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수족구(2)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E

- 직업 : 정규직 근로자(IT회사 회계팀)

- 자녀(연령) : 여아1(7개월)

- 주양육자 : 외조모, 엄마(E)

- 기타 : 지혜의 이전 회사 동료(후임)




타닥타닥

- 김과 퇴사하니까 팀장님 얼굴 핀 듯요 ㅋㅋ

- 아니지, E대리님이 얼굴 폈지.

- ㅋㅋ 무슨 소리야, 내 얼굴은 원래 펴 있었거든


정산기간이 아닌 회계팀의 업무는 정확히 그보다 1/10은 줄어드는 듯 하다. 할 일 없고 나른한 오후, 잠이 쏟아지는 E의 배는 아기가 당장에 나온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듯 부풀어있다. 업데이트 내역 없는 전표시스템에 들어갔다, 소식없는 메일창 새로고침을 해봤다, 더이상 수정이 필요없는 월별 매출파일을 열어본다. 숫자 가득한 엑셀파일 위에 보일듯 말듯 채팅창을 켜 적당한 곳에 배치한 뒤 수다를 시작한다. E와 후배인 팀원 둘, 총 셋이 있는 방. 당연히 팀장은 없다. 등 맞대고 붙어있는 자리에 종종 의자 돌리고 과자 먹으며 수다를 떨고는 했으나, 무슨 할 말이 더 많은지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모니터보며 터져나오는 웃음을 입술 깨물어 꾹 참으며 별별 대화를 나눈다.


타닥타닥

- 대리님 몸은 괜찮아요? 지금 배 터질 것 같은데 ㅋㅋ

- 어 괜찮아 ㅎㅎ

- 예정일 언제라고 하셨지?

- 2주 남았어 ㅎㅎ

- 대리님 가면 우린 어떻게 해요. 에이스 없어서 큰일남.


귀여운 후배들의 애교섞인 메시지에 E대리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연차는 꽤 차이나지만 실제 나이차는 크지 않아 쿨하게 친구처럼 지내자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E였다. 딱딱하고 무뚝뚝한 사수였던 지혜를 생각하며, 난 그와 다르게 후배들에게 편한 선배가 되리라 생각했다.


타닥타닥

- 대리님 저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출산휴가만 쓰고 오시는거죠? 우린 대리님 없으면 안됨.

- ㅇㅇ 그 때 3개월만 쓰신다고 하셨잖아. 우리 대리님은 김과랑 다름. 자기만 생각한다고 일 년씩 휴가쓰고 그러지 않음 ㅋㅋ


채팅창을 보며 웃고 있던 E의 얼굴에 미소가 거두어진다.

그들이 지칭하는 '김과'. 김지혜 과장의 임신, 출산, 육아와 퇴사까지 모든과정을 곁에서 오롯이 지켜본 E였다. E는 지혜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직접 임신을 해 보니 더욱 그리 느껴졌다. 지혜는 임신 초기부터 유산끼가 있다는 둥의 핑계로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잦았다. 물론 칼같은 그녀답게 법에서 정한 기간을 엄수하며 제 몸을 보살폈다. 그런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지혜의 성격이 E는 더욱 밉살스러웠다. 조금 안정기에 접어들어서는 극심한 입덧 때문에 점심도 수시로 걸렀다. 만삭이 되어서는 몸이 불편하고 임당끼도 있다며 회식도 매번 불참하던 그녀. E는 그녀가 정말 유난이라고 생각했다.

E의 아기는 그의 자궁에 찰싹 달라붙어 무럭무럭 자랐다. 입덧조차 없어 평소 먹고싶던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만삭이 되어서는 오히려 집에 있으면 몸이 무겁게 느껴져 부러 회식도 잘 참여하고 주말에도 후배들과 약속 잡아 밖으로 나가고는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혜가 유난이었다.

