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yverse Oct 22. 2020

로미오와 줄리엣

밀레니얼의 프로포즈

시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떠나기 전까진 눈물도 많이 흘리고 심적으로도 힘들었지만,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이번 9화를 끝까지 읽어보면 알겠지만, 역시 어른들의 말이 맞다.

유럽은 한 번 들어가고 나면 나라 사이사이를 이동하는 게 쉬운 일이다. 유럽인들은 유럽 국가 사이를 국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보니 외국인들도 비행기를 이용하던 자차를 이용하던 거의 입국 심사를 받을 일이 없다. 프랑스에서 국제선을 타고 이태리 밀라노 리나테 공항에 도착한 나는 마치 김포 공항에서 부산에 도착하듯 출국장을 아무런 통제 없이 빠져나왔다. 영국에 있는 친구를 보러 갔다가 구입했던 선불 심카드로 전 유럽에서 데이터 사용이 가능했고,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버로 차를 불렀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포지셔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우버는 이태리나 프랑스에서는 고급 차량 서비스에 해당했다. 반면 예전에 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택시보다 싼 차량 서비스였다. 프랑스는 아무래도 서비스 정신이 부족한 걸로 유명한 만큼 비싼 이용료에 비해 좋은 세단이 오는 것 말고는 별 서비스가 없었는데, 이태리 우버는 멜빵을 맨 귀여운 백발 아저씨 기사가 아우디를 타고 와 직접 운전석에서 내려서 내 가방을 차까지 직접 밀고 가 실어 주시고, 마지막에는 내 차 문까지 열어 주셨다. 그렇게 밀라노 공항에서 에어비앤비로 향하는 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마돈나의 노래가 나를 반겼다. 아, 이태리에 도착했구나. 대학교 때 MTV에서 그 당시 출시된 삼성의 최신형 MP3를 홍보하기 위해 대학생 10명을 뽑아 MP3를 차고 유럽 여행을 하며 각 국에서 유명한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태리 로마에서는 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마돈나 콘서트를 보러 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엔 남자 친구가 없어서 그런 자유로운 삶이 가능했으나 항상 외로워서 서러웠고, 남자 친구가 있어서 외로움이 채워질 때쯤 되면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그 당시 나만의 삶이 그리웠다.

자유. 수많은 명언을 자아내고 수많은 역사적 혁명을 일으킨 이 두 글자 사상은 당신에겐 무슨 의미인가. 이미 민주적 자유를 누리고 태어난 내 시대 사람들에게는 좀 더 개인적인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표현의 자유 그리고 선택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표현의 자유가 막혔을 때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내가 가장 답답한 것을 보면 그만큼 나에겐 그게 중요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태리 여행은 비주얼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블로거가 되고 싶어 하는 나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여행이었고, 내가 가고 싶어서 자유롭게 선택한 여행지였다. 그래서인지 이태리는 나에게 항상 자유분방하고, 과거와 현실의 공존이 어지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곳이다.

프랑스에서 남편과 미래에 대한 대립이 있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이태리 밀라노의 두오모가 계속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마 굉장히 어렸을 때 가봤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 밀라노는 사실 내가 굉장히 우상시하는 이태리 패션 블로거 키아라 페라그니가 사는 곳이어서 상징적인 의미가 더 컸던 목적지였다. 왠지 그곳에 가면 창조의 에너지가 나를 채우고, 밀라노를 배경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나도 내 우상처럼 패션 블로거로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었달까. 사실 뾰족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갔다던지, 이미 컨택할 브랜드나 에이전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가기만 하면 나에게 행운이 찾아올 것 같은 그런 곳이었다. G백화점 시절 동갑내기 입사 동료이자 둘 다 퇴사 후 유럽인과 사귀게 되어 더욱 절친이 된 친구가 독일에서 나를 보러 오기로 했다. 그래서 처음 도착한 다음 날 밀라노로 온 친구와 3박 4일을 함께 하며 밀라노의 힙한 카페들도 같이 가고, 친구가 콘텐츠가 될 만한 사진도 많이 찍어주었다. 무엇보다도 외국에서의 생활이 쉽지만은 않은 것을 아는 친구는 나와 나의 꿈에 힘을 실어주었다. 사실 퀄리티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콘텐츠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은 내가 컨트롤할 수도 없는 더 힏든 부분이었다. 내가 하고 싶다고 맘대로 파워 블로거가 되는 것도 아닌 요즘 세상에서, 우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열심히 하고 보라는 친구의 말이 큰 격려가 되었다. 그래서 친구가 돌아간 후에도 혼자 열심히 돌아다니며 카메라로 해외 유투버나 블로거들이 만들던 콘텐츠를 벤치마킹하며 열심히 촬영을 했다. 나름 현지 포토그래퍼도 찾아내어 모델 활동도 조금 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다기보다는 현지에서 포토그래퍼와 작업을 해 보는 것이 목적이었고, 무엇보다 나는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기 이태리에서 꼭 모델로 활동해 보고 싶었다. 이태리로 떠나기 전 남편과 함께 갔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만난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있었는데, 그는 이태리에서 산 경험이 있었던 세르비아 출신이었다. 갑자기 그가 생각 나 인스타그램 DM으로 문의해 만나게 되었던 이태리 현지 포토그래퍼는 그도 본인의 작업을 위해 모델이 필요한 참이었어서 우리는 서로 콜라보를 하는 개념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대신 촬영 콘셉트는 내가 제시했고, 촬영 장소도 내가 섭외했다. 스튜디오 촬영으로 시작한 그날의 촬영은 밀라노 패션 거리의 유명한 카페에서 마무리했는데, 그는 마지막으로 나에게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해 달라고 주문했고 그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다. 무료로 촬영분을 받기로 한 나는 역으로 무료로 모델이 되어주었고, 포토그래퍼에게 저작권을 주겠다는 웨이버를 사인했다. 거의 까먹고 있었던 마지막 영상은 3년 후 미국 유명 보험회사 광고에 일부로 쓰였고, 광고 영상을 본 대학교 선배 언니가 나를 보고 연락을 해 주어 나도 그 영상을 처음 봤다. 내가 주인공처럼 비친 영상은 아니었지만, 저작권이 없는 이상 광고료를 클레임 할 수는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해본 모델 활동이 미국 광고 영상에 쓰였다는 것은 고요 속의 외침 같았던 내 이태리 여행의 한 건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없는 자유를 내 방식으로 즐기고 있는 동안, 프랑스 부모님 집에 남겨진 남편은 혼자 속이 엄청 탔었나 보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이태리 여행을 같이 하기로 한 두 번째 친구가 도착했을 때쯤, 남편은 거의 매일매일 왓츠앱으로 비디오 콜을 해왔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슬쩍슬쩍 물으면서도 본인이 추진하고자 한 사업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내 머릿속엔 남편의 사업 얘기가 잘 들어오지 않았고, 친구가 오고 나서 밀라노를 떠나 기차로 거의 이태리 순회를 하고 다니던 우리에겐 남편의 전화가 방해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도 롱디를 하다 지쳐서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하고선 바로 이태리로 여행을 온 차라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두 여자 친구로 할 말이 많았다. 물론, 난 아예 헤어진 것은 아녔지만 말이다.

