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수족구(1)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E

- 직업 : 정규직 근로자(IT회사 회계팀)

- 자녀(연령) : 여아1(7개월)

- 주양육자 : 엄마(E)

- 기타 : 지혜의 이전 회사 동료(후임)



거래일자 : 202X. 03.23.(토)

거래시간 : 19:20:19

가맹점명 : 파리바게뜨(주)

금액 : 33,000원

지출내용 : 부서회식

계정과목 : 복리후생비(회식)


월 초, 각 부서에서 상신되는 지난달 지출정산서를 결재하던 지혜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어느 누가 주말 오후 7시에 파리바게뜨에서 3만 원짜리 회식을 할까나. 가족 생일잔치라도 하셨나.'

돈 문제로 직원과 말싸움하기 싫은 지혜는 웬만큼이면 상신된 정산서에 승인버튼을 누르곤 했지만, 누가 봐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당당한 회사 예산 남용에 한숨부터 쉬어진다. 곧장 반려버튼을 누른다면 상대는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하기에 채팅으로 의중을 먼저 파악하고자 한다. 대개의 경우 처음엔 한 발 빼니, 상대가 물러설 곳이 없도록 좀 더 정확한 물증을 확보해 놓는다. 카드가 결제된 매장의 주소와 정산서를 올린 직원의 집 주소를 비교한다. 역시, 회사에서 차량 30분 거리의 그 가게는 직원의 주소지와 근접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업무 메신저를 켠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회계팀 김지혜입니다. ^^"

약 1분간의 침묵. 디자인팀에 있는 친구 A는 회계팀에서 메신저로 말을 걸어오면 잘 못 한 게 없는데 왠지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이 든댔다. 마치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지만 경찰을 마주칠 때마다 떨리는 그 느낌이라나 뭐라나. 지혜는 회계팀 직원이니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이 직원도 지금 그런 기분이려나. 조금 기다리니 무뚝뚝한 회신이 날아온다. 아니, 메신저상으로는 무뚝뚝하게 느껴진다. 얼굴을 보지 않고 있으니 실제로는 무뚝뚝한 표정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다.

"네, 안녕하세요."

웃음 이모티콘 하나라도 붙여주면 어디 덧나나, 상대의 경직된 반응에 살짝 긴장되어 불만을 품고서 지혜는 말문을 연다.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마음을 풀어주세요, 최대한 어필하며.

"아, 네. 다름이 아니라 올려주신 지출정산서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올려주신 내역 중에 3월 23일 토요일에 결제하신 내역이 회식비로 올라왔더라고요. 주말에 사용하신 내역인데 팀 회식비로 사용한 게 맞으실까요? 잘 못 보시고 올리신 건 아니신가 해서요 ^^"

네가 일부러 올린 것은 알지만 지금이라도 인정한다면 실수로 넘기겠다는 아량을 어필했다. 상대는 지혜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조금 당황한 듯 보인다.

"아, 그런가요.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끝나길 바라는 지혜다. 상대가 한 번 더 우길 시 방어할 카드는 있지만 그 카드를 꺼내면서까지 말을 더 엮고 싶지 않다. 주소가 이러네 저러네 하며 피차 얼굴 붉히는 일은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제발, 그냥 인정해라, 실수였다고 해라, 속으로 빌며 상대의 대답을 기다린다.

"아, 그러네요. 개인카드인 줄 알고 법인카드를 긁었나 봐요. 해당 비용은 제 비용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정산서 반려 해 주시면 그거 빼고 다시 올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양심적인 직원이시군요. 이대로 끝난 추궁이 정말 감사하기만 한 지혜다. 한껏 들떠 마무리 인사를 한다.

"네, 팀장님! 그럼 반려 진행하겠습니다. 정산서는 시간 되실 때 마감일 전까지만 다시 올려주세요 ^^"

꾸벅 인사하는 이모티콘도 함께 보낸다.


'지이이이잉-'

진 빠지는 정산싸움을 마무리하며 한시름 놓던 차, 모니터 앞에 놓아둔 핸드폰의 진동이 울린다. 그것의 화면을 내려다보니 지혜의 심장이 순간 내려앉는다.


