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No Kids Zone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 蟲 : '벌레 충'이라는 한자로, '벌레'를 뜻한다. 곤충을 비롯하여 기생충과 같은 하등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가족들을 모두 각자의 일상으로 보낸 후의 평일 아침. 추운 날이지만 환기를 위해 방 세 개와 거실 창문을 모두 열어제끼고 찬바람에 어깨 움츠린 채 청소기를 미는 지혜다. 손과 발은 일관되고 정직하게 바닥의 먼지나 더러운 그 무언가를 쫓지만, 오늘따라 머릿속은 유난히 복잡하다. 몇 분 전 아무 생각 없이 이를 닦으며 보았던 핸드폰 속 기사와 그에 따른 댓글들 때문이리라.


'"저희 아이가 잘 못한 걸까요?" 식당에서 벌어진 일'


한 눈에도 자극적인 제목에 지혜 역시 엄지손가락으로 기사 제목을 눌렀다. 기사의 내용은 이전에도 몇 번 보았던 내용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글이었다.

식당에 아이를 데리고 간 뒤 발생한 일이 한 엄마의 시선으로 작성된다. 아이를 케어한다고 노력했지만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다른 손님과 마찰이 생겼고, 적절한 사과와 대응에도 아이와 본인에게 큰소리 친 상대방의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는 이야기가 주된 골자. 그리고는 그것이 제 잘못인지 인터넷상의 누군가들에게 구하는 조언. 기자는 자극적인 내용을 어딘가에서 그대로 들고 와 별다른 편집의 노동 없이 기사화시키고, 조회수는 폭발하며 댓글들은 갑론을박. 참으로 다양한 유형들의 의견이 펼쳐진다.


전지적 시점을 가진 하느님 유형

'작성자 위주로 쓴 글이네. 상황 안 봐도 알겠네. 딱 맘충들이 하는 전형적인 패턴.'


냉철한 냉동인간 유형

'냉정하게 저건 맘충 잘못이지. 저렇게 케어 못 할 거면 애 데리고 밖에 나오질 말아야지.'


세종대왕 유형

'뭔 말이야. 말을 문맥에 맞게 써야지.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됐다는 거?'


내 일 아닌데 유형

'내가 저래서 애 안 낳음.'


간혹 보이는 아빠 찾기 유형

'아빠는 어디 가고?'


길지 않은 기사 하나에 여러 사람이 들러붙어 뇌까린다. 다분히 한쪽만의 입장에서 쓰인 글에 상황판단은 불가능할 듯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솔로몬이길 자청하며 이런저런 판결을 내린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엄마인 작성자를 과감히 벌레로 칭하기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 호칭이 지혜의 머리에 끈덕지게 들러붙은 것이다.

처음 접한 것도 아니고, 지혜를 칭한 것도 아니었지만, 과감히 누군가를 벌레로 칭하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 글이 오늘따라 무섭기도, 두렵기도 한 것이었다. 사건 정황에 따른 이견들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혐오성 단어, 지혜 역시 엄마이기에 언젠가는 지혜를 칭할 수도 있을 그 단어, 누군가를 '벌레'로 칭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쓰이는 그 단어가 유독 견디기 힘들었던 건 지혜 역시 아이를 낳기 전만 해도 그런 것들에 무신경했기 때문이리라.



지혜는 시댁이 도서지역에 위치해 있다. 그 때문에 방문은일 년에 두 번, 주로 명절에만 들르고는 했는데 이동 시 비행기 이용이 불가피했다. 어쩔 수 없이 편도 십수만 원이 훌쩍 넘는 교통비를 지불할 때면 이동하는 중 최대한 편히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따지는 건 대부분의 누구나 그렇듯 지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행기 이용'의 높은 비용에 대한 성능은 '편한 비행' 그 이상 바랄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러다 주변 좌석에 조그마한 아이들이 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면 저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먼저 잡혔던 것이다. 편하게 갈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지불한 금액이 떠올라 짜증이 솟구쳤었다.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런 비행기 엔진소리에 엥-하고 우는 아이의 울음에 귀를 막기도, 좌석을 뒤에서 발로 차는 느낌에 뒷자리 아이를 노려보기도 부지기수였다.

