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경력단절(2)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F

- 직업 : 기간제 근로자(공공기관 마케팅팀)

- 자녀(연령) : 여아1(8세)

- 주양육자 : 엄마(F)

- 기타 : 지혜의 대학 동창



항상 그랬다. F와 대학 동창인 지혜는 학교를 다닐 때 부터 마음을 온전히 주기에는 께름칙한 무언가가 있었다. 둘도 없는 친구인듯 하다가도 어느 순간 선을 그어 거리가 멀어지고는 했던 것이다. 졸업을 하게되면서 자연히 연락이 끊겼던,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시절인연이었다.


그러다 몇년 전, 둘은 정말 우연히 동네에서 만나게 되었다. F는 일절 연고 없는, 생각치 못한 그 곳에서 오랜 인연의 얼굴인 지혜를 마주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남편의 이직으로 상경해 주변에 친구 하나 없던 F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지혜 역시 F의 얼굴을 알아채자마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반갑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인연이, 나 여기 근처 살아, 나돈데, 서로의 안부를 묻다 지혜가 자연스레 질문했다.

"어디 아파트 사는데?"

ㄱ아파트라 이르니 지혜가 화답했다.

"아~, 난 거기 바로 건너편 ㅈ아파트 사는데. 완전 가깝다."

길 하나 건너에 있는 아파트였다. 지하철역이 있는 6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데칼코마니 찍듯 양 옆으로 있는 아파트였는데, 단지의 규모도 비슷하고 세대수도 비슷한 두 아파트는 몇몇 이유로 지혜 쪽의 아파트가 1~2억 가량 더 비쌌다. 아파트 브랜드의 차이라나, 초등학교를 품고 안 품고의 차이라나. 아주 사사로워 보였지만 부동산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F역시 웬만해선 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으나, 더 무거운 대출의 빚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차선의 선택을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파트 명을 주고받는 찰나에 서로의 재산상황을 은연중 가늠하는 그들이었다.

서로의 연락처가 바뀌지 않음을 다시금 확인하고 조만간 보자, 약속하며 헤어졌다.


일주일이 지나도 서로 연락 않던 차 먼저 메시지를 보낸 건 F였다. 지혜야 잘 지내?라고 문자 보낸 후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지혜에게서 답변이 도착했다.

"어, F야. 연락 한다는게 깜빡했네. 회의 들어갔다 나오느라 지금 문자봤어. 잘 지내제."

지혜는 아직 일을 하는구나, 당연한건가. 문자의 내용으로 지혜의 현재 상황을 어림잡아 짐작했다. 일을 하지 않은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난 F는 지금의 시간이 한창 회사에서 바쁠 시간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괜히 머쓱해져 답장했다.

"아 바쁜가보네. 나중에 시간 될 때 천천히 답장 줘도 돼."

아니야, 괜찮아. 라는 답장을 내심 기대하던 F에게 지혜는 점심시간 후 다시 메시지를 보내겠노라 짧게 답변했다.


점심시간이 지나 나른해진 오후, 설거지를 마친 F의 핸드폰에 지혜의 문자가 도착했다.

"점심 먹었나, 오후 되니까 조금 살 만하네."

지혜의 문자를 시작으로 둘은 오랜만에 정신없이 온라인 수다에 빠졌다. 결혼을 언제 했는지, 아이는 몇 살인지부터 시작해 최근의 근황까지 재미있게 이어졌다. 맞아, 지혜와 이래서 대학때 붙어다녔었지 싶던 F에게 지혜가 물어왔다.

"회사는 언제 그만 둔 거야? 집에서 애만 보기에는 니 능력이 너무 아깝다."

F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혜가 날 생각해서 그러는구나, 싶어 기분 좋게 답장했다.

"꽤 오래됐지. 환희 임신할 때부터 회사에서 눈치를 줘서 몸도 안좋아진 겸 그냥 퇴사했어."

"아 진짜? 근데 요즘 회사에서도 임신 했다고 눈치를 주나? 이상한 회사네."

"그러니까. 회사가 작아서 그런가,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임신할 때만 해도 그랬어."

"웃긴다, 그래서 노비를 해도 대감집 노비를 하라고 하나보네ㅋㅋ"

대화는 은근히 지혜의 자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F는 미묘하게 상하는 기분에 스크롤 올려 다시 대화를 복기 해 보았다. '집에서 애만 보기에는'이란 말로 자신의 선택을 얕잡아보는 것 같았고, '능력이 너무 아깝다'라는 말로 그것을 포장해 놓은 듯 했다. 임신으로 퇴사를 종용한 회사를 같이 욕 해주는 것 같다가도 결국 저처럼 큰 회사가 아닌 작은 회사를 다녀야 했던 F를 매개로 현재 자신의 삶을 만족하는 듯 했다. 빤했다. 오묘한 지혜의 화법을 오랜만에 대하니 우리의 인연이 왜 시절인연에서 끝이 났는지 새삼 깨달았다. 맞아, 지혜와 이래서 대학 이후 연락이 끊겼지 싶은 F였다.

난 일하는게 애보는 것 보다 쉽더라, 밖에서 나와 일하는게 오히려 편해, 그 아파트는 단지구성이 어때, 애 초등학교는 조금 멀겠다, 등의 은근 속 긁으며 간보는 듯 둥둥 뜬 대화를 대충 마무리지었다. 다음에 시간되면 보자는 기약없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연락은 끊겼다.