"새빛 어린이집"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혜는 주형을 어린이집에 맡겼다. 돌까지는 휴직으로 주형을 돌보았고, 돌이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었는데, 그 누군가는 '그 어린애를 벌써 어린이집에 맡겨요?'라며 눈 땡그랗게 뜨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속 없는 말로 지혜의 마음을 후벼 파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어린이집이 아니라면 아이를 하루종일 돌보아줄 곳은 없다. 다행히 주형은 엄마의 마음을 읽었는지 어린이집 적응을 잘하는 듯 보였다. 어린이집의 존재와 선생님의 보살핌에 매일 감사하던 날들이었다.

문제는 단체생활이었다. 생애 처음 단체생활을 시작한 주형은 걸려본 적 없던 코감기, 기침감기, 온갖 감기와 질병을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지혜와 그의 남편은 주형의 잦은 병치레에 놀라 교대로 휴가를 써가며 아이를 돌보았다. 하지만 일 년에 십 수개정도 부여되는 연차를 주형이 아플 때마다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첫 한 달만 해도 둘이 합쳐 소요한 연차의 개수가 벌써 여덟 개였다.

해서 어느 정도 이골이 난 이후부터는 심하지 않은 콧물과 기침에는 알레르기약을 처방받고 먹이며 주형을 어린이집으로 들이밀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아침부터 콧물끼가 보이는 주형에게 알레르기 비염약을 먹이고 남편에게 등원을 맡기고 출근한 길이었다. 찝찝한 마음이 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하원 때까지 별 탈 없이 잘 지내주길 바랄 뿐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 어린이집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다행이었지만 이렇게 전화가 올 때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은 기분.


긴장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핸드폰 챙겨 빈 회의실을 찾아 들어가는 지혜였다.

"여보세요."

아이들의 목소리와 울음소리, 떼쓰는 소리 등이 배경음처럼 잠깐 들리다 이내 익숙한 주형의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민재야, 친구 건드리면 안돼요. 친구가 불편해하잖아. 아 네, 주형이 어머님. 통화 가능하실까요?"

지혜의 가슴이 방망이질 친다.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

"아 네, 어머님. 다름이 아니라, 주형이가 방금 열을 쟀는데 38도가 넘게 나와서요. 해열제를 먹여야 될까요? 아침에 따로 전달해 주신 건 없으셔서."

역시나. 단순한 기침과 콧물은 어찌저찌 모른 체 하고 어린이집을 보낼 수 있었으나, 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열이 난다는 건 세균성 무언가가 침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고, 이는 어린이집에 있을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열병에 쳐져있을 주형도 걱정 되었고, 사실은 그 무엇보다 열이 있는데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는 '무개념 엄마'로 선생님들께 낙인찍힐 순 없었다.

"아, 그런가요. 아침엔 괜찮았는데... 그럼 일단, 해열제 투약 해 주시겠어요?"

내가 볼 때는 분명 괜찮았다는 부분을 어필한다. 정말이에요, 괜찮았어요. 그리고 시계를 본다. 아직 점심시간이 되기 전인 11시 40분 정도.

"주형이 아빠랑 얘기해서 둘 중에 한 명이 12시 반 까지는 가 볼게요."

알겠다는 선생님의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는다.

자리로 돌아와 모니터 한 켠에 반투명하게 설정해 놓은 개인용 메신저를 켠다. 남편의 이름을 찾고는 빠르게 메시지를 보낸다.

- 여보, 주형이 지금 열 난대. 반차 낼 수 있어? 오늘 월 마감기간이라 난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지혜와 마찬가지로 매일 메신저를 컴퓨터에 켜두고 일하는 남편은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고 답변을 보낸다. 지혜가 원하지 않는 답변을.

- 정말? 나도 오늘 안 되는데. 열 얼마나 난대? 해열제 먹이고 열 내리면 괜찮지 않나?

천하태평한 듯 한 그의 대답에 지혜가 열이 나는 듯하다. 해열제를 먹이고 열을 내리는 걸로 끝난다면 선생님이 전화를 하지는 않았겠지, 애를 데려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에둘러한 게 아닐까, 지혜는 최대한 화를 억누르며 남편에게 회신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 에이, 설마. 자기가 너무 선생님 전화를 확대해석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나도 오늘은 반차 내기 어려운데. 저번에 주형이 아데노바이러스 걸렸을 때 휴가를 이틀이나 내서 또 내기 어려워.

- 알겠어, 내가 해볼게.

지혜는 이틀 연달아 휴가를 냈던 남편의 사정을 정상참작하여 이번엔 자신의 차례가 되었음을 받아들인다.


