쳐다보았다. '12시 30분...160미리...' 분유를 먹인 시간과 양을 되뇌었다. 불규칙적인 아기와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든 일정한 루틴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일련의 노력이었다. 마치 손발이 맞지 않았던 팀이 많은 시행착오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듯이. A는 다음 낮잠시간을 속으로 계산해 보며, 다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래도 참... 웃긴 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처음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좀 나아. 젖 먹이기 힘들어서 단유 했더니,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조금 올라 간 기분이랄까. 모유 못 먹여서 애한테는 미안하지만 말이야."
모유를 아이에게 먹이지 못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이유 모를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A가 말하자, 지혜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점점 적응될 거야. 요즘 분유 잘 나오잖아. 스트레스받는 엄마 모유보다 더 영양학적으로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엄마부터 행복해야지.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마. 그리고 100일 되면 또 100일의 기적이 오더라니까. 통잠 안 잘 것 같잖아? 정말 잘 때가 와.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렇겠지? 다들 그러는데 난 아직도 이 꼬맹이가 통잠이라는 걸 잘 수 있을지 믿어지지가 않아. 지금은 3시간마다 깨는데? 내 아인데, 깨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부터 쥐어뜯게 돼. 나 진짜 엄마 자격 없지? 저번엔 새벽에 깨고 나서 하도 안 자길래 엉덩이를 토닥이다가 나도 모르게 엄청 세게 때려버렸어... 이 작은 엉덩이를... 그러고 나서 또 펑펑 울고, 남편은 무슨 일이냐고 뛰쳐나오고. 다시 남편한테 이제 새벽에 네가 재우라고 큰소리치고. 그러면서 아직도 뭔 일인지 어리둥절해하는 남편한테 던지듯이 애를 안겨줬었어. 내가 진짜 엄마 맞나 싶고."
"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냐. 정말 다 그래. 사람의 한계를 이렇게까지 시험하나 싶고 그렇지. 그럴 땐 그냥 남편한테 애 맡기고 바깥공기라도 좀 쐬고 그래. 아이랑 너무 붙어 있다 보면 더 힘들어. 그래도 이제 좀 귀여운 짓 할 때가 됐는데?"
"맞아. 요즘은 눈도 마주치고 가끔 보면서 방긋 웃어주고 입도 오물거리고 하는데, 이제야 좀 모성애라는 게 생길락 말락 하는 거 같아. 난 여자는 무조건 모성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줄 알았거든. 내가 뭐가 잘못됐나 싶었어."
"무슨, 여자라고 모성애를 갖고 태어나겠냐. 난 너보다 더했어. 주형이 옹알이하고 말하려고 할 때쯤 그때야 모성애가 생겼어. 사람마다 다 다른 거야. 엄마라고 해서 신성한 존재가 아냐.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이겨내야 할 존재도 아니고. 그러니까, 친정엄마한테도 전화해서 사과드려. 너 아직 그 후로 연락 안 드렸지?"
오랜만에 어른과 이야기하는 즐거움에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듣게 된 친정엄마라는 단어에 A의 얼굴에는 잠시 그늘이 드리웠다.
"어? 어... 연락드려야지 드려야지 했는데, 아직...... 잠도 못 자고 정신없다 보니까 사고회로가 고장 나나 봐. 엄마한테 왜 그렇게 말했지 싶은데, 근데 또 막상 엄마 보면 다시 모질게 말할 것 같아서 따로 연락을 못 드렸어."
얼굴이 어두워진 A를 보고 지혜는 괜한 말을 했나 싶어 분위기를 바꾸며 말했다.
"연락드려. 그리고 웬만하면 애는 남편이랑 둘이서 알아서 잘 돌봐보고. 손 부족하면 나라도 불러. 자주는 못 와도 가끔 와서 이렇게 말동무라도 해줄게. 나 이제 한가하잖아."
"그러게. 나 애 낳기 전에 휴가 들어가고 나서 너 퇴사했다는 얘기 들었어. 갑자기 왜, 무슨 일이었던 거야?"
"아니, 뭐... 너 지금이 제일 힘들 것 같지?"
"뭐? 아냐? 지금이 제일 힘든 거 아냐? 또 뭐 있어?"
정말로 겁을 내는 것 같은 A에게 지혜는 웃으며 이야기를 돌렸다. 앞으로의 고난을 미리 말한다고 걱정 밖에는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냐, 넌 갓난쟁이나 일단 잘 키워. 근데, 얼마 전에 B부장님도 휴직 내셨다고 하던데 들은 거 있어?"
"아, 마케팅팀 B부장님 말이지? 나도 들었어. B부장님 큰 아들 알지? 올해 학교 들어갔거든. 그때 휴직 할까 말까 고민하시다가 안 하셨는데, 애가 학교 적응하기가 힘들었나 보더라고. 지금이라도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하시면서 뒤늦게 휴직계 내셨어."
"아, 그렇구나. 보통 학교 갈 때 육아휴직 한 번씩 더 낸다더니. 아기 낳고 복귀하신 지가 엊그제 같은데, 걔가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됐구나..."
"그런가 봐, 처음에 휴직 고민할 때 쓸 걸 그랬다고 하시더라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신경 좀 써야겠다면서 휴직계 내셨어. 아마 6개월 정도 내신 걸로 알고 있어."
"아... 그랬구나...."
지혜는 임신했을 당시 본인 일처럼 지혜에게 이것저것 챙겨주던 B부장을 떠올렸다. 따뜻한 걸 먹어야 한다며 루이보스티를 챙겨주기도 하고, 입맛이 없을 거라며 임산부용 캔디도 챙겨주고, 쓰다 남은 거라고 듬뿍 쓰라며 뜯지도 않은 임산부 튼살크림을 손에 쥐어주기도 했었다. 그런 B부장에게 육아의 또 다른 챕터가 찾아왔음을 전해 듣자 지혜는 뭔가 새롭고도 소중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을 듯한 예감이 들었다. 급하게 이루어졌던 퇴사에 제대로 인사도 못 하고 나온 B부장의 얼굴이 아른거리던 차에, 지혜는 한참을 망설이다 B부장에게 용기 내어 메시지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