'부모는 도대체 뭘 하는 거야.'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싸우고 싶지는 않아 속으로만 푸념하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지혜가 주형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소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린아이 비행기 타는 법'이라든지 '영유아 비행기 탈 때 꿀팁'따위를 미리 검색하고 준비했다. 이륙 시 귀가 먹먹해져 겁을 먹을 아이를 위해 미리 분유 타 놓은 젖병을 준비했고, 쪽쪽이며 떡뻥, 아이가 좋아하는 아기상어 영상도 여러 버전으로 핸드폰에 담아 대비했다. 비행기에 탑승한 지혜는 남편과 한 팀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며 온 신경 곤두세운 채 아이에게 집중했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 아빠가 준비해 놓은 여러 단계 중 곤히 잠이 들어 수월하게 첫 비행을 마칠 수 있겠단 생각을 하던 때였다. 비행기 착륙 안내방송이 나오자 잘 자던 아이는 갑작스럽게, 한시름 놓던 지혜와 그의 남편을 향해 보란 듯이, 빼액-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다급해진 그들은 아이의 입에 쪽쪽이를 물려보고 떡뻥도 집어넣어 보았으나 작은 입과 혀로 퉤 밀어낼 뿐이었다. 앉아서는 달랠 수 없겠다 싶던 지혜는 아이를 얼른 안아 들어 올렸고, 곧 울음이 멎는 듯했다. 하지만 비행기는 착륙을 하고 있었기에 승무원은 일어선 지혜를 향해 달려와 자리에 앉아주셔야 된다 안내했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자리에 앉은 둥 마는 둥 아이를 안고 좌석에서 엉덩이를 띄운 채 스쾃 자세를 하고 있던 지혜에게 승무원은 다시 한번 착석과 안전벨트 착용을 요청했고, 주형은 분주하고도 산만한 상황에 더 큰 울음으로 응답했다. 당혹스러움과 민망함, 그 무엇한 마음이 들던 그 때였다.

"부모는 뭘 하는 거야, 애가 저렇게 우는데."

여전히 울고 있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긴 채 안전벨트를 채우는 지혜의 귀에 정확히 때려 박힌 그 말은, 몇 년 전 지혜가 그 누군가에게 마음속으로 던졌던 말이었다. 심장이 내려앉듯 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 꽂히는 중인 비행기에서 당장에 문을 열고 도망치고만 싶었다. 하지만 사방이 가로막힌 그 공간 안에서 지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달래 지지 않는 아이의 입을 궁여지책 제 손으로 막아 볼 뿐이었다. 너그럽지 못했던 지난 날의 과오로 벌을 받는 것만 같았다.



뒤죽박죽 해진 머리와 달리 몸은 기계적으로 부지런히 놀렸더니 벌써 시계는 12시를 가리킨다. 하루 세끼 중 혼자 먹는 점심은 그나마 간편하고 신경 쓸 것 없이 차릴 수 있어 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지혜는 냉장고 속 장조림 반찬을 꺼낸다. 밥솥에서 밥 한 공기 푼 다음 연보랏빛 잡곡밥 위 장조림 두어 숟갈 걷어올려 담고 식탁에 앉아 끼니를 해결한다. 누군가는 남에게 대접하듯 나에게 식사를 정성들여 대접해야 자존감이 올라간다지만, 가끔은 식사 후 그 뒷정리를 해야 할 나를 배려함으로써 자존감을 올리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지혜다. 설거지거리는 숟가락과 밥그릇 하나씩 뿐이니 시간도 절약되어 좋다. 자존감을 지키는 법은 다양하니까.

가라앉은 기분을 떨치기에 제일 좋은 방법은 산책이다. 간단한 설거지를 1분 안되어 해결 한 뒤 옷을 도톰하게 차려입고 운동화를 신는 지혜다. 두꺼운 외투의 왼쪽 주머니엔 지갑, 오른쪽 주머니엔 핸드폰을 챙겨 넣고 텀블러 넣은 에코백을 둘러메며 집을 나선다. 아파트 공동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얼굴로 훅 끼치는 찬 바람에 볼과 귀가 곧장 시려지지만, 상쾌한 바깥공기에 좋아진 기분이기에 추운 날씨는 아무렇지 않다.