육아도 마찬가지. E는 걱정이 없었다. 평소 아가들을 이뻐하던 E였기에 제 아기는 얼마나 더 이쁠까 싶었고, 무엇보다 친정도 제 집과 가까웠다. 육아와 일 사이에서 버둥대며 퇴사한 지혜를 비웃듯 팀원들에게 난 출산 후 3개월만 쉬고 오겠다 당당하게 선언한 E였다. 팀원들은 역시 그 누구와는 다르다며 추켜세워주었고, E는 우월감에 흠뻑 빠졌다.


한 달 전 정기검진을 받기 전만해도 E의 호언장담 출산계획은 큰 문제없었다. 담당의가 뱃속 아이의 질환을 의심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태아의 심장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임신 20주차 시행하는 정밀초음파에서도 정상으로 나왔던 아이였다. 건강하게 잘 자란다고 매 검진때마다 안심시켜주던 아이였는데, 만삭이 다 되어 심장질환이 의심된다고 했다. 이른 출산보다는 출산주수를 꽉 채워 39주~40주에 출산을 해야 예후에 좋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법, 수술여부등은 아이가 태어난 뒤에 확인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그보다 더 긴 설명을 한 듯 했으나 E는 갑작스러운 질환얘기에 이외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위풍당당 했던 출산계획이 흔들리는 듯 했다. 채팅창을 보던 E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진 이유였다.

최대한 긍정적인 상황이 되길 바라며 팀원들에게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아이는 40주에 맞춰 태어났고 치료로 완전교정이 가능한, 비교적 좋은 케이스의 심장질환으로 진단받았다. 다만 6개월까지는 대형병원의 주기적인 방문이 필요했고, 운전이 미숙한 친정엄마에게 신생아 병원방문을 맡길 수는 없을 듯 했다. 남편쪽을 보자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그렇듯 그의 회사에서 남직원의 육아휴직은 곧 퇴사였다. 별다른 도리가 없어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주일 뒤, 누군가에게 억지로 떠밀리는 기분으로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상대의 반응이 예측되는듯 예측되지 않아 미루어두었던 전화를 이제는 해야 했다. 휴직의 연장을 통보해야 했던 것이다. 전화번호부에서 팀장의 이름을 찾은 뒤 전화 걸었다. 신호음 두 번만에 통화 연결음이 멈췄다. 전화를 받은 상대방은 기척이 없었다. 숨이 막혔다.

"팀장님, 저 E대리에요. 별 일 없으시죠?"

긴장한 E의 목소리를 들은 팀장은 그제야 밝게 인사 받았다.

"어, E대리, 왠일이야. 몸은 좀 괜찮아? 우린 E대리 없어서 벌써 아주 죽을 맛이야. 얼른 돌아와."

농담으로 한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평소와 같았으면 깔깔 거렸을 그의 시덥잖은 농담. 아니, 어쩌면 농담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차분히 아이의 상태와 휴직기간 연장의 필요성을 고했다. 말없이 듣던 그의 조금은 차가워진 목소리.

"그래? 친정엄마가 가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우린 E대리가 3개월만 쉬고 온다고 알고 있어서 대체인력도 따로 안 뽑았는데."

아차 싶다. 애초에 3개월만 쓰겠다 떵떵거리지 않았다면 문제는 지금보단 작아졌을 터였다. 아이의 질환을 의심받던 때에 언질이라도 했더라면. 한 치 앞을 예상치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이제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일까.

동시에 섭섭한 마음이 스믈스믈 피어오른다. 다른 사유도 아닌 아이의 병치레 때문이기에 여태의 친밀했던 사이를 생각해서라도 비교적 흔쾌히 휴직을 허해줄 줄 알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운전이 서툴기도 하시고 아이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는 제가 돌봐야 할 것 같아서요, E의 말에 팀장은 마지못해 대답한다.

"....... 이럴 줄 알았으면 대체인력을 뽑았잖아요. 지금 팀원 전체에 피해를 입힌 건 알죠? 규정에 있는 휴직을 내가 못 쓰게 할 수는 없으니까. 알겠어요 일단. 휴직신청서 상신하세요."

