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맹모삼천지교(1)

반(半)픽션 <슈퍼맨은 없다_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는 진짜 이유>

by 융글

1. 이름 : F

- 직업 : 기간제 근로자(공공기관 마케팅팀)

- 자녀(연령) : 여아1(8세)

- 주양육자 : 엄마(F)

- 기타 : 지혜의 대학 동창



어림잡아 풀봇장만큼 큰 크기의 트램펄린 위에서 사이키조명이 반짝거리고 아이들이 요즘 제일로 좋아한다는 여자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온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조명 아래에서 어른키의 반 만한 아이들이 트램펄린을 제각기 뛰어다닌다. 에어컨 시원하게 불어오는 공간에서도 작은 얼굴들의 이마는 땀에 흠뻑 젖어 머리카락이 대중없이 들러붙어 있다.

"꼭 어른들 클럽 같네."

아이의 엄마 중 한 명의 말에 함께 있던 나머지 셋은 웃음이 터졌다.


딸 환희의 유치원 여름방학을 맞이해 딱히 할 것이 없던 차, 딸의 친구 엄마로부터 별다른 일정이 없다면 키즈카페에 같이 가지 않겠냐 문자가 왔다. 극성수기에 어디를 가도 돈이 심심찮게 깨질 것으로 예상되어 어디도 못 가고 있던 때에 반가운 문자였다. 엄마들과의 모임은 신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가 더 누적되는 느낌이었기에 종종 피하던 F였지만, 하루종일 딸과 붙어 있어야 하는 여름방학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딸과 떨어져 있을 수만 있다면야 어디든 갈 기세였다.


3년을 다닌 유치원이었기에 오며 가며 엄마들과 눈인사는 종종 했었고, 한 두 번 정도 지금과 같이 키즈카페에 동행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도 있었고, 매일같이 보는 이도 있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어디 안 가셨네요, 어딜 가든 사람이 많아서요, 그렇죠 등등의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이미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엄마에게서 저만치 떨어져 그들만의 유흥을 즐기고 있었다. 딸과 떨어져 시원한 커피를 먹을 수 있게 된 시간에, 키즈카페를 처음 만든 이가 누구인지 몰라도 감사하는 F였다.


날씨 이야기와 동네 이야기, 유치원 이야기를 나누다 이내 제 아이들의 이야기로 주제가 잡혔다. 도통 공통분모가 없는 네 사람이 모여서 할 이야기라고는 결국 아이들 이야기였다.

"민서는 그림을 너무 잘 그리더라고요. 저번에 정운이가 민서한테서 편지를 받아왔는데 글씨도 너무 예쁘고 그림도 잘 그려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정운의 엄마가 민서를 칭찬하자 민서 엄마는 아유 아니에요, 여자애라서 그래요. 라며 겸손으로 답했다. 손재주가 좋은 딸이 뿌듯했지만 대놓고 자랑할 수는 없기에. 다른 엄마들이 정말요?라고 호응하니 정운의 엄마가 원래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는 듯 물었다.

"어디 미술학원 다녀요? 저번에 미술학원 다닌다고 했었던 것 같아서. 정운이도 학교 가기 전에는 사람이라도 제대로 그리고 가야 될 것 같은데."

민서엄마는 큰 정보는 아니라는 식으로 미술학원을 알려주었고, 정운의 엄마와 유찬의 엄마는 핸드폰 메모장에 그가 일러주는 미술학원의 이름을 입력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의 엄마 넷은 이내 이를 대화의 주제로 잡았다. 각자가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차,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과 고민도 나누고 같이 흔들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혼자만 흔들린다면 억울하니까. 그러다 민서엄마가 조심스레 말했다.

"안 그래도 저희 다다음달에 이사 가요."

갑작스러운 선언에 F를 비롯한 엄마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디로요? 모두가 궁금해하던 것을 F가 대표로 물었다.

"아, ㅂ구로요. 애 아빠 회사랑도 더 가깝고, 아무래도 학교 때문에......."

