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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Jan 05. 2021

여행은 떠남이 아닐 수도 있어

착각

 주변 사람들이 그리고 가족들이 멀쩡한 직장을 왜 갑자기 그만두었냐고 물었을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거기보다 더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야지.' 대학 졸업 후 일을 하면서 나름 직장생활에 적응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마지막 퇴사 이유는 이렇다.

'부적응.'


 매번 주변 사람, 가족에게 말했던 이유도 실업급여에 적었던 실업급여 수급에 해당했던 사유도 아니었다. 성실하다고 말해주는 몇몇 주변 사람들 때문에 그리고 계약이 끝나면 때맞춰 생기던 더 좋은 조건의 직장에 아주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퇴사 후 상사의 눈치와 일, 주,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쭉 늘어선 업무도 없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자유롭다는 해방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고 '나는 졌다'라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노력하지 않았고 나태하게 방황했다. 여느 때와 같이 폰에 빠져 잡생각에 젖어 있던 어느 날 우연히 항공권 예매 어플을 눌렀고 검색 기록은 인천에서 터키로 가는 여정이었다. 낮은 가격 순으로 항공권이 나열된 손바닥 만한 화면을 보면서 그대로 누워 고민했고 고민의 결과는 '가보자.'였다.    


 첫 번째로 부적응이란 깨달음이 두 번째는 여행에 대한 갈증이 마지막 세 번째는 지난 여행 터키를 지나쳤던 아쉬움이 '터키로 가도 돼.'라는 말의 동기가 되었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이 명분이 되었다. 여행 전 비행기 표를 예매하는 것, 배낭을 싸는 것, 가봐야 할 곳을 나열하는 것은 깃털만큼 가벼운 주머니 사정도 잊게 했다. 물론 친구들은 말했다. 우리의 나이와 안정적인 삶의 필요성 대해. 하지만 나의 고삐는 풀어질 대로 풀어졌고 붕 뜬 마음은 이미 12시간을 날아 아야 소피아의 높은 천장 아래에 서 있었다.

 

 애초에 나는 무언갈 깨닫기 위해서 혹은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길에 대한 깨달음도 '부적응'에 대한 답도 여행의 이유가 아니다. 정확히 언제부터라고 콕 찍어서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나 자신이 여행 자체를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배낭을 싸는 이유가 됐다. '왜 그렇게 여행을 가는 거야?'라고 묻는 사람도 꽤 있다. 어떤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으로 또 어떤 사람은 부럽다는 눈빛으로. 내가 여행을 그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걸 알기 전에는 남이 이해할만한 이유나 나름의 멋진 이유를 찾아 대답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난 후에는 머리를 굴려가며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았고 대답도 간단했다. '좋아서.' 여행의 이유가 단지 그 '좋아서.'가 되고 나서 진짜 여행 성애자가 됐던 것 같다.

 

 여행 성애자의 밤은 몇 배 더 설렌다. 그 두근거림과 기대 때문에 첫 해외 배낭여행과 그 후 몇 번의 여행에서 빼먹은 무언갈 여행 중간에 알게 되어 고생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생긴 습관이 비행기 표 예매와 동시에 모든 짐을 꾸리고 여러 번 확인하는 것. 습관은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출국 전날 마지막으로 확인한 가지고 가야 할 것들에 등을 기대고 누워 두고 가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돌아오면 뭘 해야 하지?' 하는 미래에 대한 앞선 걱정들, 넉넉하지 않은 여행경비에 대한 불안, 내가 돌아올 날만 기다릴 가족, 문득 내 생각을 하게 될 친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떠나는 도망자로 보는 듯한 시선들.

 

 이 모든 걸 출국 전에 전부 두고 왔다고 생각했다. 딸깍 소리 몇 번이면 간직하고 싶은 것만 간직할 수 있는 컴퓨터라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성애자 이전에 사람이기에 두고 오지 않은 한 가지가 몇 년 만에 다시 마시는 차이를 앞에 두고 떠올랐다.

'떠나는 도망자로 보는 시선'

 내 여행 계획을 듣고 찌푸렸던 미간, 좌우로 흔들렸던 고개, 니 인생이니 나는 모르겠다던 표정들이 이마 위 허공에 날아왔다. 그리곤 '진짜 도망 온 건가?'라는 머릿속 질문이 잇따라 날아왔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난 지금 돌아온 거야.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시간 속으로.'

 맞다. 나는 돌아왔고 지금 터키 이스탄불 아야 소피아의 높은 천장 아래 일주일 전 먼저 떠났던 고삐 풀린 내 마음과 함께 서있다.


나의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돌아감이었다.


 나는 지금 잊혀지고 있던 쿠바 음악의 부활, 쿠바의 상징과도 같은 Buena Vista Social Club의 잔잔하고 애잔하지만 웅장한 노래 Chan Chan을 듣고 있다. 어딘가를 지나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면 들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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