딸각. 대답도 전에 전화가 끊긴다. 규정을 운운하고 마지못해 대답하며 존대를 하는 그. 지혜에게 마냥 차갑던 그의 모습이었다.



6개월의 휴직기간동안 회사는 그대로인듯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E의 대체인력으로 채용된 새로운 과장은 계약기간 만료일인 E의 복직 후에 정규직으로 전환 되었다. 팀 좌석도 재배치되었다. E의 자리였던 팀장의 옆자리는 정규직 전환된 과장이 앉게 되었고, E는 예전 지혜가 앉았던 제일 구석자리로 배정되었다. '업무 효율상' 바꾸었다는 좌석배치에 E는 지혜의 복직을 앞두고 팀장 옆으로 신나서 제 자리를 옮겼던 그 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이이잉-'

손목에 차고 있던 스마트워치가 울려 쳐다보니, E의 딸 은비의 어린이집에서 온 메시지다.


[한별 어린이집]

수족구 발생 및 주의 안내

금일 사랑반 원아 1명이 수족구로 진단받아 안내드립니다.

...... 전염이 매우 빠른 감염병으로......

...... 수족구병의 증상은 입 안과 손,발,다리 등에 수포가 발생.......

......진단 시 증상이 없어질 때 까지 가정보육을 권고드리며, 등원이 가능하다는 의사소견서......


문자를 빠르게 훑어보던 E의 눈엔 "진단 시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가정보육"이라는 문구만이 박힌다. '수족구'라는 다소 생소한 병명에 재빠르게 포털사이트 창에 검색해 보니 온 몸에 발진이 올라온 오동통한 아기들의 신체사진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다시 '수족구 증상 기간'을 쳐본다. 몸에 수포가 올라오고 가라앉는데까지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글. 벌써 숨이 막혀온다. 메시지를 다시 본다. 사랑반, 은비의 반이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해 E는 엄마의 퇴근을 반기는 딸 은비의 손발부터 훑는다. 손바닥을 펼쳐보고 발바닥을 만져본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은비에게 입을 벌려보라 요청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 길 없는 은비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칭얼댄다.

"집에 오자마자 왜 이래, 정신없게."

E와 은비를 보던 친정엄마의 채근에 E는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를 그에게도 전한다.


"난 일주일은 못 본다. 알지?"

최근 부쩍 몸이 상한 친정엄마는 요즘도 툭하면 아이 보기가 힘들다 말하던 차였다. 일주일 어쩌고를 강조하니 그도 눈치를 채고는 먼저 발을 빼는 듯 했다. 괜히 서운한 마음에 차가운 말을 내뱉고, 이어지는 작은 말다툼을 한 뒤 무거운 기분으로 엄마를 집으로 보냈다.

E보다 늦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도 얘기를 전했다. 장모님한테 부탁하면 안될까?라는 그의 말에 이번엔 친정엄마의 변호인이 되어 사정을 말한다. 나이도 있으시고, 요즘 부쩍 힘들어하셔서. 저도 요즘 바빠 하루 이상의 연차는 못 쓸 것 같다는 남편은 미리 걱정하지 말자,라는 말을 남기고는 화장실로 가버렸다. 버거워지는 육아에 숨이 막힐 듯 했다.

다음날 아침, 이유식을 먹던 은비의 혓바닥에는 수어개의 진분홍빛 수포가 맺혀있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타닥타닥


E의 주변으로 요란한 타자 소리가 들린다. 간혹 참지 못하고 터지는 웃음소리가 등 뒤에서 새어나온다. 옆자리 후배를 슬쩍 쳐다보니 키보드 위 손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뒷좌석 후배의 자리에서도, 건너편 과장의 자리에서도. E와 후배들이 함께 있던 채팅방은, 조용하다.