이태리 밀라노를 떠나 볼로네제 스파게티가 유명한 볼로냐를 거쳐 파마산 치즈가 유명한 파르마를 지나 발사믹 식초가 유명한 모드 나까지 찍은 우리는 마지막 행선지인 베로나로 향했다. 친구가 제시했던 이태리 기차 여행 동선의 마지막 정착지였던 베로나는 별 정보 없이 가고 보는 우리에게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중세기보다 이전 시대 스타일의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던 베로나는 로마나 밀라노의 화려함에 비해 멋스럽고 톤 다운된 의외의 도시 었다. 더군다나 밀라노에서 여행을 시작한 우리에게 물가는 가장 싸면서도 스타일리시한 보보 할아버지들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손녀와 동네 와인바로 아페리티보를 마시러 가는 그런 도시였다. 아름답고 차분한 베로나에서 우리는 아디제 강 옆을 하염없이 걸으며 남녀 관계에 대해, 사랑에 대해, 서로 알지 못했던 대학 생활 및 우리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고등학교 때 같은 대학을 준비하며 만난 친구는 이미 안지 오래되었지만 인생의 기로에서 여러 번 갈라서며 각자의 길을 가느라 바쁘지만 가끔 해외여행을 같이 한, 서로 인정하지 않은 베프였다. 베로나 여행을 기점으로 우리는 서로 베프임을 인정했고, 그래서인지 우리의 베로나 여행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관광객이 많은 곳은 피하길 좋아하던 우리는 크지 않은 베로나 시내를 걷던 어느 날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등장하는 줄리엣의 발코니를 지나치게 되었다. 실화가 아닌 연극에 나오는 한 장면인 줄리엣의 발코니가 진짜일리가 없지만 상점이 가득한 쇼핑거리 한가운데 위치해있던 줄리엣의 발코니는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베로나는 관광명소로 지정된데가 아닌데서도 아름다운 사진을 찍기 충분했기에 줄리엣의 발코니는 우리에게는 베로나에 왔으니 한 번 지나가 보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거기서 사진도 하나 제대로 안 찍었던 것 같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에 와 있는 만큼 우리는 각자의 연애에 대해 나눌 이야기 많았고, 무엇보다도 둘 다 힘들고 풀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보니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디제 강을 끼고 있던 조금 한 피자집에서 점심을 시키고 스프릿츠를 한 잔씩 하며 끝없는 연애 이야기를 하던 나는 친구에게 이태리로 떠나오기 전 프랑스 시댁에서 있던 얘기를 하게 되었다. 술기운 때문인지 갑자기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시던 시아버지의 짧고 굵은 한 마디가 생각났고, 그 말을 친구에게 전해주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나를 보고 있던 친구도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자유롭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둘은 결코 진행형인 사랑의 수수께끼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베로나에서도 마지막 밤이 다가왔고, 인도네시아에서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을 거의 탈탈 써버린 나는 며칠 신세를 지던 친구에게 저녁을 대접하기로 했다. 맨날 거닐던 아디제 강의 피에뜨로 다리 밑에 영화 <이탈리안 잡>에 나오는 듯한 다리 아래 보트 정박장이 있다는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을 찾았다. 너무 어두워 사진조차 찍기 힘들었던 레스토랑은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충분한 숨은 맛집이었다. 이태리 웨이터에게 투샷까지 부탁하는 주책을 부리고 다행히 승인이 난 내 카드로 결제를 마친 우리는 약간의 취기와 함께 베로나의 마지막 밤길을 걸어 에어비앤비로 향했다. 밤 11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 시간. 그간 전화가 좀 잠잠하던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아직까지 밖에 있냐며 놀라던 남편은 꼭 할 얘기가 있으니 들어달라고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고, 그때까지 남편의 전화를 잘 참아오던 친구는 같이 보내는 마지막 밤인데 좀 내버려 두면 안 되냐고 옆에서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남편에게 에어비앤비에 돌아가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곧 에어비앤비에 도착해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러 발코니로 나갔다. 술기운이 있던 친구는 피곤한 나머지 거실 소파에서 스르륵 잠이 든 듯했다.