아무래도 학교 때문에 이사 간다는 그 학교에 다녀야 할 나머지 셋의 엄마들은 조금은 벙찐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낸다는 생각에 연대감 비슷한 그 무엇이 있었는데 조금은 배신당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ㅂ구는 행정구역상 'ㅅ'시에 속하는데, 'ㅂ'구의 구민들은 그 시에 속하는 다른 구들과 차별을 두듯 '시'단위가 아닌 '구'단위로 그들 스스로를 지칭했다. 그런 지역들은 서울 주변에 몇 군데 더 있었다. 'ㄱ'시 'ㅇ'구라든지, 'ㅇ'시 'ㅅ'구 라든지. 이해할 듯 못할듯한 그들만의 문화였다. 그것이 그들의 프라이드였다.

곧 다다음달 ㅂ구의 구민이 될 민서의 엄마도 그랬다. 한 번도 ㅅ시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화 내내 ㅂ구를 유독 더 강조했다.

"아무래도 학교를 계속 보낼 생각을 하니까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를 해야겠더라고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군이 중요하기도 하고, 나중에 이사가긴 더 힘들어질테니까."

민서엄마의 말에 유찬, 정운엄마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 정운엄마가 한숨 쉬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안 그래도 저도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애 아빠 회사가 서울이기도 하고, 시댁도 그쪽에 있어서 고민 중이었는데. 지난주에 집을 보러 다녀왔는데 정운이 어렸을 때보다 집값이 많이도 올랐더라고요. 여기 집을 팔고 전세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도 되고."

원치 않던 남의 가정의 재산상황까지 들으며 F는 이게 맞나 싶었다. 왠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저가 뒤처지는 것 같고, 아이의 교육에 무심한 것 같았으며, 능력이 없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윤찬의 엄마 역시 같은 마음이었는지 이사얘기가 나온 뒤부터는 커피잔의 얼음만 빨대로 뒤적거리고 있었다.



"뭐 봐?"

딸을 재우고 거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뒤적이는 F에게 남편이 다가와 물었다.

"아니, 그냥."

남편은 F의 핸드폰 화면을 흘끗 쳐다보더니 놀란 듯 다시 물었다.

"부동산 어플? 왠일로?"

F는 약간 얼굴이 붉어지며 오늘 낮에 있었던 일들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남편이 의외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나도 이사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어."

남편이? 환희 학습지만 시켜도 벌써부터 애 잡을 일 있냐고 핀잔만 줬던 내 남편이? F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남편을 쳐다보았다. 남편 역시 그런 F의 눈길을 읽었는지 조금은 머쓱해하며 말했다.

"아니, 환희도 환희인데. 봐봐, 우리가 여기 7년 전에 집 샀을 때 가격이랑, 여기 ㅂ구 가격이랑 보면 크게 차이가 안 난단 말이야. 근데 지금 봐봐. 이만큼이나 벌어졌어. 우리 집이 떨어질 땐 더 크게 떨어지고, 오를 땐 더 작게 올랐던 거야."

남편은 손가락으로 능숙하게 부동산 거래 시세 차트를 이리저리 눌러가며 F에게 보여주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의 말이 맞았다. 만약 우리가 그때 이 집이 아닌 ㅂ구의 집을 샀더라면...

지금 F의 집도 7년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매매가가 많이 올라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인 것인지, 자신이 얻은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듯 F와 남편은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이 집을 샀던 금액으로는 지금의 동네에 어떤 집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남편은 남편 나름대로 회사에서 부동산 투자에 성공했다는 동료 직원들을 보면서 배가 살살 아팠던 모양이다. 기회가 왔을 때 최적의 결정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그 이후로 짬짬이 부동산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이 깨우치게 된 것이 있다 했다.

