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경력단절(1)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시금치 3,980원

햄 4,480원

우엉 3,650원

김밥용김 3,680원

흙당근(3개입) 3,480원

계란(15구) 6,490원

계 22,280원


어제 오후, 하원길에 아이 주형이 엄마가 만든 김밥 먹고 싶어,라고 스치듯 한 말을 그냥 흘려듣지 않은 지혜다.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는 타입의 아이는 아닌지라 무엇이 먹고 싶다는 말을 좀체 하지 않는데, 웬일인지 갑작스레 제 먹고 싶은걸 엄마에게 일러주던 주형이 기특해서이기도 하다.

지혜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아침운동을 마친 뒤 가벼워진 몸으로 마트에 들른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를 머릿속으로 되뇌며 장바구니에 하나씩 골라 쌓아 넣는데, 그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다. 이게 이렇게 비쌌나, 원래는 2천 원 정도면 사지 않았나, 당근가격이 이렇게나 올랐다고?

재료 하나를 뺄까도 싶지만 왠지 맛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러진 않는다. 편식하는 주형이 싫어하는 단무지는 넣지 않고, 맛살의 인공향을 싫어하는 남편 위해 그도 넣지 않으니 그나마 돈을 절약한 게 맞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2만 원 훌쩍 넘게 찍힌 영수증을 보니 심상찮은 물가에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이럴 거면 사 먹는 게 낫지 않나 싶기도.


집으로 돌아와 장본 재료들을 냉장고에 정리해 놓으며 지난 주 만났던 E를 떠올린다. 과장님, 이라 부르던 그녀의 그 호칭이 아직 지혜의 머리에 남아있다. 어느덧 지혜의 퇴사도 1년이 넘어간다.

퇴직 1년의 기간이 넘어갈 때쯤이 되니 처음 갓 퇴사를 했던 때와는 많은 것이 사뭇 달라짐을 느끼는 지혜다. 물론 그 변화의 주체는 온전히 지혜 그 자신인 듯 했다.



퇴사를 하고 난 직후에는 세상 그리 속이 시원할 수가 없었다. 눈 마주치기조차 싫었던 몇 명의 대상들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싫은 소리 하지 않으며 지낼 수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니 이게 사람 사는 날들이구나 싶었다. 서른이 되면서부터 꾸준히 앓던 위염증상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명치께가 찢어질 듯 쓰리고 삭은 오렌지주스 같은 신물이 올라오지 않는 건 이런 거였지, 실로 오랜만에 느끼던 날들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 저물녘에야 퇴근하고서도 집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곧장 육아하다 잠들던 하루하루, 운동이란 사치 그 자체였다. 운동하지 않는 체력으로 무겁디 무거운 인생의 나날을 버틸 수 있는 나이는 서른 초반 정도 까지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며 운동하지 않는 대가로 이름도 생소한 질병들을 하나씩 얻던 날들. 결국 허리 디스크가 터져버려 겸사겸사 퇴사를 행한 지혜가 수술 후 제일 신경 쓴 것도 운동이었다. 여유롭게 주형을 등원시키고 난 뒤 운동복 챙겨 필라테스 학원으로 가 1시간가량 몸에 신경을 쓰고 나면 그리 개운할 수 없었다. 아침부터 운동하는 나, 스스로를 챙기는 나,라는 알지 못할 우월감에 젖는 기분도 좋았다. 그 기분에 취해 가끔 학원 근처의 카페에 들러 따뜻한 라테 한 잔을 테이크아웃할 때는 세상 그 누구도 부러울 것 것 없는 순간이었다.

퇴사 후 무엇보다 제일 좋았던 건 마음이 급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업무시간과 마감기한을 맞추기 위해, 주형의 하원시간을 조금이라도 당기기 위해 분 단위로 머릿속으로 계획 짜고 일정 맞추던 지난 날에는 뭐든지 다급함 그 자체였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가 어찌 흘러갔는지 모르던 날들의 연속. 다 그렇게 사는 거야,라고 선배들이 말했었지만 지혜는 그리 사는 게 맞는지 의문이었다. 개버릇은 남 못주기에 여전히 계획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지혜이지만 예전의 히스테릭한 면은 많이 버린 지 꽤 되었다.