왓츠앱 비디오 콜로 주로 전화를 하던 남편처럼 나도 왓츠앱 비디오 콜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심각한 얼굴로 목소리를 깔며, 만약 내가 마음이 없다면 안 들어줘도 상관없지만 이 마지막 말은 꼭 해야겠다고 했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내용을 이메일로도 보냈는데 이미 봤냐고 물었다. 베로나의 마지막 밤을 최대한 즐기는 데 정신이 팔렸던 나는 이메일을 열어볼 틈이 없었고 남편이 이메일을 보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남편은 이메일로 이미 보내 놓은 자신의 편지를 나에게 직접 읽어주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쓴 남편의 편지는 영어보다는 프랑스어가 편한 남편이 본인의 언어로 나에게 전하는 순수한 마음 편지였고, 지금 다시 봐도 어려운 문법들이 많은 편지였지만, 남편의 나를 향한 그리움, 미안함,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간절한 러브레터였다. 읽으면서 깨지는 화면 너머로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던 남편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들으며 완벽히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나도 주룩주룩 눈물이 나왔다. 이태리로 홀연히 혼자 떠나는 내 모습을 보고 이별을 고하는가 싶었던 남편은 걱정을 하다 못해 우리가 헤어질 수도 있겠다고 걱정을 한 게 역력했다. 그리고 같이 있을 때는 힘들면 헤어지느니 마느니 하고 매일 같이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내가 진짜 떠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나니 되려 내가 헤어지고자 하더라도 인생 레슨이라고 생각하고 달게 받겠다고 남편은 말했다. 곁에 있을 땐 그게 나의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많이 못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디까지나 내 선택의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군다나 그 말이 남편에게서 직접 나왔다는 데에 있어서 이 여행의 목적의 반은 성공한 느낌이었다.

반면 헤어져도 달게 받아들이겠다는 남편의 편지가 어떻게 이어지려고 하는지 순간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내가 떠나왔어도 진짜 헤어질 작정을 하고 보란 듯이 한 행동은 절대 아니었다. 할 말을 거의 다 해가는 듯한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최고로 복잡한 프랑스어 문법이라는 문법은 다 갖다 붙인 하나의 긴 질문이었다.

“편지를 마치며, 나는 당신의 선택을 비판하거나 비판하기 위해 여기까지 쓴 것은 아니다. 당신을 판단하기보다는 오히려 당신이 나와 결혼해서 영원히 함께 미래를 나누고 싶은지 알기 위해 쓴 것이다. 나와 항상 영원히 이 인생을 함께 하지 않을래?”

감동의 통화를 마치고 발코니에서 눈물을 훔치며 거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며 잠에서 깨어있던 친구가 물었다. 뭐야, 이제 청혼까지 한 거야? 나는 옷소매로 콧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응! 왠지 모르게 여행하는 내내 나의 자유로운 영혼에 대해 운운했던 친구에게 영락없는 사랑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하지만 베로나 에어비앤비의 발코니에서 왓츠앱 비디오 콜로 청혼을 받은 나는 줄리엣, 남편은 나의 로미오였다.

그리고 당연히,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는 우리 둘이 비치는 화면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한 나의 대답은,

"Oui!"

였다.


 *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the_young_heiress

남편에게 청혼을 받았던 베로나 에어비앤비의 발코니에서
꿈에 그리던 두어모에서 독일서 온 친구와 함께
친구가 프라다 카페에서 찍어준 걸짝
역시 친구가 찍어준 걸짝
현지 포토그래퍼와 함께한 스튜디오 촬영
나의 우상 키아라 페라그니 플래그십에서도 촬영 협조를 받았다
베프와 함께 기차 여행 시작
이태리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다 아페로 한 잔씩 하러간다
베로나 아디제 강의 삐에뜨로 다리 위에서 베프와 함께
여행 중 모은 돈을 다 쓴지 깨달은 날
훗날 발견한 광고 영상 속의 나


이전 08화 시댁 아닌 시댁 살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