사람처럼 패딩과 신발을 야무지게 챙겨 입고 산책하는 강아지, 두 손 꼭 잡고 그들만의 느린 시간을 즐기는 노부부, 딱 달라붙은 유모차 두 개에 나란히 붙어 누운 쌍둥이. 각자의 평화로운 산책을 보고 있노라니 지혜의 기분은 이내 나아진다. 꽤 괜찮아진 기분에 곧 하원할 주형을 위한 간식거리를 사 갈까 하여 평소 그들 가족이 자주 들르는 빵집으로 방향을 바꾼다. 익숙한 빵집 앞에 다다른 지혜의 눈에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허리까지 오는 이젤식 입간판의 초록칠판에 하얀 분필로 음각까지 넣으며 정성스레 쓰인 글씨.


"No Kids Zone"


불과 열흘 전만 해도 6살 아들 주형과 들러 식사했던 곳이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유기농 밀가루로 만든 건강한 빵들을 가게에서 먹거나 포장해 갈 수 있는 가게였다. 오며 가며 눈여겨보다 아들 주형이 빵을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부터 자주 찾은 단골집이었다. 가족들과 방문할 때마다 유아식기와 의자를 따로 챙겨주며 다정스레 인사해 주시던 빵집 사장님을 떠올리며, 약간의 섭섭함을 느낀 채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카운터에는 늘 있던 사장님 대신 아르바이트생으로 보이는 직원이 자리 지키며 인사했다. 지혜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입구에 놓인 쟁반과 집게를 들고 평소 주형과 남편이 좋아하던 빵을 골라 담았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앞두고 테이블이 놓인 곳을 둘러보니, 과연 아이들이 종종 보이던 이전과는 다르게 좌석에는 어른들만이 자리해 있다. '무슨 일일까... 왜지...' 가게의 변경된 운영정책에 별다른 이유가 있을까 싶어 이리저리 눈과 머리를 굴리던 지혜에게 아르바이트생은 빵을 개별봉지에 담아 계산하며 결제가 필요한 금액을 일렀다. 그제야 지혜는 정신이 들어 지갑 속 카드를 꺼내 건네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 여기... 이제... 아이들은 이용을 못 하나요?"

아르바이트생은 지혜가 건넨 질문을 이미 여러 번 들었다는 듯 약간의 티 나지 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아, 네. 저희 지난주부터 노키즈존으로 운영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케어가 안 되기도 하고, 아이가 없는 손님들이 많이 불편해하셔서요. 아이 동행하시면 테이블 사용은 불가하세요."

기이한 존대를 써가며 더 이상의 말은 하고 싶지 않은 듯 대답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용기 내 한 번 더 묻는 지혜였다. 아침에 봤던 기사를 떠올리며.

"아 그렇구나, 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사장님께서 아이들을 항상 좋아해 주셨었는데..."

아르바이트생은 지혜의 귀찮을 듯한 질문에도 서비스정신은 잃지 않고 최대한 친절을 노력하며 대답했다.

"아, 뭐 크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구요. 사장님은 이전 사장님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희 사장님이 바뀌셨어요. 바뀌고 나서 노키즈존 운영도 같이 시작했구요. 애들이 워낙 컨트롤이 안 되어서요. 부모님들이 잘 돌봐주셨어야 했는데... 이런저런 마찰들이 발생하다 보니... 들고 가실 봉투는 필요 없다고 하셨죠? 여기 있습니다."

"네? 아 네, 감사합니다. 고생하세요."

왠지 제 잘못인 듯한 그의 설명에 메고 있던 에코백에 포장된 빵을 황급히 담은 뒤 가게를 나서는 지혜였다.


애들이 워낙 컨트롤이 안 된다, 맞는 말이다. 애들은 애들이니까. 몸도 정신도 발달이 덜 된 아이들은 어른들이 보는 시야만큼 보는 범위가 넓지 못하고, 어른들이 몸을 쓰는 만큼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어른들 역시 날 때부터 이 크기, 이 상태로 태어난 게 아님을 잊고 있는 걸까. 모두 지금의 반절 만하던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이 있을 테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고, 어른들의 아량이 기중하다.