정산 기간의 회계팀은 평소의 회계팀보다 몇 배는 예민한 분위기다. 정산이 틀어질까, 놓친 게 있지는 않을까, 경영진에서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한없이 냉정한 숫자만을 모니터 뚫어지게 쳐다보며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감싼다. 그중 가장 예민한 건 역시 팀장이다. 마감을 시작하는 날부터 마감 어디까지 됐냐, 매출 얼마나 나올 것 같냐, 비용 얼마나 찍혔냐, 부하직원들을 향해 앵무새처럼 쪼아대는 그. 결국 마감일이 다 되어야 정확한 숫자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쪼아댄다. 지혜는 지금 그를 향해 이 마감전쟁에서 잠깐 발을 빼야 함을 알려야 한다. 발걸음이 납덩이만큼 무겁다.

"저... 팀장님."

팀장은 모니터에 눈을 거두지 않은 채 지혜의 목소리만 듣고는 대답한다.

"네, 말씀하세요."

차라리 반말하고 막대하던 예전 팀장이 그립다. 존댓말 속에 뼈 있는 말들을 심어놓고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는 지금 눈앞의 이 사람보다는.

"저... 지금 아이가 열이 난다고 해서요. 죄송한데 오늘 반차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지출정산서는 현재까지 올라오는 대로 마무리했고, 더 올라오는 부분이랑 전표 결재해야 될 부분은 집에서 노트북 들고 가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스레 보이는 눈치에 나에게 주어진 연차를 쓰면서도 집에서 일을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어필한다. 공수표는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질색하는 지혜이기에 밤을 새워서라도 맡은 일은 차질 없이 했던 것이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는 것을 안다. 그에게 있어 업무성과에 대한 기준은 '업무 완성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에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똑같은 업무를 해도, 아이를 낳기 전 야근을 할 수 있던 지혜에 대한 평가와 야근을 할 수 없는 지금의 평가는 천지차이였던 것이다. 지혜를 대하는 그의 태도 또한.

"유독 지혜과장 애는 더 자주 아픈 것 같네. 오늘이 정산기간인 건 알고 그러시는 거죠? 애는 지혜과장만 보나요? 애 아빠는요? 회계팀 와이프 두고 정산기간에 애를 보게 해요?"

역시, 그냥 넘어가질 않는다. 차라리 내가 아프다고 했었어야 하나, 후회하는 지혜다. 니 와이프도 회사에서 이런 취급받으면 좋겠니, 라는 말이 턱끝에서 맴돌지만 당연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아, 남편도 요즘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서요. 지난번에는 남편이 휴가를 써서 이번엔 제가 써야 될 것 같아서..."

대화 내내 모니터만 보던 팀장은 그제야 조선시대 내시마냥 허리 굽히고 서 있던 지혜를 홉떠보고는 이내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한다.

"본인 휴가 쓰는 걸 뭐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휴가신청서 상신 하세요. 팀은 공동으로 움직인다는 거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이때까지 내 휴가 쓰는 걸로 뭐라고 해 놓고, 뭐라고 할 수 없다고 마무리하는 저 야비함. 혹여 내가 인사팀에 꼰지를까봐 뒷수습까지 완벽하게 하는 저 치밀함. 그 주도면밀함에 치가 떨리는 지혜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내뱉고는 자리로 가 곧장 휴가신청서를 올린다.

그 사이에 올라온 정산서가 없나 확인하니 좀 전 파리바게뜨 사건의 영업팀 팀장의 정산서가 수정되어 올라 와 있다. 착한 사람이네, 결재버튼을 누른 뒤 책장을 정리하고 노트북의 전원케이블을 뽑아 가방에 집어넣는다. 다시 잊은 건 없는지 확인하고 짐을 챙겨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지 확인하고서 조용히 부서를 나선다. 8시 출근인 지혜이기에 12시까지 업무를 했으니 반차의 조건은 갖춘 셈이다. 혹여 싫은 소리 들을까 출퇴근 시간을 정확하게 체크하는 게 버릇이 됐다. 회사 밖으로 나서기 전, 텀블러에 담긴 먹다 남긴 물을 버리고 갈 생각에 탕비실을 들르려는데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에 지혜의 이야기가 얹히는 것이 들린다.