"결국은 학군이야. 집이 쓰러져 넘어갈 것 같아도 학군이 잘 조성되어 있으면 수요는 항상 충분한 거지. 집의 허울은 중요하지 않아. 대형 쇼핑몰이니 철도역 건설이니 하는 호재도 중요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건, 결국 학군이야."

남편이 이렇게 학군에 푹 빠져 있을 줄 몰랐다. 여태 어떻게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남편은 열에 올라 학군의 중요성을 F에게 설파했다.

딸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F의 욕망과 학군지의 부동산에 대한 남편의 믿음이 합쳐져 그들은 당장 그 주 주말, 임장 일정을 잡았다. 무서우리만큼 한치의 망설임 없는 선택이었다.



ㅂ구의 아파트들은 F동네의 신도시 아파트보다 낮은 키에, 단지도 오밀조밀했다. 지상에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자니 숨이 턱 막혔다. 어떻게 빠져나가야 될지 도통 각이 서질 않게 주차된 차들도 있었다. 아파트의 겉면은 새로 도장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예상보다 말끔한 모습이었지만, 입구로 들어가니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금 보실 집은 인테리어가 안 되어있어요. 여기서 쭉 사시다가 귀향하셔서 집을 파신다는 노부부댁이거든요. 대신 가격이 좀 싸게 나왔으니까 감안해서 보시면 될 거예요. 이 집 아들딸들이 다 좋은 대학에, 좋은 회사에 취업했어요. 기운이 좋은 집이예요."

부동산 중개인의 말에 걱정반 기대반으로 문을 열어 입장했다.


"엄마, 나 여기 싫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마자 임장에 동행한 환희가 소리치듯 내뱉었다. F는 환희의 입을 손으로 막고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는 험상궂은 표정을 딸에게 지어 보였다. 그제야 딸은 입을 삐죽거리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다 딸아, 싶은 F였다. 흐리멍덩한 벽지에 촌스러운 바닥재, 문틀이며 손잡이, 스위치까지 어디 하나 누렇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과거 어떤 연도로 응답하는 드라마의 세트장 같기도 했다. 더럽고 험하게 사용된 집은 아니었지만, 자연히 흐른 세월의 흔적은 피할 수 없었다. 화장실에서는 녹물이 나올 듯했고, 주방은 제 기능을 할 것 같지 않았다.

집 잘 봤습니다, 인사치레 하며 문을 닫고 나오니 부동산중개인 역시 눈치가 보였는지 말을 더했다.

"집 상태가 지금은 좀 이래도, 인테리어 싹 하시면 완전 다른 집이 되실 거예요. 요즘은 인테리어도 정말 멋지게 하시면서 사시더라고요. 오히려 어정쩡하게 수선된 집보다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어쩐지 남편은 그 말을 온전히 신뢰하는 눈치였고, 들뜬 표정이었다. 얼마라고 그랬죠?라는 물음에 부동산중개인은 지금의 집보다 몇 억 비싼 금액을 말했다. F는 다시 한번 놀랐고, 남편은 고개 끄덕였다.


다음 보게 된 집은 3년 전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왔다는 집이었다. 일부러 오래된 집을 처음 보여주고 지금 집을 나중에 보여줬구나 싶게 이전 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말끔한 모습이었다. F는 마음에 들어 딸을 돌아보고 어때? 라 물으니, 그 역시 마음에 들었는지 튀어나온 입이 조금 들어간 모습으로 코 벌름대며 웃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집은 먼저 본 집보다 다시 1억 가까이 더 비쌌다. 같은 평수의 비슷한 층, 위치임에도 왜 그리 가격차이가 큰 것인지 묻자 중개인은 당연하다는 듯 인테리어값 아니겠냐고 대답했다.


남편과 둘이 바짝 일해 모아도 몇 년은 걸려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이대로 정말 이사를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지금 사는 집도 부족하진 않은데, 싶은 F의 눈에 이사 갈 집에서 방을 어떻게 꾸밀지 그림 그리고 있는 딸 환희의 모습이 들어왔다. ㅂ구로 이사가요, 라고 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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