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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 우물 Feb 22. 2020

다섯 번째 아이들

202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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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터, 화장품 사기.

아이패드 비교.


요리.

명상.

잠잠 깊은 잠.


꿈에 어느 의사가 나왔다. 해가 뜰 무렵 새벽. 가장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그 치유의 숲에... 다양한 환자들을 데리고 왔다.

도리스 레싱의 다섯 번째 아이가 갇힐 뻔 한 시설에 있는 존재들처럼. 신체의 어느 부분들이 결핍된. 목과 머리만 남아있지만 생각하고 말하는 존재들도 여럿 누워 풀밭에 있었다. 일본인과 중국인도 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고 그들을 모두 지나서 의사에게 갔다. 의사는 우리가 전부터 간간히 연락을 하고 지냈다고 했고  난 가까스로 기억해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의 초대에 그렇게 대규모로 응할 줄은 몰랐던 것. 그들은 자연 속에서 치유의 에너지를 가득 받고 있었고, 나는 회사 사람들이 나와서 이 광경을 보면 무단침입이라고 신고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걱정을 한편으로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이 곳이 그들과 같은 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걸 떠올렸고... 꿈을 깼다.

예전에 R과 경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던가... 맥도널드에서 안면기형 어린이들이 잔뜩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그날 그들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 상상할 수 없었던 형체였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놀라서 자리를 떴다. 가슴이 아팠고. 나와 R만 남아 그들과 묵묵히 셰이크와 감자튀김을 먹었다. R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무섭고 서럽고 슬펐다. 그 아이들은 모두 부모에게 버림을 받아 시설에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 마음이 여행 내내 남아있는 어리석음도 있었다. 그런 내 곁에서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던 사람이 있어 그때는 참 다행이었다. 그 이후에 도리스 레싱의 소설을 읽었다. 그리고 이란 감독이자 시인.. 파로흐허저드의 ‘검은 집’이라는 다큐를 보았다. 저 일련의 사건들 모두에 하나로 관통하는 아름다움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생각했다.

그 후 시간이 흘러 다큐작가 할 때 아프리카 남수단의 오지로 가서 한센병 환자들과 손을 잡고 안았다. 죽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온전했고 두려움은 사라졌다. 심지어 다리가 없어도 온몸으로 기어 와서 노래를 부르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느꼈고 나의 부족을 느끼고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두려움이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던 것들이었다. 신체의 어느 부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영혼이 맞닿은 사람들과의 영원한 결별... 모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이들은 여전히 기억 속에 살아있다. 누세대에 걸쳐 이어져온 역사처럼. 그들과 나눈 어떤 시간들을 나는 소중한 선물로 알고 기릴 것이다.

고통은 결국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마음은 내 의지로 버릴 수도 지닐 수도 있는 것. 나는 두려움을 버린 뒤부터 눈물이 많이 나지 않게 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그냥 이유 없는 눈물은 존재한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어제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도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건 좋은 눈물이라고. 영혼의 감응이므로.


어제 동생에게 나의 비상식량칸을 열어서 소중한 ㅎ 비상식량을 조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참크래커와 에너지바를 먹었다 했다. 동생은 이상하다거나 따지거나 나무라지 않고 ㅎ 참 재밌게 사네  라고 해서 고마웠다.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동생은 뭘 참 많이 하네.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안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고 그걸 표현하는 게 그냥 내 일이라고.

나 늘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잘 살 거라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내가 사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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