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는 이스탄불의 상징이다. 아니 적어도 나 같은 여행 성애자들에게는 프랑스는 에펠탑, 이집트는 피라미드라면 터키는 아야 소피아다. 둥근 지붕과 양옆으로 뾰족하게 솟은 미나렛은 이슬람 모스크와 비슷한 모양새다. 빛바랜 외벽으로 서로 색이 다른 미나렛과 서있는 아야 소피아는 눈으로 휙휙 훑기만 하는 눈팅 관광객에게는 한없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얗게 빛나는 외벽에 푸른색 지붕과 황금빛으로 장식된 맞은편 블루 모스크에 비하면 말이다. 누군가 나에게 '블루모스크가 더 멋있는데?'라고 한다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반사신경으로 반박할 것이다. '모르는 소리.'라고. 이래 봬도 아야 소피아는 '비잔틴 건축 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찬사를 받는다.
[미나렛은 이슬람 모스크에 있는 높은 첨탑이다.]
아야 소피아는 동로마 제국 때 성당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당의 모습과 다르다. 지붕 위에 얹은 거대한 돔의 무게를 버티기 위한 아야 소피아의 독특한 건축 구조 때문이기도 하고 성당으로 지어진 이후 이슬람 모스크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추가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런 희소성 있는 특징들은 아야 소피아를 둘도 없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만들었다. 아름다운 아야 소피아는 소위 말하는 얼굴값을 해왔다. 민란과 지진으로 보수를 거듭하고 세 번째 지어졌을 때 황제를 육성으로 감탄하게 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점령한 뒤에는 미나렛과 회당을 추가해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됐다. '패배한 제국의 종교적 상징을 승리한 제국이 바꾼 것뿐인데 이게 왜 얼굴값이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건 어떨까? 몇 년 전 내가 처음 들어갔던 아야 소피아의 내부에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탄생, 세례 요한 등 정교회적인 의미의 비잔틴 모자이크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도 이슬람의 신 알라와 칼리프를 상징하는 장식과 코란의 문구를 아랍어로 새긴 회벽과 함께. 절에 있는 십자가, 교회에 있는 불상 같은 부조화인데 왜 완벽히 없애지 않은 것일까. 오스만 제국의 마흐메트 2세는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모든 병사들에게 4일간의 이스탄불 약탈을 허락했다. 하지만 아야 소피아만큼은 약탈을 허락하지 않았다. 마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 점령 직후 아야 소피아의 내부를 보며 감탄했기 때문이다. 아야 소피아만 약탈을 허락하지 않은 이유도 타 종교의 상징이었던 아야 소피아를 부시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한 채 모스크로 개조한 이유도 종교적 의미를 초월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터키 공화국 건국 후 1930년대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박물관으로 변화한 아야 소피아를 보기 위해 한해 400만 명의 사람들은 이스탄불로 모여들었고 지금은 여행자를 비롯한 각국의 무슬림들이 오고 있다. 아야 소피아는 1500년 넘게 얼굴값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아야 소피아는 한 번 더 역사적인 변화를 겪는 중이다. 터키 공화국 건국 후 박물관이었다가 몇 달 전 다시 이슬람 모스크로 전환되었고 오늘 내가 서있었던 아야 소피아 역시 이슬람 모스크다. 새벽 파즈르, 정오 주흐르, 오후 3시쯤의 아스르, 일몰 직후의 마그립, 밤 혹은 자기 전의 이샤 이렇게 하루 다섯 번의 이슬람 기도 시간에는 무슬림만 출입이 가능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기도 시간 외에만 출입이 가능했고 박물관 때와는 다르게 입장료가 없어졌다. 정교하고 아름다운 비잔틴 모자이크가 많았던 2층은 통제되고 이슬람 외 타 종교를 의미하는 요소들은 천으로 가려졌다. 출입구는 남자와 여자가 따로 구분되어 있었고 1층 앞쪽으로는 이슬람 메카를 향해 기도하기 위한 단상들이 놓였다. 이렇게 이슬람 모스크로 확실하게 종교적 선이 그어지면서 두 종교가 공존했던 아야 소피아 만의 묘하고 매력적인 분위기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시소처럼 이제는 한 종교의 상징으로 변화 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종교적 대립 그 외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는 어떠한 갈등에도 아야 소피아만큼은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름답고 웅장한 이 모습 그대로 이길 바란다. 높은 천장으로부터 늘어진 오래된 샹들리에의 노란 조명에 빛나는 웅장함은 종교를 넘어선 걸작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리고 아야 소피아의 아름다움은 가려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동로마 제국 때는 성당으로 오스만 제국 때는 모스크로 터키 공화국 때는 박물관으로 그리고 지금 다시 모스크로 변화 중인 아야 소피아는 역사적으로 여러 번 변화했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다. 나는 아야 소피아가 변화 중인 그 역사적인 현장에 서 있었다. 설레고 벅찼다. 여러 번의 변화를 견디고 다시 변화 중인 아야 소피아의 가치는 여전했고 변화 속에서도 변함없었다.
터키의 전통 악기 사즈소리 가득한 술탄의 노래[Turkish Ottoman Music]와 함께 아야 소피아의 빛바랬지만 빛나는 아름다움을 느끼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