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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은 Apr 16. 2024

우울을 고백하는 우울

병원을 다닌다, 내 병을 꽤 고상한 질병처럼 포장하기 딱 좋은 표현이다.

    “그래서, 왜 아팠던 건데”

    칵테일 두 잔, 그리고 안주 하나를 시키고서 너는, 바로 본론을 물었다. 학창시절 내가 아팠었다는 말에 설명을 구하는 질문이었다.

    “진짜 마음이 아팠는데”

    짧은 대답 후로 나는 피식, 했다. 그리고는 정적. 


    이 정적마저 너는 편안하게 느껴줄지 궁금했다. 나는 어느순간부터 사람을 볼 때 즐거운 순간보다 잔잔한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웃음 소리가 커다란 만남보다 정적이 가벼운 만남이 좋다고. 너는 나와의 정적을 사랑해줄 수 있겠니.


    무슨 말을 해야할까 고민했지만 굳이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다. 내 앞에 놓인 칵테일을 쪽, 빨아들였고, 칵테일은 나름대로 달달하고 씁쓸했다. 그대로 적막했다.


    “중고등학교때, 아팠어.”

    어느 순간에 가득 차오른 말 하나를 툭, 뱉었다.


    음, 너는 끄덕였다. 내게는 강박이 있었다고. 1분 1초의 단위로 채워넣지 않으면, 바람이 빠지는 풍선처럼 사방으로 튀며 추락하던 시절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울증이 왔어. 언젠가부터는 공황도 있었고. 밤이 그렇게 길더라. 그래도 입시가 끝날 때까지는 입시가 더 힘들어서 버틸만 했는데, 대학교 와서는 끝없이 가라앉을 때가 있었어.”


    정말이지 사람의 기억은 우습다. 슬프다기보다 ‘무’에 가까운 텅 빈 가슴이 고통스러워 집어 뜯던 여러 새벽들을 이렇게 자기소개처럼 가볍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까지 1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나를 소개할 말이 그것 외에 사라져 간다는 방증일지도 몰랐다. 어느쪽이든 꽤 안타까웠다.


    조금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아 그래?’, 대답할 필요없는 너의 되물음. 그리고 끄덕임. 너의 표정을 마주하기를 포기한 채 내리깔은 나의 두 눈. 그리고 나를 응시하는 너의 두 눈.

    

    “어떻게 극복했는데?”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너의 마음이 그대로였으면. 아니 더 불어났으면. 그리고 사라지지 말았으면.

    “병원을 다녔어. 약을 먹고, 조금씩 이겨냈고. 지금도 병원을 다니고.”

    

    병원을 다닌다. 그 말은 나의 정신병을 꽤나 고상한 질병처럼 포장하기 딱 적합한 표현이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고, 술이든 담배든 마약이든, 아니면 남자든, 뭐든 좋으니 나의 우적한 고통을 멈춰주면 좋겠다고, 방울방울 눈물을 떨구며 악을 쓰다 정신을 차려 병원을 예약하고, 병원에 도착해서 의사를 만나기 직전까지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수없이 고민하고 애를 먹다 겨우 내 침전을 토해내는 일. 우리는 ‘병원을 다닌다’는 피상적이고 고리타분한 표현으로, 질병의 모든 우중충한 내면을 사포로 갈아버린다. 내 아픔의 겨우 매끈해진 단면을 보고도 너는 내게서 도망치고 싶을까.


    “그런데 약이 효과가 있어?”

    잠깐의 정적을 지우고, 뜻밖에도 너의 물음은 그러했다.


    “나도 입시할 때 먹어봤는데, 잘 모르겠던데.”

    너도 약을 먹어보았다고 한다. 항우울제를. 


    “응 그럼. 효과가 있지.”

    대답은 지체없이 분명했다. 나에게는 그 조그만, 또 납작한 단추들이 유일한 탈출구였는데, 삶의 일시정지 버튼이었다고...

    “그렇구나, 그럼 그때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황이었나보다.”
 

    그럼, 입시라는 환경은 누구든 사지로 몰아넣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너는 빨대 끝에 입을 대고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긴 칵테일을 쪽, 빨아 마신다.


    네가 문제가 아니라 입시가 문제야. 입시가. 하고 이빨 안쪽으로 조용히 혀를 맞부딪히며 그 말을 굴려보던 나는 얼마간 슬퍼졌다. 

       

    노란 알약 하나를 절반으로 잘라서 눈물 맛이 남아있는 혀 위에 얹어 삼키면 파도가 잦아드는 데 20분, 잠에 드는데 또 30분이면 족했다. 물론 그렇게 손쉬운 진압 방법에 적응하기까지도 시간은 필요했다. 놀라운 약효는 나를 어떤 납작한 평면에 다리미로 꾹꾹 눌러 종잇장 하나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감정은 불식간에 수분을 빼앗기고 얼굴은 어느 순간 온도를 잃는다. 모든 순간, 초단위로 이를 꽉 깨물어가며 살아내기 위해 버텼던, 나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었던 거대한 파도를 너무나도 손쉽게 찔러 죽여 버리는 알약 하나는, 내게 너무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렇게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약의 힘을 의심하는 너는, 또 한 번 나를 무력하게 했다. 문제는, 나에게 약물 치료가 기막히게 잘 들었다는 것이다. 놀랍지도 않게 문제는 내게 있었다는 증명이라도 하듯. 어쩌면 내가 약을 두려워했던 이유는 그때의 내가 정확히 과녁의 한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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