조금씩 달라지던 팀원들의 분위기는 은비의 수족구로 인해 3일간 내리 연차를 써야했던 E의 부재 이후 완전히 뒤바뀌어버렸다. 후배들과 수다를 주고받던 채팅방은 대화가 끊겼으며, 팀장은 이제 E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한다. 모든게 달라졌다.



"변한게 하나도 없구나."

지혜는 E의 얘기를 듣는내내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며 조금은 고소하다고 여겼다. 타닥거리는 그들만의 채팅방 존재를 지혜도 모를 리 없었다. 그들만의 수근덕거림도. 하지만 결국 바뀐것이라고는 등장인물과 그 역할뿐인 반복되는 상황을 듣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눈에 보이듯 상황이 그려졌다.

"죄송해요, 과장님. 그런 일을 겪고 나니까 과장님 생각이 제일 먼저 났어요. 제가 너무 철이 없었어요."

죄송하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E를 보니 더더욱 제가 바란 건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지혜다.

"됐어, 이미 지나간 일인걸. 누구나 그 사정이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니까."

지혜 역시 그랬다. 야근과 주말출근을 즐기던 사회 초년생시절, 정시 출근과 퇴근을 꼬박하던 선임이 이해되지 않았다. 예측 불가능하게 써대던 연차 사용도 유난처럼 느껴졌다. 초과근무가 성실도로 측정되는 것이 저에게 불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처지가 바뀌니 모든 상황이 변했다. 똑같은 업무를 해도 눈치가 보이고,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도 민폐가 되어있었다. E가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내가 해 줄수 있는 게 뭐야? 나한테 사과만 하러 온 건 아니잖아."

E는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수족구 이후 면역력이 떨어져 기운없던 은비와 병원을 다녀왔고, 담당의는 심장이 약한 은비에게 아직 단체생활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는 말. 적어도 돌이 지나기 전까지는 가정보육을 권고받은 상태에서, E는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지혜에게 의견을 구했다. 여전히 남편의 회사에서 육아휴직은 곧 퇴사이며, 친정엄마는 종일육아는 절대 할 수 없다는 현재사정과 회사에서는 딱히 의견을 구할 곳이 없다는 말과 함께.

"육아휴직 남았잖아.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3개월 썼지?"

고개를 끄덕이는 E.

"육아휴직을 일단 더 쓰는 게 어때? 어차피 팀장이 규정에는 약해. 싫은소리를 할텐데 결국 휴직 쓰는걸로 뭐라고 하진 못 할 거야. 다행히 인사팀이며 모회사 눈치는 더럽게 보는 인간이니까. 팀원도 한 명 더 뽑았다며. 지금쯤이면 회계감사도 끝났을 거 아냐, 사람 네 명이 한 번에 들러붙어 처리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아기 돌 때까지는 휴직 써. 그리고 다시 돌아가. 마음 약해지지 말고, 맡은 일은 욕 안 먹게 제대로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약속을 하라구. 그리고 버텨. 자기랑 내가 성격이 잘 안 맞기는 했어도 일은 내가 가르쳐서 또 잘 하잖아."

작게 고개 끄덕이며 긍정하는 E를 향해 지혜는 덧붙여 말한다.

"방금 자기 얘기 들어보니까, 나도 버텼어야 했다 싶어. 나라도 옆에서 버텨줬으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네. 나도 그랬거든.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가 곁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더 버틸만 하겠다. 그러다보면 정시퇴근이 당연한 날이, 내가 필요할 때는 편하게 연차쓰는 문화가 조금은 자연스러워지지 않았을까 싶네. 1:4보다야 2:3이 낫잖아. 이게 편가르기 싸움은 아니지만 말야."

지혜를 만나고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 E. E는 지혜를 향해 미소짓고는 묻는다.

"과장님, 그래도 꼴보기 싫은 저희 안 봐서 좋지 않으세요? 얼굴도 되게 좋아지신 것 같은데."

"그래? 그치, 꼴보기 싫은 사람 안 봐서 좋지. 나 여기 흰머리도 이제 안 나잖아."

너스레 떠는 지혜의 미소가 조금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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