부모가 제 아이를 알아서 돌봐야지, 이것이 더 맞는 말이겠다. 아이를 낳아놓았다고 하여 부모 된 도리가 다 끝난 게 아니다. 되려 낳은 것보다 중요한 건 기르는 것이리라. 많은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최대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아이를 잘 교육하고, 아이가 통제되지 않는 부분은 부모가 잘 교육시키는 게 맞다. 아마도 대부분의 부모는 그리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존재함이 자명한 사실이다. 지혜 역시 같은 부모임에도 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하는 이들을 수없이 봤더랬다. 저런 사람들은 '부모교육'을 따로 받아야 돼, 남편과 쑥덕거리던 기억도 여러번이다. 정말이지, 꼭 받아야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그들의 언행을 '아이를 가진 이들' 전체로 묶어버리고 분류 해 손가락질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저 아이와 아이를 가진 이들에 대한 혐오의 정당성으로만 여겨지진 않을까.



지혜는 집을 나설 때보다 한층 복잡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위에 빵을 꺼내어 정리해 두고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올려놓은 뒤 화면을 열었다. 브라우저를 켜고 초록색 화면의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검색어 입력칸에 찾고자 하는 단어를 타이핑한다.


"맘충"


1초 채 되지 않아 검색결과가 화면에 뜬다.


"Mom+蟲(벌레 충). '엄마'라는 입장을 특권처럼 내세워 상대방의 이권을 강탈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사회 전반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일삼는 유자녀 여성들을 벌레에 빗대 비꼬는 신조어."


보는 것만으로 혐오감을 주는 그 단어를 그럴싸하게 풀이해 놓고, 좀 더 살펴보니 유래까지 적어놓았다. 유사어로는 "틀딱충" 같은 것도 있단다.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며 붙여낸 끔찍한 별명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서로의 혐오에 지혜는 절로 눈이 감긴다. 피로가 몰려오는 듯하다.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늙어간다는 이유로, 저도 모르는 새 아무렇지 않게 벌레로 칭해질 수 있는 세상이다. '무개념 행동을 하지 않으면 되잖아'라지만, 그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이며 나도 모르는 순간 타인에게는 '무개념 행동'으로 보이는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지혜의 비행기 일화가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돈다. 그렇기에 지혜는 그들의 단순한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에 더더욱 두려워지는 것이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 아이, 아이를 돌보는 여성. 어찌 보면 사회의 약자들만을 콕 집어 '벌레'로 칭하는 이 나라의 문화가 지혜를 더욱 두렵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는 사람은 더 줄어들고, 출산율은 급감해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이지만 정작 아이와 엄마에게는 '충'이라는 딱지가 주어지니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말이 주는 힘을 알기에 더욱 염려스럽다.


지혜는 아침에 보았던 기사를 떠올리며 다시 뉴스 페이지로 화면을 이동시킨다. 시시각각 변하는 빠른 세상답게 논쟁이 불붙었던 아침의 기사는 어느덧 보이지 않고, 새로운 기사들이 메인 화면을 장식한다.


"저출산 해결 위해 세금 더 푼다."


꽤 오래전부터 화두가 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에 대한 기사는 요즘 하루에 하나씩은 꼭 보이는 듯하다. 무려 2,30년 전부터 나라의 저출산문제를 걱정해 왔고, 정부도 나름대로의 대책을 만들어 시행해 왔지만 효과는 전혀 보고 있지 못한 듯하다. 출산율은 급감할 뿐이다.

제도적인 문제를 이리저리 뜯어고치고 다른 나라의 그 어떤 것을 적용시켜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지혜는 생각한다.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에겐 전혀 무용한 것이리라. 아니나 다를까, 스크롤을 조금 내리면 보이는 댓글에는 오늘의 추운 날씨보다 더 차디찬 바람이 분다.


'지들이 좋아서 낳아놓고 왜 계속 나라에 돈을 달래.'

'애 없는 사람들 역차별하냐. 내가 낸 세금을 왜 지들 맘대로 쓰지.'