조금은 일렀던 결혼과 출산, 그로 인한 사회생활의 종료로 F는 조금씩 친구들을 멀리했었다. 아이가 갓 돌이 되었을 즈음 주변의 친구들은 각자의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꽤나 자유로워보이는 싱글생활을 즐기던 때였다. 오랜만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F의 대화주제는 핀트가 나간 듯 했다. 직장 상사 욕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열정스럽게 쏟아내는 친구들 앞에서 갓난 아기의 사진을 흐뭇하게 보여주면 싸해지던 분위기를 F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자연스레 친구들과는 멀어졌고, 아이의 엄마들과 친분을 쌓아나갔다.


아이가 6살이 되니 이제 아이가 친구의 재미를 알아나갔다. 친구와 놀고싶다 하고, 친구와 학원을 가고싶다 했다. 태어날 때부터 여지껏 한 몸처럼 붙어 육아했던 F에게 친구를 찾는 아이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딸은 다 키워놓으면 친구같아서 좋잖아요, 라는 주변인들의 말에 남 모르게 딸과의 핑크빛 미래를 꿈꾸었던 F에게 6세 딸의 우정은 질투 비슷한 것이었다. 친구같은 엄마보다야 진짜 친구가 좋은 건 당연지사였다.

오롯이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던 F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집중하던 삶에서 아이는 언젠가,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리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F의 재취업준비는 그렇게 사사로운 이유로 시작되었다.


이른 퇴사로 경력이 얼마되지 않았다. 인정받을만한 좋은 회사를 나온 것도 아니었다. 경력은 단절되었으며, 나이는 들어버렸다. 어느새에 이렇게나 시간이 흘러버렸나 이력서 앞에 서니 문득 빠르게 지난 시간들이 속절없었다.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시간만 흘렀다. 육아의 경력은, 당연히 어느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용기를 내 조건이 맞는 곳에 이력서를 넣어보았다. 꽤 큰 용기를 가지고, 내심 희망을 품고. 2주 후 '귀하의 역량은 우수하나...'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서류 탈락의 회신을 받으며 수 년전 취업준비시절을 다시 떠올렸다. 그제야 그 당시에도 취업은 쉬운 게 아니었음을 떠올렸다.

일말의 희망이 옅어짐을 느껴 왠만한 조건만 맞는다면 이력서를 모두 넣어보았다. 수십개의 이력서 중 한 군데에서 회신이 와 면접의 기회가 생겼다.

왜 퇴사하셨나요, 경력 공백이 긴데 어떻게 채우실 건가요, 공백기간 동안에는 뭘 하셨나요, 아 육아만 하셨다구요, 입사하신다면 팀의 상급자 대부분이 지원자분보다 어릴텐데 어떻게 대처하실건가요, 연봉은 기재하신대로 맞춰드릴 순 없을 것 같은데 어떤 기준으로 작성하신거죠.

면접 직후 탈락을 예감할 수 있었다. 운이 좋게 면접에 통과한다해도 그 곳에서의 회사생활은 쉽지 않을 듯 했다.

3일 후, 탈락메일을 받았다.


이후에도 몇 번의 면접이 있었지만 이전의 면접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면접관이 보다 친절한가, 아닌가의 차이였다. 알맹이는 비슷했다.

'경력 단절'이라는 단어가 F를 더욱 막아서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서류탈락과 면접경험은 F가 그 단어를 혐오하게끔 만들었다. 애초에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프레임화시켜 사회진입을 되려 가로막고 있는 듯 했다. 떡집에서 경단만 봐도 치가 떨리는 F였다.


정규직에서 기간제로 기준을 낮추었다. 그랬더니 조금 더 문이 열렸고 연령제한의 문턱이 비교적 낮은 공공기관쪽으로 눈을 돌려 관련 입사공부를 시작했다. 여러번의 시도 끝에 결국 F는 공공기관의 2년 계약 기간제근로자로 입사할 수 있었다. 정규직 전환 조건은 아닙니다, 라고 인사팀에서 3번이나 못을 박았지만 F는 상관없었다. 몇 번의 낙방 끝에 이젠 짧은 이력서에 뭐라도 더 써놓아야지 싶기도 했고, 경력을 이어가고 싶은 의지와 계약이 끝난 이후는 그 이후에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 7년 전 신입시절 받았던 연봉보다 낮은 대우였지만, 그도 일단은 눈 감아야했다.

남편은 F가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내심 기뻐하는 듯 하다, 생각보다 낮은 급여조건에 실망하는 듯 했다. 이게 현실이야, 라는 F의 말에 꼭 그렇게까지 일을 해야겠어?라 되물었다. F는 그렇게까지라도 일을 하고 싶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전 직장생활을 돌이켜봐도 그랬다. 회사에서 일은 그리 힘들지 않다. 사람이 힘들 뿐.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서그런지 욕심이 크지 않아 그런것인지 모든 일이 예전보다 무던해 회사생활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지혜 말이 일부는 맞았다. 육아보다는 회사생활이 좀 더 쉬운 듯 했다. 딸의 하원은 육아도우미를 구했고, 딸 역시 엄마의 회사생활에 크게 슬퍼하진 않았다. 이럴 때면 어렸을 적 곁에 있어주길 잘했나 싶기도 한 F였다.


지혜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운 F다. 분명 무언가 저가 필요한게 있어 먼저 보자 연락했을텐데 무얼까 생각하며 약속장소를 향해 걸었다.

끊어야 할 인연은 끊어야되는데, 무른 자신의 성격을 탓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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