"오늘도 빼박 야근인데, 그 아줌마는 또 애 아프다고 간다잖아. 아니 애는 자기만 키운다니까. 민폐 장난 아니야. 육아휴직 들어갔을 때도 우리가 그 구멍 메우느라 나머지 셋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복직해서는 더 심해. 무슨 애가 격주로 한 번은 아프냐. 진짜 아픈 건지도 모르겠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다. E대리. 신입 때부터 그녀의 사수로 지정되어 업무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르쳐 온 지혜였다. 애교 많고 텐션 높은 E와 모든 것에 무던하던 지혜는 업무스타일도, 개인취향도 어느 것 하나 맞는 것이 없었기에 평소에도 그리 친하게 지내진 않았다. 그래도 휴직 전에는 나름 사수라고 업무적으로는 지혜를 꽤나 잘 따르던 E가, 복직을 한 뒤부터는 그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 했다. 그 대신 팀장 옆에 딱 달라붙어 업무에 궁금한 게 있는 것도, 개인적인 스몰톡도 재잘재잘 이야기하고는 했던 것이다. 어느 날부터는 자리도 팀장 옆으로 옮긴 그녀가 얄밉기도, 꼴 보기 싫기도 했지만 회사의 자잘한 감정적인 일에 신경을 쓸 만큼의 기력이 남지 않았기에 되려 모른 척하고 지내던 날들이었다. 텐션 높아 감당하기 힘들던 그녀의 소란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뒤에서 내뱉는 험담을 직접 듣게 된 것이다. 나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 예상을 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내 귀를 통해 직접 듣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탕비실로 들어 가 알은체 해야 하나, 어쩌나, 망설이는 지혜의 귀에 다시 한번 E는 쐐기를 박았다.

"그러니까, 그럴 거면 애를 왜 낳냐고. 자기가 애 낳아놓고 왜 자기가 수습을 못 해."



그렇게 모난 말을 지혜 등 뒤에 꽂았던 E가 지금 지혜 앞에서 울고 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죄송해요, 과장님. 그때 제가 탕비실에서 했던 말 들으신 거 알고 있어요. 전화 끊고 나가는데 과장님이 탕비실 지나쳐서 걸어가시는 거 봤어요. 정말 죄송해요."

꼴 보기 싫었던 그녀의 울음을 보고 있노라니, 지혜는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보다 한숨이 나온다.

"그만 울어. 지금 그 얘기하려고 나 보자고 한 거야? 아닐 거잖아. 무슨 일인데. 나밖에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며. 어차피 다 지난 일이야. 솔직히 그땐 조금 마음 아팠는데, 이젠 아무렇지 않아. 하고 싶은 진짜 말을 해 봐, 무슨 일인데."

지혜의 다그침에 E는 티슈로 눈물을 닦고 앞에 놓인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들이켜 목을 축인 뒤 말을 잇는다.

"제가 그때 과장님한테 못된 말 해서, 그래서 제가 요즘 이런 일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죄송해요, 과장님. 그렇게 힘드신 줄 몰랐어요.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다시 울음. 지혜는 도통 본론을 꺼내지 않는 E의 화법에 그래, 예전에도 그랬어, 따위의 생각이 든다. 기다려주면 이내 하고픈 말을 하던 E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따뜻한 캐모마일 티를 한 모금 마시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커피테이블에 놓인 E의 뒤집힌 휴대폰이 눈에 띈다. 한 때는 깨끗했을 핸드폰 뒤편에는 포켓몬스터 스티커가 대중없이 붙어있다. 아마도 그의 몇 개월 되지 않은 딸아이가 붙여놓은 것이리라. 화제를 바꾸면 눈물이 쉬이 그칠까 싶어 지혜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애기 많이 컸겠네? 나 퇴사할 때 만삭이었잖아. 스티커도 애기가 붙인 거야?"

그제야 E는 눈물을 그치고 웃어 보인다.

"네, 맞아요. 이제 7개월이에요. 지난달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어요."

"벌써?"

지혜는 생각을 거치지 않고 곧장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이내 후회했다. 자신이 그토록 듣고 싶지 않았던 "그 어린애를 벌써 어린이집에 보내냐"따위의 말을 제 입으로 꺼낸 것이다. 하지만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지혜의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그대로 마음에 담아 들은 E의 안색이 다시 어두워졌다.

"네... 저도 돌 지나서 보내고 싶긴 했는데, 그게... 그것 때문에 과장님께 연락드렸어요."

괜히 미안해진 지혜는 좀 더 적극적으로 테이블 가까이에 붙어 앉으며 대답했다.

"어, 뭔데? 말해 봐.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거면 들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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