지난주에는 아들 주형의 반에서 독감이 유행이라는 심상찮은 공지가 뜨더니, 결국 주형 역시 감기에 걸려버렸었다. 다행히 독감은 아니었지만 기침끼가 좀체 가라앉지 않았는데, 연차를 어찌 쓸까 남편과 아웅대던 이전과는 다르게 오늘은 그냥 엄마랑 집에서 쉬자,라고 말하는 그 여유로움에 저도 모르게 아픈 아이를 앞에 두고 약간의 행복을 느꼈다. 그래, 내가 퇴사한 이유가 이런 거였지 싶었다.



일주일, 한 달, 반년, 그리고 1년이 지나면서 조금씩 지혜의 속내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제일 큰 아쉬움은 역시, 돈이었다.

한 달 몇 백씩 들어오던 돈이 들어오지 않으니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가장 먼저 긴축재정에 들어간 건 아무래도 저를 위한 비용이었다.

피부톤에 맞지 않는다며 천연의 검정 머리는 거부하고 흙갈색 머리를 유지해 오던 지혜였는데, 퇴사하고 나니 한 달 주기로 맞춰 진행하는 뿌리염색의 비용을 감당하기 부담스러워졌다. 오랜 고민 끝에 검은색으로 머리를 다 덮어버렸다. 커트 주기도 좀 더 길게 잡고자 아예 처음부터 귀밑까지의 단발 수준으로 짤막하게 머리를 자르고 찬찬히 어깨선정도까지 길러 다시 머리를 자르곤 했다. 몇 년 전부터 탈모가 진행되는 것 같아 긴 머리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옷장 속의 옷이 새로운 옷으로 채워지는 날들도 꽤 오래전이었다. 퇴사 한 뒤 얼마 있지 않아 기분전환 겸 샀던 흰 셔츠가 마지막 쇼핑이었던 듯하다. 사실 옷은 사지 않는 버릇하니 크게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그에 맞춰 물욕이 자연스레 수그러지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콩나물처럼 키만 웃자라나는 아들 주형의 옷만 신경 써 사들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나갈 때는 입을 옷이 없구나, 생각하는 날들이었다.

운동도 마찬가지. 수술 후 얼마 되지 않던 회복기에는 퇴직금도 있겠다, 내 몸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비싼 돈 들여 1:1 필라테스를 다녔었다. 한두 달 시간이 지나니 대충 운동이 익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운동 대비 비싼 원비의 1:1 필라테스의 비용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운동 자체의 매력은 끊지 못해 조심스레 단체그룹으로 반을 옮겼고, 수업 후 가끔 가던 카페로의 발길도 끊은 지 오래다.


퇴사했을 적보다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에 장보기도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오늘의 장보기처럼. 일 이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과일을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다 결국 매대에 놓고 오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회사를 다녔을 적 지혜였다면, 가격표 보지않고 넙죽 집어왔을테다.


슬슬 유아기에서 아동기로 넘어가는 주형의 교육비도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다. 극성맞은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남보다 뒤처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다소 모순된 지혜의 '엄마로서의 자아'가 어정쩡한 교육비 지출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학습지 하나, 운동 하나, 미술 하나. 거기다 주기적으로 사들이는 전집들까지. 하나하나로 떼어봤을 땐 부담이 아닌 것 같았지만 모아놓고 보니 꽤 큰 금액이었다. 아마 앞으로 더 커질 금액이겠지.


남편이 지혜의 소비로 잔소리를 하는 타입은 아니었고, 잔소리를 들을 만큼 지나친 소비를 하는 지혜도 아니었으며 남편의 수입이 허리 졸라맬 정도로 빠듯한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돈을 벌지 않는 입장에서 오롯이 그만 벌어오는 그 돈을 제 맘대로 쓰면 안 될 듯싶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마음 편히 돈을 쓰던, 경제적 의지가 자유롭던 예전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가끔씩 고개를 빼꼼 내밀곤 했던 것이다. 잘 지내다가도, 누가 뭐라 한 것이 아님에도, 스스로 소비를 참아가며 이 정도도 맘 놓고 못 쓰나,라는 심술과 내가 지금도 돈을 벌었더라면, 이라는 후회가 기분 나쁘게 툭 툭 튀어나왔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돈이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주체적 삶'이라든지 '진정한 나'라든지하는 다소 철학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그것이었다.