나라가 생각하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과 국민이 생각하는 그것의 괴리는 꽤 심한 듯하다. 살아내느라 너무나 각박한 세상에 나 아닌 다른 이의 사정은 보지 않기로 한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틀딱충'들은 내 세금을 빨아먹는 비경제활동인들이고, 나는 영원히 늙지 않을 심산인 듯하다. 내가 노년이 되었을 땐 누구의 세금으로 지원을 받을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겠지. 지금 왕성한 나의 몸과 경제활동을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출산문제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인지하지는 못 할 것이다.

또한 나라가 생각하는 국민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현실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한 달에 십만 원 육아수당을 받고자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고, 주택청약 순위를 높이기 위해 다자녀를 낳는 사람은 희박하다. 인심쓰기성 정책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그리 도움도 되지 않을 뿐더러 자녀가 없는 이들에게는 반발만을 불러온다. 좋아서 낳은 것은 맞겠지만, 나라에 돈을 달란 적은 없다. 아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여긴다면 그 또한 저출산에 대한 근본 문제가 잘 공유되지 않은 탓이겠다. 아이가 있는 자와 없는 자가 편을 나눠 싸울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저런 제도들을 구상하고 보여주기식으로 정책을 제안하며 도입하는 것보다 저출산 문제가 가져올 심각한 위기들을, 나라가 생각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국민들에게 세세하게 공유하며 각자의 입장 온도를 맞추는 게 먼저가 아닐까.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로서 서로의 사정에 대한 이해와 기반이 단단히 다져져야 그 위에 쌓아 올릴 제도와 정책이 잘 자리 잡을 것이다.

아이의 출입을 떳떳하게 통제하는 가게가 있는 이상, 아이를 키우는 자들을 벌레로 칭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이상, 유연근무제든 육아휴직이든 그것을 쓰는 사람이 유별나고 개념없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이상, 그 어떠한 좋은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많은 이들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오랜 아프리카의 속담을 떠올려보는 지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본 세상에 머리가 지끈거려 오던 지혜는 노트북을 덮고 책을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파오는 머리에 문제를 직면하는 대신 회피를 선택했다. 산책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책으로 해결하곤 하던 지혜다. 복잡한 현실세계에서 한 발 떨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책갈피로 표시해 둔 부분을 펼쳐 앞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며 첫 문장을 흡수하려던 찰나, 소파에 앉은 엉덩이 옆께에 두었던 핸드폰의 진동이 울렸다. 볼까 말까 망설이다 집어든 핸드폰에는 익숙치 않은 이름이 떠 있다. E였다.

'E? E가 누구더라...'

5초 정도의 머뭇거림 후 지혜는 E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회사 다닐 적 후임이었던 E대리. 후임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서로의 선이 있어, 또는 대화를 나눌 공통분모가 없어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다. 퇴사할 때에도 그저 잘 지내, 잘 지내세요, 단조롭기 그지없는 인사만을 주고받았었다.

갑작스러운 연락에 퇴사 몇 달이 지난 지금 지혜는 자신이 업무에 구멍을 낸 게 있었던가 다급히 머리를 굴려보며 메시지를 열었다.

"과장님, 저 E예요. 잘 지내시죠? 다름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조언을 구할 게 있어서요. 혹시 이번 주에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실까 해서...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해요. 이번 주 안되시면 다음 주도 좋아요. 과장님 여유 있는 시간 말씀 주시면 제가 맞출게요.! 제가 지금 조언을 구할 데가 과장님 밖에 없어서요…. 당황하셨다면 죄송해요."

갑작스러운 구구절절한 부탁문자에 당황하기는 했다. 어떤 의도에서 쓰여졌을지 모를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커다란 오리 이모티콘은 정신만 사나울 뿐 문자의 진정성을 퇴색시켰다. 여전히 나랑은 안 맞네, 문자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지혜의 마음을 건드린 건 따로 있었다.

"과장님"

오랜만에 듣는 직급 호칭이 낯설기도, 오묘하게 기분 좋기도 한 것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만 지내온 몇 개월 동안의 생활이 편하고 좋다 여기며 지내왔지만, 사회생활에서의 호칭을 들으니 숨겨놓았던 무언가를 건드린 듯 미묘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회사 다닐 적엔 진급 누락의 징표였던 만년 과장의 그 호칭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는데. 이상했다. 그 이상하고도 기분 좋은 부름에 취해 지혜는 답장을 위해 손가락을 분주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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