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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13. 2020

기차에서의 명상

20200212

물과 물고기는 서로 필요하다  
물은 물고기를 자라게 하고

물고기는 물 속에 잔물결을 만들어

빛이 나게 한다
물이 물로써 존재하지 않을 때

물고기가 물고기로써 존재하지 않을 때
서로 고통의 바다가 되어 우주를 채운다.
그러나 이 또한 maya(환상)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존재들은 서로 영혼과 영혼으로

맞닿아 만나며
찰나에 서로 확인한다
부드러워지고 하얗게 빛이 난다
알을 뚫고 나와 흰 공작새로 탄생하는

빛의 노래
수 많은 깃털의 방향은

모두 눈깜짝할 사이, 안으로 수렴된다
조용히 걷는 일로

제 할 일을 다 하는 하얀 존재
통곡의 계곡을 지나서
우리는 자신 안의 흰 새를 만난다
수만 가지의 색채

투명한 빛의 산란

가장 연약한 동물의

촘촘하고 여린 솜털을 만져보자
그곳에 영혼의 비밀이 있다
우리 존재가 얼마나 촘촘하고 빼곡하게

우주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지
유순한 목련의 봉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아도 알 수 있다.
흑갈빛 꽃잎이 땅 아래로

하나 둘 떨어질 때
꽃의 처음과 끝은

인내 속에 여리게 피어났다 지고
존재가 피어나는 시간
그 임박한 때 봉우리를 올려 늦게 지는 꽃과 일순간 만개하는 매화를 본다
그들 존재의 깨어남엔 시간 또한

둥근 환상이다

가벼운 포옹 속에서
존재의 눈을 뜬 자들은

일치되고 감흥하여

오롯이 그 순간을 기뻐한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존재의 맑은 눈을 서로 바라보는 것은

태초의 신비이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창조되고 탄생하므로
눈을 감고 손을 뻗어 악수를 하자
우리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maya(환상)의 술래잡기 속에서

깨어나자
모든 시간들이 부드러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우주 속
 
투명한 태초의 눈 뜸
환희의 순간을 지켜보게 된다

죽어야 다시 살 수 있는 우리
매일 새롭게 태어나며
세계를 부수고 일어난다





+

숟가락으로 꽃밥을 떠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하얀 쌀밥 위에 얹어진 꽃들

나는 자각몽의 상태로 입을 열어 한입 먹었다 달콤한 공기가 입안에서 부서졌다  


+

나는 우리들이 수천수만번

만났다 헤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칼이 세개 꽂힌 성스러운 심장을 보았다

나는 그것이 꽃잎으로 변하는 마법을 봤다

하늘에서 다이아몬드 비가 정수리에 내린다

우리는 모두 눈뜰 수 없을 만큼 빛이 난다

빛이 난다... 그 눈 안에서 빛이 난다

그리고 또 빛나는 존재들이 태어난다

빛나는 존재들은 모두를 빛으로

전염시키는 천사들이다

가장 나중의 빛을 다시

태초의 빛으로 만드는 신비


+

우리가 모두 연약할 때를 보았다

솜털이 부모의 입김이 바람이 되어

부드러운 청보리를 쓸어내린다

당신의 음성은 청보리밭에서 부는 바람소리로 내게 온다


+

임박한 영혼의 도착

나는 결국 하얗게 사라진다


+

다시 태어난다


+

여자도 남자도 아닌

태초의 보이지 않는 원 안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다시 폭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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