지난주 E를 만나고 온 뒤 유독 더욱 그것이 간절해졌다. 과장님, 이라 부르는 그녀의 입에서 듣던 호칭이 지혜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다. 남편보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첫 사회생활도 더 빨랐으며, 연봉도 한동안은 지혜가 우위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연봉은 뒤집어졌고, 진급도 뒤쳐졌으며, 둘 사이에는 부모의 손길을 바라는 아이가 있어 둘 중 아무나 회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건 누가보아도 지혜였다. 경제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나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오롯이 본인의 손으로 한 선택이었지만, 진정 스스로 한 선택이 맞나 싶었다. 어느순간 뒤집힌 연봉과 사회적 지위, 엄마라는 역할에 주어지는 사회적 굴레, 그에 따라 부여되는 책임감, 기대, 질책, 비난.

지금에야 엄마손이 필요한 주형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보다 현명한 선태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에는. 엄마 손이 더이상 필요치 않은 주형을 보내며 저에게 오롯이 주어진 시간들 앞에 말 그대로 단절되어버린 사회생활을 어찌 메꾸어야 할지 걱정도 앞섰다.

아이가 없었다면, 이란 생각을 하다 괜히 아들 주형에게 죄짓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세차게 젓기도 하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란 생각이 들다 우리가 꾸려온 이 작은 행복을 부인할 순 없지 싶어 부정하기도 했다.

일을 하면서도 아이를 잘 돌보는 이들을 보며 역시 나만 힘든건가, 라는 우울감이 들기도 하고 이러려고 대학까지 나왔나, 싶은 자괴감이 가끔 고개를 쳐들며 지혜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한 봉지에 들어있는 김밥용 김 10매에 딱 맞추어 김밥 10줄을 다 싼 지혜는 싸놓은 김밥을 용기에 소분해 두고서 손을 씻고 식탁에 앉는다. 썰다 남은 꼬다리 한 입 먹어보니 역시 파는 것보단 직접 싸는게 낫다 싶다.

노트북을 켜 잠시 고민. I였나, S였나, 요즘도 이 사이트를 쓰나. 지난번 인사팀에서 요즘은 이걸 써요 하던 게 있었는데... 뭔 영어였는데 아, W. 기억나는 대로 구직사이트를 검색한 지혜는 필터를 열어 제 집의 행정시로 지역을 설정하고, 경력 년수를 지정한 뒤 '정규직'버튼은 잊지 않고 표시하며 검색버튼을 누른다. 몇몇 회사가 목록에 나열된다. 천천히 쭉 훑어보던 지혜의 목에서 돌연 삭은 오렌지주스의 신물이 올라오는 기분이 느껴진다.

다시 할 수 있을까, 1년의 공백을 무어라 설명하지, 퇴직 전 연봉을 맞춰 받을 수 있으려나.

십 수년 전 처음 구직을 준비하며 수십 개의 지원서를 쓰고 거절당했던 과거를 떠올리니 지금도 그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포기하고 다시금 정신없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크다.

양손에 달콤한 사탕을 쥐고 두 쪽 다 포기할 수 없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저 뜨끈한 손에서 그것이 끈적하게 녹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욕심쟁이 어린아이가 된 심정이었다. 중심을 잡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후회하고 걱정하는 이도저도 아닌 상태, 그것이 지금 지혜의 상태였다.


지혜는 한동안 모니터를 보다, 지원서 작성 버튼을 누르다, 다시 뒤로 가기 버튼 누르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아이를 키우다 7년 만에 재취업을 했다는 대학 친구가 떠올랐다. 우연히 동네에서 마주쳐 같은 동네에 살고 있음을 반가워 한 뒤 다음에 따로 한 번 보자, 말만 하고 몇 년을 보지 못했었다. 그러다 얼마 전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전하며 아쉽다 메시지를 보냈던 그였다. 다시 일을 다닌다는 말과 함께. 그리 보자 할 땐 시간 내지 않다 결국 나 필요할 때 연락하니 조금은 이기적인가, 싶었지만 지금의 이 복잡하고 양가적인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단 생각하며 지혜는 문자를 보냈다. 나이가 드니 조금은 뻔뻔해지는 게 몇 안되는 장점인가 싶다.

이름이 뭐였더라, 짧은 고민 후에 메신저 목록에서 친구 이름을 찾아내어 해맑은 아이의 얼굴로 프로필사진을 지정해 둔 그에게 채팅을 걸었다.

"F야, 이사 잘 했어?"

keyword
이전 08화8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 수족구(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